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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희 May 12. 2020

엄마도 못 하는 떡볶이가 있다.

집밥은 엄마가 만드는 무슨 무슨 요리가 아니다.


'집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저마다 다르지만, 그 의미는 항상 명료하다. 무슨 요리든 말만 하면 뚝딱해내는 엄마, 못 하는 요리가 없는 엄마가 만든 '무슨 무슨' 요리.


엄마는 집밥의 환상이 아니다. 물론 음식을 못 할 수도 있다. 소문난 요리꾼 우리 엄마도 내가 어릴 때부터 못 하기로 유명한 음식 두 가지가 있었다. 떡볶이와 빈대떡이다.

 

어마무시한 1인분. 사진 찍고 다 같이 먹었다. 진짜다. ⓒ 이현희

 

우리 엄마는 결혼할 때까지 제대로 할 줄 아는 요리가 없었다고 익히 들었다. 나처럼 귀하고 게으르게 자란 딸이라서가 아니라, 너무 이른 나이에 집을 떠난 탓이다. 어린 엄마는 서울에 상경해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과 살며, 돈 없을 때 회사에 싸가는 도시락 정도가 유일한 요리였으리라. 그 요리마저도 재료 살 돈이 없어 밥에 단무지만 들고 다녔기 때문에 거창하게 '요리'라는 이름을 붙일 것이 못 되었다.


그래서 우리 엄마가 지금 하는 요리의 대부분은 시어머니의 손길이 가득하다. 우리 아빠의 엄마, 내 할머니는 그 시대 모든 시어머니가 그랬듯 좋은 시어머니는 아니었던 듯하다. 스물일곱 엄마가 시집올 때부터 이미 환갑이 넘었던 시어머니. 아빠가 운영하던 가게로 출근하고 나면, 그 시어머니와 있는 시간이 숨 막힐 법도 한데 엄마의 외출조차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런 할머니에게 우리 엄마는 자신 대신 집밥을 차려줄 여자였을까? 어쨌든 할머니로부터 호되게 요리를 배웠던 엄마는 아빠의 입맛은 기가 막히게 겨냥했지만, 아이들 입맛에 맞는 요리를 내놓는 엄마는 아니었다.


바비큐 집 시절 대접에 아직도 떡볶이를 주는 엄마. 안 넘치는 게 신기할 만큼만 준다. ⓒ 이현희


특히 엄마는 떡볶이를 참 못했다. <입맛을 다시게 하는 추억>을 쓰고 있는 나로서도 어릴 때 기억 속 '추억의 떡볶이' 하면 집 앞 포장마차 떡볶이가 떠오른다. 그만큼 집에서 엄마가 한 떡볶이를 먹은 기억이 없다. 어쩌다 한 번씩 먹는 엄마의 떡볶이는 아빠가 운영하던 바비큐 집 양념을 쓴 떡'볶음'이거나, 요리 잘하는 사람이 만든 결과물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만큼 간이 안 맞았다.


보통 떡볶이에 들어가는 양념 재료라 하면 고추장, 고춧가루, 설탕, 케찹 같은 매콤- 달콤-한 것들이 연상된다. 엄마의 떡볶이도 매콤, 달콤하긴 했는데 이상하게도 간이 안 맞았다. 유독 엄마에게만 너무 어려웠던 떡볶이 간의 미스테리는 어느 날 너무 허무하게 풀렸다. 비결은 바로 '떡국' 편에서부터 이야기한 우리 엄마의 핵심 비법 '소고기 다시다'였다.


엄마 바로 밑 동생인 이모네 집에 놀러 갔다가 너무 맛있는 떡볶이를 먹게 된 거지. 그리고 엄마는 바로 그 떡볶이의 비결을 캐물었고, 너무 익숙한 재료를 듣게 됐다.


- "다른 건 다 똑같은데 소고기 다시다를 조금 넣으면 간도 맞고 감칠맛이 좋아"


지금도 떡볶이는 물론이고 형제 중 가장 요리를 잘하는 셋째 이모의 비법 역시 소고기 다시다라는 증거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구나'하고 말 단순한 비법에도 엄마는 매우 겸연쩍어하며, 국이나 찜 같은 밥반찬도 아니라 떡볶이에 다시다 넣을 생각을 못 했다고 감탄했다. 연이어 "다시다를 넣으면 되는구나"라는 깨달음의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떡국 떡으로 만들면 떡에 간이 잘 배서 더 맛있다. ⓒ 이현희


떡볶이 맛의 핵심 비법을 깨달은 엄마는 그 뒤로 간이 안 맞는 떡볶이를 만든 적이 없다. 떡은 쫄깃하고 말랑하니 적당하게 잘 익었고, 고추장의 걸걸한 매운맛과, 설탕의 달콤한 조화, 거기에 극강의 감칠맛 소고기 다시다까지. 어떨 땐 국물까지 시원하게 떠먹는 국물 떡볶이로, 어떨 땐 양념이 걸쭉해 뭐라도 찍어 먹고 싶게 만드는 포장마차 떡볶이 스타일이 된다. 파는 떡볶이가 부럽지 않으니, 마트 가면 자꾸만 비상용(?) 쌀떡을 카트에 넣게 되고, 아무 때나 먹고 싶으면 떡볶이가 먹고 싶다며 엄마 뱃살을 주무른다.



더 자세한 엄마의 떡볶이 레시피


01 떡이 잠길 정도의 물을 냄비에 붓고 설탕을 넣어 끓인다.


02 물이 끓이면 떡을 넣어 익히면서 설탕의 달짝지근한 맛이 떡에 배도록 한다.


03 떡이 어느 정도 말랑해지면 고추장, 케찹, 진간장 1숟가락, 다시다, 다진 마늘을 넣고 졸여준다.


04 소세지, 어묵등 넣고 싶은 부재료를 넣고 또 한 번 끓인다.


05 대파 등 넣고 싶은 야채를 넣어준다. 양배추처럼 딱딱한 야채는 부재료를 넣을 때 넣는다.


06 마지막으로 요리를 끝내기 직전 물엿을 넣고 반질반질한 윤택이 날 때까지 졸여준다.


07 애들이 맛있게 먹는다.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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