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인스타그램을 구경하다가 애정하던 제주도의 몇몇 가게가 문을 닫았다는 소식을 접했다. 가게가 잘되자 건물주에게 갑자기 내쫓긴 사연부터 다른 지역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는 등 이유는 저마다 다양했다.
한가지 공통점이 있었다면 가게 주인들의 SNS 계정에 가게의 마지막을 함께해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거다. 어떤 사장님은 누군가 선물한 꽃다발을 한 아름 들고선 미소 지었고, 어떤 사장님은 그리움과 응원을 전하는 댓글들 속에 있었다.
2년 전 엄마의 퇴사를 축하하며 선물한 꽃다발. 우리 가게의 마지막에도 선물했으면 좋았을걸. ⓒ 이현희
여러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우리 가게의 마지막을 떠올렸다. 우리 아빠는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조막만한 쌀집을 운영하던 자영업자였고, 딸들의 유년기까지는 돈을 쌓아 놓고 살았다. 쌀집 다음엔 동네 슈퍼마켓, 그다음엔 노래방, 당구장, 오락실. 종목은 달라도 문 열 때마다 돈을 쓸어 담았단 점은 같았다.
잘 나가던 우리 아빠의 가게는 내가 초등학교 3학년 즈음부터 내리막길을 걸었다. 전업주부로 집과 우리를 케어하던 엄마가 갑자기 함께 가게를 운영했던 걸 보면 당장 한 명의 인건비가 아쉬웠던 상황이었다. 이 시점부터 본격적인 식당 운영에 뛰어들었다.
우리 가게는 고깃집에서 시작해 숯불바베큐를 파는 호프집이었다가 곱창볶음을 거쳐 마지막엔 감자탕집이었다. 네 집 다 맛있고 장사도 나쁘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문을 여는 족족 재개발에 들어가, 투자한 권리금을 못 받고 손해 본 케이스였다. 질풍노도의 사춘기를 거치면서도 그 시기 흔히 겪는 내면의 불안보다 우리 집의 힘든 형편이 더 크게 와닿을 만한 분위기에서 살았다.
그래도 마음 한편에는 '우리 집이 장사를 그만둘 일은 없겠지'라는 태연함이 존재했다. 내가 태어나고 결국 장사를 접었던 대학교 2학년 때까지, 20여 년의 시간 동안 나는 쭉 장사하는 집 딸이었으니까. 하지만 손해를 감수하고 시작한 마지막 신림동 감자탕집마저 잘되지 않았고, 결국 우리 가게는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얼마 전 식탁에 올라온 엄마표 감자탕. ⓒ 이현희
솔직히 우리 엄마, 아빠의 감자탕은 "도대체 왜 장사가 안되지?" 싶을 정도로 맛있다. (아빠는 본인이 조리 담당이었다고 주장하지만, 당연히 감자탕 맛은 엄마가 더 잘 냈다) 주방 한쪽의 큰 가마솥에서 자루로 들여온 돼지 등뼈를 푸욱 삶아 육수와 고기를 준비해두면, 손님상에 나갈 때는 우거지, 감자, 수제비 등만 넣어 끓이면 됐다.
이 단순한 조리 방식의 감자탕이 왜 그렇게 맛있는지. 비결은 엄마의 꼼꼼함이었다. 돼지 등뼈는 무조건 국산만 사용해서, 푸짐한 살코기의 씹는 맛이 좋았다. 등뼈를 삶을 때면 위로 떠 오르는 기름을 일일이 제거해 담백한 맛을 더했고, 끝에는 꼭 뜸을 들여서 먹을 때 젓가락만 대도 뼈와 고기가 스르륵 분리됐다. 고명으로 올라가는 우거지도 얇지만 질긴 겉껍질을 하나하나 벗겨내 삶아서 입에 들어가면 살살 녹았다.
오는 손님들마다 맛 하나는 인정했지만, 손님은 갈수록 줄었다. 24시간 운영에도 임대료와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 되자 결국 우리 가게는 폐업 수순을 밟았다. 폐업의 과정은 은근히 복잡했고, 엄마와 아빠는 또 다른 생계를 바로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니 가게 앞에서 마지막으로 사진 한 장이라도 찍으며 감상을 나누기는커녕 '처리'하듯이 마지막을 지나쳐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부위. 뻑뻑한 살코기를 똑똑 발라 먹는 재미가 있다. ⓒ 이현희
지금도 엄마는 이따금 집에서 감자탕을 끓인다. 슈퍼에서 팩에 든 등뼈를 사와 일반 가정에는 잘 없는 큰 들통(순전히 감자탕용으로 사용하는 냄비)에 몇 시간을 푹 고아야 감자탕이 된다. 이 과정은 여전히 고되어서, 온 집안에 습기가 차다 못해 천장의 벽지가 울며 물렁물렁해질 지경이다. 우리 네 식구가 몇 끼 먹을 감자탕 만들기도 이렇게 험난한데, 매일 큰 자루로 등뼈를 삶던 그 시절은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하기도 어렵다.
그렇기에 이제는 -현희네 감자탕집은 어떤 이유로 망했나- 의 갑론을박을 떠나서, 엄마·아빠의 고생이 고스란히 담긴 그 가게의 마지막을 제대로 보내주고 싶다. 갖가지 후회와 불안으로 가득했을 그 마지막을.
너무 늦었지만, 엄마·아빠의 치열하고 찬란한 마지막 감자탕에 박수를 보낸다.
더 자세한 엄마의 감자탕 레시피
01 감자탕용 등뼈를 사다가 찬물에 30분간 핏물을 뺀다.
02 핏물은 버리고 등뼈를 깨끗이 씻은 후 냄비에서 팔팔팔 끓인다.
03 불순물이 떠오르면 불을 끄고 물을 다 쏟아 버린다.
04 한번 삶아진 등뼈를 찬물에 깨끗이 헹군다.
05 깨끗해진 등뼈가 흥건히 잠길 정도로 냄비에 물을 붓는다.
06 된장, 소주, 월계수 잎, 다시다, 고춧가루, 통마늘, 양파, 대파를 넣어준다. 야채는 육수 내기용이라 통으로 넣거나 반으로 가르는 정도면 충분하다.
07 센 불에서 1시간, 이어서 중불에서 20분간 끓인다.
08 우거지에 소금, 후추를 넣고 살짝 버무려 미리 간을 해둔다.
09 1시간 20분간 끓인 감자탕에 우거지, 통감자를 넣고 30분간 중불에서 끓인다.
10 불을 끄면 뜨거운 김이 가실 때까지 뚜껑을 열지 않고 뜸을 들인다. 이 과정으로 뼈에서 살이 잘 발라지는 부드러운 감자탕이 된다.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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