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의 시작 : 관심
[주의 : 영화의 스포일러 포함되어 있습니다.]
지난번 글에서 말을 했던 것처럼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극장에서 본 영화는 바로 '해리포터와 마법사의 돌'이었다. 그리고 내가 초중고를 거치면서 해리포터는 책으로 그리고 영화로 계속해서 내 곁에 있었다. 그런 해리포터가 시리즈가 완결된다고 들었을 때는 얼마나 슬펐는지도 기억난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슬픈 기억 덕분에 영화 '신비한 동물사전'이 개봉한다고 했을 때 더욱 기쁠 수 밖에 없었다.
해리포터 시리즈가 가지고 있던 놀라움을 유지하면서 더욱 큰 의미를 가지고 영화가 바로 '신비한 동물사전'이라고 생각한다. 먼저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처 상상하지 못하는 신비한 동물들을 영화 속 세계에서 창조해냈다.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는 니플러, 장소에 따라 몸의 크기를 바꾸는 오가미 등 신비한 동물들은 영화 속 세계가 현실과 다르다는 것을 인지시켜 주기 충분했다.
그리고 영화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봤다. 해리포터 시리즈에서 계속 강조된 것이 '사랑'이었다면 '신비한 동물 사전'에서 강조된 것은 '관심'이라고 생각한다. 주인공 뉴트는 점점 소멸되어가는 동물들에게 관심을, 티나는 동물을 위해 노력하는 뉴트에게 관심을, 코왈스키와 퀴니는 서로 다른세계에 대한 관심을 가졌기에 협력한다. 뉴트가 돌보는 동물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소외된 대상들에게 손을 내뻗는 지 보였다. 마지막 남은 한 쌍의 동물을 돌봐주고, 집으로 데려다주기 위해 영국에서 미국으로 머나먼 여행을 떠난다.
특히 오큘러시스가 붙은 남자아이를 대할 때 모습을 보면 타인에 대한 관심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수 많은 마법사들이 그를 죽이려고, 또는 그의 힘만을 이용하려고 회유할 때 그는 남자아이를 '도구'가 아닌 도움이 필요한 '사람'으로 보고 조심스럽게 대하고 있었다.
과연 나는 저랬던 적이 있던가 고민해보았다. 내가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거나, 도움을 요청하는 손을 잡았던 적이 있었는지. 유감스럽게도 대답은 NO 였다. 많은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들에게는 나도 마찬가지로 외면하기도 급급했고, 언제나 소극적인 대처만 했었다. 직접 가서 도와주는 행동보다는 기부금을 보낸다거나, 구호물품을 보내는 것이 내 행동의 전부였다. 이런 소극적인 행동의 원인이 무관심이라고 생각하고 조금씩 경계하고는 있다. 그러나 나는 이런 무관심이 싫지는 않다. 관심이 지나치면 오지랖이 되는 거고, 무관심이 지나치면 냉혈한이 되는 것 뿐이다. 그리고 다만 아직 나는 무관심 쪽에 가까운 거라고 생각한다. 조금씩 타인에게 관심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다. 먼저 나와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부터 챙기기 위해 작은 노력을 하고 있다. 먼저 안부묻기, 내가 해 줄 수 있는 부탁 들어주기, 작은 부탁 요청하기 등. 이런 작은 행동들이 나를 조금씩 변화 시킬 수 있을거라 믿고있다.
나는 누군가에게 도구인가 사람인가.
오직 뉴트만이 오큘러시스가 붙은 남자아이를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으로 대해줬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과연 다른이들에게 '도구'같은 존재인지 '사람'같은 존재인지 궁금해졌다. 누군가에게는 도구같은 존재일 것이며,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사람같은 존재일 것이다.
나한테 소중한 사람들한테는 도구가 아닌 사람으로 있고 싶은데...실제로 그렇게 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거 본 사람이 있을까?
이제 곧 [신비한 동물들과 그린델왈드의 범죄]가 개봉한다. 이번 영화는 어떤 화려함과 상상력으로 내 눈을 즐겁게 할지, 그리고 그 판타지의 화려함 너머 무엇을 나에게 보여줄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