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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희 Jun 10. 2020

어떻게 김치만두 만들면서 행복해?

나의 행복은 엄마의 행복이 아니다.


때때로 어떤 갈등은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풀린다. 2년 전 여름의 제주도에서 진짜 '갈등'을 목격한 후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갈등을 겪고 풀어 왔다. 이게 무슨 소리냐면, 갈등의 뜻부터 알아야 한다. 


갈등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던 제주 환상숲 곶자왈 공원. ⓒ 이현희


갈등(葛藤)은 '칡 갈' 자와 '등나무 등' 자를 써, 문자 그대로 칡과 등나무라는 뜻이다. 칡은 제대로 햇빛을 보기 위해 주변의 등나무에 몸을 의탁해, 등나무를 넝쿨로 뒤덮으며 자란다. 이렇게 칡과 등나무가 엉긴 모습을 갈등이라고 한다. 제주 환상숲 곶자왈 공원에서 숲 해설사님이 알려준 이 잡지식을 들으며, 그런 생각이 오갔다.


'등나무가 없어지면, 혹은 칡넝쿨을 잘라내면 갈등은 사라지는 게 아닌가?'


그런데 현실에서 겪는 갈등은 어느 한쪽을 종식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게 쉽게 해결되는 것이었다면 전쟁은 왜 일어나겠나. 얼마 전 나와 엄마도 전쟁을 벌였다. 모녀 전쟁은 생일을 기념한 여행처럼 좋은 곳에서도 불시에 발생한다.


생일을 맞아 떠난 올해의 공주 여행. 본격적인 전쟁 전 평화로웠던 한때. ⓒ 이현희


나는 장미꽃이 아파트 단지를 뒤덮는 5월에 태어났다. 봄의 싱그러움을 막바지로 누릴 수 있는 계절에 태어난 만큼 해마다 생일이면 엄마와 함께 여행을 떠난다. 이번 생일 여행은 때아닌 코로나19로 인해, 좋은 리조트에서 푹 쉬는 '밖콕'으로 진행됐다. 갈등을 목격한 곶자왈처럼 초록이 가득한 풍경의 객실 안에서, 엄마와 나는 뜬금없이 갈등을 벌였다. 갈등이 주제는 거기 있지도 않았던 아빠였다. 


엄마가 아빠에게 '을'을 자초하듯 희생하는 것이 싫었다. 전업주부의 가사 노동도 노동인데, 아빠는 그 노동의 무게를 가벼이 보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아빠는 엄마를 돕지 않는데, 엄마는 아빠를 돕기 때문에 이런 관계는 가족이라도 불공정하다고 여겨졌다. 나까지 부담을 보태고 싶지 않아 가만히 지켜보면서도, 스트레스받는 내적 갈등은 계속됐다.


매콤한 김치의 맛이 살아 있는 수제 만두. 갓 쪄낸 만두를 먹으면 겉쫄속촉하다. ⓒ 이현희


하다못해 나는 그렇게 좋아하는 엄마의 김치만두도 먼저 먹고 싶다고 말을 꺼낸 적이 없다. 결혼 후 가정주부부터 음식 장사, 구내식당과 유치원의 조리원까지, 반평생 음식만 하느라 손목까지 고장 난 엄마다. 엄마 손 사정도 모르고 "만두 한번 해 먹자" 너무도 가볍게 뱉는 아빠가 원망스러웠다. 집밥 장인인 엄마에게도 수제 김치만두는 큰 결심을 하고 시작해야 하는 일이다. 저렇게 힘든 일을 저렇게 쉽게 말하다니. 


나 혼자 끙끙 앓던 이 내면의 갈등에는 큰 착각이 존재했다. 사실 엄마는 만사에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타입이 아니다. 맛있는 것은 가족들에게 권하긴 하지만, 자기 것도 꼭 먼저 챙기고, 으레 '엄마' 하면 생각나는 희생적인 이미지보다는 자기 잇속을 차릴 줄 안다. 이런 엄마는 자신의 행동들이 희생이라면 자신의 삶이 너무 초라해진다고 거들었다. 


수험 생활 중인 동생이 점심 식사하러 오는 시간에 맞춰 국수라도 한 그릇 맛있게 끓여주는 일. 일 마치고 온 아빠가 집안일에 신경 쓰지 않도록 온종일 집안을 돌보는 일. 알레르기 비염이 심한 나를 위해 방의 먼지를 쓸고 닦는 일. 엄마의 일과는 가족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일로 채워져 있고, 그 일 사이에는 엄마의 즐거움이 가득하다. 


엄마의 김치만두로 끓인 떡만둣국은 하나둘 터지면서 그릇 전체에 만두의 향미가 가득해진다. ⓒ 이현희


나의 행복은 엄마의 행복이 아니다. 엄마의 행복은 나의 행복이 아니다. 가족을 위해 김치만두를 빚는 게 나에겐 수고로움이어도 엄마에겐 즐거움이다. 갈등은 그렇게 어느 한쪽을 종식하지 않고도, 한 발자국만 뒤로 물러나도 풀릴 수 있다. 칡과 등나무도 칡넝쿨이 등나무를 너무 많이 덮으면 등나무가 죽어, 칡까지 더 생존하기 어렵다고 한다. 앞으로도 김치만두가 먹고 싶다는 말은 내 입에서 나오지 않겠지만, 그렇다고 먼저 먹고 싶다는 아빠를 미워하진 않겠다. 맛있게 먹으면서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면 그만이다.




더 자세한 엄마의 김치만두 레시피


01 데친 숙주, 물기를 짠 두부, 생부추, 데친 당면, 물을 꼭 짠 김치를 다지고 간 돼지고기를 섞는다. 

(모든 재료의 물기를 꼭 짜는 것이 핵심이다.)


02 섞은 만두 속 재료에 후추, 참기름, 소금, 다진 마늘, 설탕을 조금씩 넣어 간을 한다. 

(김치 덕분에 양념을 많이 넣을 필요는 없다.)


03 만두피(이건 수제가 아니라 마트에서 사 온다)에 속 재료를 한 숟가락 이상 넣고 빈 곳이 없게 꼭꼭 싸준다.


04 찜기에 물을 끓여 뜨거운 김이 올라오면 만두를 얹고 약 10분간 찐다. 


05 돼지고기만 익으면 돼 만두피가 투명해지면 꺼낸다. 


06 한판 찐 후 꼭 맛을 보고 속 재료에 간을 추가하는 것이 좋다.


>> 갓 쪄낸 만두를 그냥 먹거나, 기름에 지져 군만두로 먹거나 취향껏 즐긴다. 떡만둣국에 넣고 싶다면 많이 만들어 냉동해뒀다가 해동 없이 그대로 떡만둣국에 사용하면 된다.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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