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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oksk Aug 16. 2018

12.  설계 변경(Design Change)

[실무 1부] 05. Change Management

EPC Project의 큰 특징 중 하나가 Change입니다. 플랜트 프로젝트는 특성상 엔지니어링이나 시공 혹은 시운전 단계 어디서든 상황에 따라 설계를 변경(Change)할 필요가 있거나 변경해야만 하는 상황이 발생합니다. 설계변경으로 인해 추가 비용(Change Order)이 발생할 경우 책임소재 규명 등으로 프로젝트 일정에 영향을 줄 수 있으며 대부분 프로젝트 마무리 시점에야 합의가 이루어집니다. 심지어 본 공사 계약금 액보다 많은 금액이 추가 비용으로 합의된 프로젝트도 있을 정도입니다. 하지만 설계변경에 대처하는 우리의 모습은 아쉬움이 많습니다.



변경(Change)이 생기는 경우는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먼저 발주처 요구에 의한 경우입니다. 


이 경우에는 정당하게 추가 비용을 지급하며 요청하기 때문에 Contractor 입장에서는 일정 등 특별한 문제가 없으면 설계에 반영하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진행하게 됩니다. 물론 추가 비용을 확정하는 과정에서 약간의 협의가 필요하기는 하지만 사전에 정해진 규정만 따르면 크게 문제 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두 번째는 이미 설계가 완료된 상태에서 변경을 요구하거나 애매한 계약 조항을 들어 무리한 요구를 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이때는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이것을 빌미로 모든 책임을 Contractor 귀책으로 돌립니다. 발주처 엔지니어들은 대부분 특정 프로젝트만을 위해 계약직으로 고용된 신분이다 보니 자신의 실수나 잘못으로 인해 후속 계약이 어려워질 수 있으므로 최대한 방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때문에 양사 엔지니어 간에 많은 다툼이 일어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EPC Contractor의 잘못으로 인해 변경되는 경우입니다.

쉽게 말해 ‘오작’이라고 표현하는 것들입니다. 설계 실수 또는 시공과정에서 잘못 제작하거나 설치되어 반대로 설계에 반영하는 경우 등인데, 당연히 Contractor가 전적으로 조처를 해야 하지만 이로 인한 추가 비용이 클 경우 일정 부분 발주처에 보상을 요청하게 됩니다. 물론 이 과정이 절대로 쉽지 않다는 것은 예상하기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설계 최적화(Design Optimization)라고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요구하는 변경입니다.

설계 최적화는 보통 계약 이전 단계인 FEED (Front End Engineering & Design)에서 결정된 Design에 문제가 있거나 빠진 것을 상세설계에서 반영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설계 최적화는 발주처에서 정식으로 요청을 하더라도 정말 깊이 검토한 후에 반영 여부를 결정해야 합니다.

말이 좋아 '설계 최적화'지 잘못하면 설계를 통째로 변경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설계 최적화 기간도 프로젝트 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 위해 보통 3개월 이내로 매우 짧게 설정하지만 사실상, 이 기간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입찰 전 Basic Design이나 FEED 등 최소 일 년 이상 검토한 것을 불과 3개월 만에 재 검토하고 변경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입니다. 설령 가능하다 해도 설계 변경으로 인한 물량 재산정, 자재 구매비용 변경, 시공물량 재산정 및 비용 반영 등 후속 작업으로 인해 정작 엔지니어링 업무를 제대로 할 수 없게 되어 프로젝트 일정에 악영향을 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실제로 2000년 초반에 실행한 나이지리아 프로젝트의 경우 3개월간의 설계 최적화를 했지만, 결과를 반영할 경우 후속 업무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막대해서 전면 백지화한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투입된 3개월이라는 시간과 비용은 프로젝트 진행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Management of Change(MOC)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반드시 변경사항 관리를 위한 절차를 문서로 만드는데 이것이 Management of Change(MOC)입니다. MOC에는 설계변경이 생겼을 경우 조치할 사항 즉, 변경 사유, 발주처 통보 및 승인, 적용절차 그리고 최종 변경사항의 최종 문서 반영(As-Built) 방법 등을 규정하며, 또한 변경으로 인해 추가 비용이 발생할 경우 추가 비용의 산출 기준과 발주처에 청구하는 절차 그리고 발주처의 승인 기준과 기간 등을 

명시합니다.


하지만 MOC 적용을 받더라고 변경으로 인해 발생된 추가 비용에 대해서는 발주처와 지루한 싸움을 벌여야 합니다. 이 과정이 너무 험난합니다.


제일 앞 장에서 잠시 언급했지만, EPC Project는 Contractor가 위험을 감수하는 전형적인 ‘불공정 계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계약서를 꼼꼼히 보면, 문제가 생기면 Contractor가 모든 책임을 지는 구조입니다. 입찰 단계부터 계약까지 어느 것 하나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습니다. 더구나 심화한 경쟁으로 인한 저가 수주에다, 짧은 공기를 맞추기 위한 Resource 과다 투입 등으로 적자인 경우가 허다합니다. 따라서, 어떻게든 발주처로부터 보상을 받아야만 그나마 적자를 보전하거나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에 Contractor 입장에서는 변경사항이 생기면 원인을 불문하고 절대로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보상을 받기 위해서 가장 좋은 것이 변경을 근거로 비용을 요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매니지먼트는 반드시 변경사항에 대한 보상(Change Order)을 염두에 두고 업무를 수행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 아쉬운 것은, 매니지먼트나 엔지니어들은 Change가 발생하면 기술적으로 문제없는지, 진행 중인 설계에 반영할 수 있는지 등 기술적으로만 접근하는 것입니다. 발주처와 기술적인 사항에 대한 협의는 잘하지만, 정작 중요한 변경으로 인한 추가 비용을 요구하거나 비용을 협상하는데 미숙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다 보니 일만 열심히 하고 추가 비용은 조금밖에 받지 못하거나 아예 받지도 못하는 경우가 아주 많습니다. 고생한 만큼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Change Order는 엔지니어나 실무팀만으로서는 한계가 있습니다. 수행이 불가능한 조직에 임무를 주고 독려한다고 해서 되는 업무가 아닙니다.


Change Order 전담 조직의 필요성

대부분의 발주처는 Change Order에 대비하여 변호사를 포함한 별도의 조직을 운영합니다. 

이는 비용 증가를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혹시 모를 법적 분쟁에 미리 대비함으로써 프로젝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함입니다. 하지만 우리나라 회사들은 이 부분이 많이 약한 것 같습니다. 발주처와 같이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전담팀을 구성하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했습니다.  


필자의 경험에 의하면, 대부분 엔지니어나 프로젝트의 매니저들이 감당하다가 문제가 커져서 실무선에서 감당하기 어려울 때, 또는 아무리 프로젝트를 잘해도 적자가 예상되면 그때야 부랴부랴 변호사들을 대거 투입해서 대응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때는 이미 늦습니다. 변호사들이 늦게 투입되다 보니 업무 History는 전혀 알 수도 없는 상태에다 기술적인 내용은 더더욱 모르니 업무 파악하느라 귀중한 시간이 모두 흘러가 버립니다. 버스는 이미 저만큼 떠나버립니다. 주변에서 비슷한 고충을 털어놓는 분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아마 필자의 경험만은 아닐 것입니다. 


이제라도 Change Order를 전담하는 팀을 구성해서 프로젝트팀에 배속시켜서 프로젝트 초기부터 적극 대응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Change Order는 발주처와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지금까지 여러 프로젝트를 수행하면서 특히 현장에서 파견근무를 하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 Change Order 전담팀입니다.  


당시 현장 시공단계에서도 많은 업무를 현지 업체에 하청을 주게 되는데, 하청업체에서 요구하는 Change Order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하는 것을 자주 보았습니다. 외국의 경우 하청업체에서도 Change Order를 전담하는 인원이 상주하고 있어 우리에게 조금만 틈이 있으면 추가 비용을 요구하는데, 우리 현장은 그야말로 일상이 전쟁터인지라 Change Order 업무까지 처리할 여력이 없습니다. 그야말로 돈이 줄줄 새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입니다.  



책임자는 법률만을 다루는 변호사보다는 Quantity Surveyor(QS)가 적합합니다.

이제라도 전담하는 팀을 구성해서 프로젝트 초기부터 발주처는 물론 현장에서 고용하는 업체에도 적극 대응을 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것만이 변경으로 인한 손실을 최소화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기회로 만드는 길입니다.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 볼 때 전담팀에 발주처처럼 반드시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는 없습니다. QS(Quantity Surveyor)를 중심으로 프로젝트 엔지니어와 사무 보조 인원 등 서너 명 정도로만 구성해도 무리가 없습니다. Letter, MOM, Change Request 등 Change와 관련되는 주요 문서들을 지속해서 모니터링하면서 비용과 관련되는 내용을 별도로 관리하고, Change Order가 발생하면 발주처와 직접 협의토록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전담팀이라는 말은 한 명의 QS 혹은 하나의 팀이 여러 개의 프로젝트를 동시에 관리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물론 없는 것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큰 의미가 없습니다. 절대 피해야 합니다. 반드시 하나의 프로젝트를 전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전담팀을 구성하면 무시할 수 없는 좋은 점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발주처에서 쉽게 나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엔지니어들이 계약서나 법률적 용어에 익숙하지 않다는 약점을 이용해 복잡한 법률 용어를 들먹이며 엔지니어를 압박하였지만, 엔지니어가 아닌 전문가가 나서서 상대하면 그들도 더는 함부로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만으로도 Change Order 협상에서 상당 부분 우위를 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고로 QS는 영국 왕립 서베이어 협회(RICS)에서 시행하는 자격시험에 통과한 자들에게만 부여하는 자격으로, 프로젝트 발주단계부터 정확한 공사비용을 산출해 법률적 리스크를 예방하고 나아가 계약관리, 건설 분쟁 해결 그리고 조정까지 담당하는 전문가입니다. 기술적인 배경을 바탕으로 법률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플랜트 EPC 프로젝트에 아주 적합한 전문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직 국내에는 활성화되지 않아 QS 자격을 가진 분들이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최근 들어 이러한 문제를 인식한 국내 건설사를 중심으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므로 자세한 내용은 한국큐에스협회(KIQS, Korea Institution of Quantity Surveyors)를 통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설계변경은 무조건 손해입니다.

지금까지 Change에 대한 정의와 관리 조직의 필요성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필자의 경험상 어떤 이유로든 설계변경은 최대한 자제해야 합니다. 가끔 추가 비용을 받으면 매출도 커지는 등 좋은 것이 아니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변경과정에 투입하는 인원과 시간은 추가 비용으로 받는 금액보다 훨씬 더 큰 손실로 돌아옵니다. 한마디로 '겉으로 남고 속으로 밑지는 장사'입니다. 어떤 이유든 변경이 생기면 프로젝트 기간이나 비용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양사 모두 손해입니다. 따라서 매니지먼트는 당초 계약 범위 내에서 프로젝트를 잘 진행할 수 있도록 발주처와 협의하는 것이 중요한데 특히 발주처의 프로젝트팀 사정 봐주느라 변경 요구를 들어주는 것은 절대 지양해야 합니다. 하지만 플랜트 프로젝트 특성상 설계변경을 최소화할 뿐 아예 변경이 없는 경우는 거의 없으므로 이에 대처하기 위한 전문가 조직은 필히 구성되어야 합니다.



조직을 구성하는 것 역시 경영자의 몫입니다.

경영자는 엔지니어들이 일을 성과를 얻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 주는 역할을 사람이라고 앞 장에서 말씀드렸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마 전부터 육상 플랜트를 수행하는 국내 건설사들에서는 이 사안의 심각성과 필요성을 인지하기 시작했고 점차 조직을 구성하는 회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대됩니다.





                                        대한민국 플랜트 산업의 부흥을 꿈꾸는 자, oks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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