당신은 알아볼 수 있나요?~
행복의 기준은 저마다 다르다.
동일한 유전자를 태어나, 동일한 가정환경에서 자란 나와 같은 "일란성쌍둥이"들도 행복을 느끼는 지점은 확연히 다르다.
행복을 느끼는 그 지점. 그 순간. 행복을 가졌다고 느끼는 정점은 과연 언제였는지 궁금해졌다.
20대의 불안장애를 거쳐- 30대의 장애물 달리기를 지나 40대에 다다르니, 행복을 언뜻 지나온 것 같은데... 정확히 어느 지점이었는지를 알 수가 없었다. 분명히 불행의 변곡점은 '다시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며 뇌와 심장에 새겼는데... 초콜릿 한 조각을 입에 넣고 혀로 돌려가며 "아~ 역시 맛있어!"라고 말할 만한 행복의 순간은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행복이라 부를 만한 감정은 나에게도 충분히 있다.
결혼과 첫 아이의 출산, 둘째, 셋째 아이의 출산, 처음으로 새 집에서 살게 되던 날, 날 닮은 아이가 사랑한다며 꼬~옥 안아주던 일들. 말할 수 없이 수많은 행복의 지점이 있었지만- 그때마다 나의 감정은 행복과는 반대되는 것들...'피곤하다, 지친다, 쉬고 싶다, 아프다, 걱정된다, 자신이 없다' 등등의 낯선 감정뿐이었다. "행복"이라고 불러야 할 순간에 부정의 감정들이 버티고 있는 것은 어째서일까. 그 순간들을 행복이라 불러도 되는 걸까...
첫아이를 출산하던 날 나는 정말 괴로웠다. 지랄 맞게 아팠다. 임신은 아름답지도 고귀하지도 않은- 불쾌한 냄새와 끈적한 땀의 향연이었고, 출산은 사람이기를 포기해야만 도달할 수 있는 마라톤이었다. 시뻘건 아이의 탯줄을 자르고 집으로 데려와 목욕을 시키고 키워내는 것은 그야말로 벗어날 수 없는 죄책감 감옥이었다. 분명 행복의 순간으로 명명할 수 있는 날들 속에 나는 행복이라는 감정을 쥐어본 적도 없이 놓쳐버렸다.
"행복. 너는 대체 어디에 있니?... 내가 너를 알아보지 못한 거니?"
...
"나는 너를 지나왔어, 너도 나를 마주했는걸~"
"나는 너를 만나지 못했어!, 난 단 한 번도 한눈팔지 않고 너만 기다렸는걸!"
"아~ 그럴지도 모르겠다. 나는 모습을 바꾸는 재주가 있거든!!"
"그게 무슨 말이야?"
"나는 슬픔이라는 감정으로 불리다가 행복이라는 마음으로 변해,
난 힘듦으로 불리다가 웃음으로 변하고, 걱정으로 찾아가서 기쁨으로 돌아가거든. 그러니 네가 나를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지~ 나는 현재로 존재하지 않고 과거의 시간으로만 존재하지~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말이야!"
초등학교 2학년인 막내딸이 날이 좋다고 자꾸만 나가서 피구를 하자고 조른다.
반나절 일하고 돌아온 나는 못 들은 척 거절해도 그만인데 막상 아이의 눈과 마주치고 나니 불편한 마음이 나를 일으킨다.
"30분만 놀고 오자~"
바람이 다 빠져가는 탱탱볼을 가지고 공원으로 나선다. 아이는 신이 났다. 나는 힘들다. 아이는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그래"
피곤과 짜증으로 시간을 때우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날의 감정은 며칠이 지나자- '행복'이라는 감정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날 나는 너무 피곤했고, 전혀 재미있지 않았다. 기억나는 건 딸아이의 행복한 얼굴이었다.
"엄마, 오늘은 너무 행복한 날이에요~ 바람이 살랑살랑 불고 햇빛도 쨍쨍하고, 엄마랑 피구 하니까 최고예요!"
'짜증'과 '귀찮음'으로 찾아온 그날의 감정은 며칠이 지나고 나니 '행복'으로 저장되어 있었다. 그날엔 없었던 행복이, 그날의 행복으로 바뀌어져 있었다.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지만, 순간이 지나 과거가 되는 순간 분명히 만나는 행복. 너를 추억이라 부르기엔 너무 소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