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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거북이 Oct 08. 2016

원령공주

공존을 원하는 사람과 생존을 원하는 사람.


 사람들이 원하는 이상향은 제각각이다. 그리고 그 이상향은 시대에 따라서, 그리고 환경에 따라서 달라진다. 그러나 시대와 관계없이 언제나 사람과 자연의 관계는 두가지 양상을 보였다. 적응하는 사람과 대응하는 사람. 이 둘이 자연을 대하는 대표적인 사람들의 예시일 것이다. 영화 [원령공주]에서는 자연과 공존을 원하는 사람과 자연을 개척하는 사람,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배척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애니메이션으로 잘 풀어냈다. 

 영화를 이끌어 가는 인물은 아시타카라는 앳된 얼굴의 청년이다. 그는 마을을 쳐들어온 재앙신을 죽이면서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재앙신이 몸에 심어둔 저주를 풀기위해서 서쪽 숲으로 향하고, 그 여행길에서 서로 죽이는 사람들을, 철을 이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특히 철을 이용해서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고 많은 생각을 들었을 것이다. 그들은 철을 생산하기 위해서 나무가 필요했고, 나무를 위해서 숲을 파괴해갔다. 자연과 함께 살아온 아시타카지만 그는 자연과 인간 어느 한쪽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둘의 공존을 위한 방법을 계속해서 모색한다. 자연이 중요한 건 맞지만, 우리는 결국 인간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인간에게 있어서 자연은 개척해야하는 대상이 아니라, 함께 공존해야만 했다. 


 아시타카와 반대되는 입장에 있는 인물들은 두 명의 여성이다. 철을 생산하는 마을의 대장, 에보시와 늑대의 품에서 자란 산이다. 에보시는 철을 생산하는 마을의 여대장이다. 그녀는 마을의 안정과 안녕을 위해서 많은 철이 필요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다시 숲 속의 나무를 파괴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반면 늑대의 딸인 산은 자신들의 터전을 파괴하는 에보시가 적으로만 보일 뿐이었다. 둘은 서로가 적일 수 밖에 없는 입장이였다. 이 둘은 생존을 원하는 사람들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인간의 생존을 주장하는 에보시와 숲, 자연의 생존을 주장하는 산. 두 여성이 지지하는 단체는 다르지만 생존을 원한다는 것에서는 동일한 입장을 보였다. 


 서로 다른 위치에 있는 세 사람 중 누구 한 명이 옳다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된것이라 생각한다. 공존을 원하는 사람은 모두를 위해서, 생존을 원하는 사람은 자신이 지켜야할 대상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을 뿐이다. 물론 공존이 가장 좋다라고 생각은 하지만, 생존을 위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내가 함부로 판단하기는 너무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배경이 비록 일본의 과거지만, 이 영화는 모든 현대 사회인들의 모습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 만약 안 봤다면 한 번 쯤 꼭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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