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5] offshore Civil
여느 건설 현장과 마찬가지로 플랜트 현장 역시 땅을 파는 것으로부터 시작합니다. 토목이라면, 일반인들에게는 도로나 다리 혹은 아파트를 짓기 위해 땅을 파는 것부터 연상되는데, 플랜트 토목 역시 이와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땅을 파고, 지반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파일을 박고, 구조물을 위해 기초를 놓고, 마지막으로 사람과 차량이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내는 등의 일을 하는 곳이 토목입니다. 모두 땅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입니다.
해상 토목(Offshore Civil)
그런데, 같은 토목이긴 하지만 조금 다른 경우가 있습니다.
방파제를 쌓거나, 땅을 만들기 위해서 엄청난 양의 흙이나 돌을 가져다가 메우는 일, 배가 접안할 수 있도록 부두를 건설하는 일 그리고 바다 위에 구조물을 설치하는 일 등이 그것인데, 바람과 파도 등 거친 바다에 맞서는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새만금 사업으로 유명한 대규모 간척지를 만들거나 21km에 달하는 인천대교처럼 바다 위에 교량을 설치하는 것을 생각하면 쉬울 것입니다. 최근에는 홍콩과 마카오를 잇는 무려 55km에 이르는 강주아오 대교가 완성되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이 역시 토목에서 수행하는데, 플랜트 산업에서는 육상 토목과 구별하기 위해 해상토목(Offshore Civil)이라고 부릅니다.
플랜트 프로젝트에는 종종 바다를 메워서 땅을 만들고 그 위에 플랜트를 건설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유나 가스가 비교적 육지와 가까운 곳에서 나오다 보니 해상에 플랜트를 설치하는 것보다 뽑아낸 원유나 가스를 파이프라인(Pipeline)을 통해 가까운 육지에 보내서 처리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입니다. 흔치는 않지만, 육지라도 부지가 마땅치 않을 경우 일부 바다를 메워서 새로 땅을 만들기도 하는데 바로 이 경우입니다.
플랜트 공사의 특성 중 하나로 운전 중에 발생하는 유해가스 등을 플랜트에서 최대한 멀리 보내서 태워버리는 설비(Flare Tip)가 있는데, 일반적이지는 아니지만, 이 설비를 설치하기 위해 바다에 구조물(Flare Tower & Trestle)을 설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Rope Man
바다 위에 구조물을 설치하려면 구조물에 사람이 매달려서 해야만 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아주 위험한 일이라 아무나 하지 못하고 전문적으로 이 일만 전담으로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현장마다 호칭이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로프 맨(Rope man)이라고 부릅니다.
해상토목의 성패는 장비와 날씨의 싸움에 달렸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해상토목은 역시 장비가 중요합니다.
바다를 메우거나 방파제를 쌓는 일 그리고 교량을 설치하는 일 등 모두 크고 무거운 것들을 다루는 데다가, 거친 파도와 변덕스러운 바람에 맞서려면 어지간한 장비로는 아예 시작조차 할 수도 없습니다. 따라서 적절한 장비를 동원하는데 드는 비용이 만만치 않습니다. 어느 정도의 바람과 파도에 견디는가에 따라 장비 동원 비용이 그야말로 기하급수적으로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비싸지만 좋은 장비를 이용해서 공사를 빨리 마칠 것인가, 아니면 공사 기간이 조금 더 걸리더라도 장비 비용을 아낄 것인가, 이것이 해상토목에서 늘 고민하는 한 가지입니다.
또한, 바람, 파도 등 날씨에도 매우 민감합니다.
아무리 장비가 좋아도 태풍이나 너울성 파도(Swell)가 발생하면 일을 전혀 못 할 뿐 아니라 작업선도 피항을 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작업선(Working Barge)이 일하기 위해서는 배를 튼튼하게 고정해주는 작업(Anchoring)이 필요한데 이 작업이 만만치 않습니다. 자연히 피항하거나 다시 돌아와서 일하기 위해 고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에 결국 공사 기간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습니다.
거친 바다에서 작업하다 보니 규제도 많습니다.
플랜트 공사는 반드시 각 작업(Work Activity)별로 발주처(또는 자사 안전팀)의 승인을 받아야만 작업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이를 작업허가(PTW, Permit to Work or Work Permit)라고 하는데, 이 과정이 만만치 않습니다. 안전규정 준수는 물론, 장비 점검 상태, 개인 안전장비 구비 등을 모두 문서로 제출하면 일일이 확인한 후 현장 여건을 보고 작업허가를 내주기 때문입니다. 아침마다 작업허가를 받기 위해 줄 서는 것으로 현장의 업무가 시작된다고 봐도 틀린 말이 아닐 정도입니다. (이는 해상토목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플랜트 현장의 작업에는 모두 해당하는데, 현장 업무의 절반이 이 업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쉽지 않은 일입니다.)
해상토목에서 유행하는 말이 있습니다.
'날씨가 도와주면 일할 준비가 안 되어 있고, 준비가 되어 있으면 날씨가 돕지 않는다'라는 말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일을 하려면 작업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서류가 미비할 경우 허가를 받지 못하면 아무리 날씨가 좋아도 일을 할 수가 없기에, 그저 눈 뜨고 바다만 쳐다봐야 하는 경우도 많다 보니 나오는 하소연입니다.
좋은 예로 제가 수행한 아부다비 프로젝트의 경우, 페르시아만의 바람과 파도는 거칠기로 유명한데, 이로 인해 작업이 자주 중단되곤 합니다. 특히 겨울(11월~1월)에는 일주일에 이삼일밖에 일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렇다 보니 공사 기간의 절반은 준비하고 절반만 일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비난(?)을 받는 안타까운 일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지요.
아, 물론 갖은 고생 끝에 완성되고 나면 이곳저곳에서 높은 분들이 오셔서 사진 찍고 악수도 합니다. 그저 먼발치에서 그분들을 바라보는 것으로 해상토목의 임무는 끝이 납니다.
거친 바다에 맞서 수고하는 해상토목 엔지니어 모든 분을 응원합니다.
대한민국 플랜트 산업의 부흥을 꿈꾸는 자, oksk (박성규)
현장을 경험한 엔지니어와 그렇지 않은 엔지니어의 역량은 많은 차이를 가져올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모든 엔지니어가 현장을 경험하기는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에 사진으로나마 경험할 수 있도록 저의 실무 경험을 바탕으로 이 글을 씁니다. 조금이나마 업무에 도움이 된다면 큰 기쁨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