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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현희 May 04. 2020

엄마, 난 김치 이파리가 좋아

“왜 내 도시락 김치는 항상 ‘대’만 들어있지?”


스물다섯, 서울 한복판 강남에 회사원이라는 역할로 뚝 떨어졌다. 식비도 못 받는데 주변 식당 가격에는 0이 너무 많아서 사회 초년생 월급으로 버거웠다. 한두 달 정도 지났을 때 더는 점심을 사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럴 때 기대는 곳은 결국 엄마의 어깨다. 유치원 급식실에서 일하던 엄마는 매일 8시 45분에 집을 나서 출근을 했다. 그런데도 항상 내가 준비하는 6시 반이면 일어났다. 대단한 월급을 벌어오는 나의 아침밥을 차려 주기 위해서. 거기다 나중에는 점심 도시락까지 책임졌다.


엄마가 싸준 도시락에는 별다른 메뉴가 들어가지 않는다. 잘 지어 윤기 흐르는 밥과 편도 한 시간 반의 통근에도 상하지 않을 반찬들. 가끔은 딸이 좋아하는 햄, 계란 후라이 등이 번갈아 가며 들어 있었다.


살짝 맛은 들었는데 숨은 안 죽은 김치. 뭐든 자기주장이 강한 애들이 좋다. ⓒ 이현희


그중에서도 매일 빠지지 않았던 반찬은 역시 한국인의 김치. 다행히도 나는 김치를 싫어하는 한국인은 아니지만, 조금 까다롭다. 팍 익은 신김치보단 막 버무린 생 겉절이를 좋아하고, 김장 때 하는 배추김치의 경우 딱딱한 ‘대’보다 맛이 응축된 ‘이파리’ 부분을 좋아한다.


우리 가족의 김치 취향은 2:2로 갈리는 편인데, 겉모습부터 아빠를 많이 닮은 나와 아빠는 ‘이파리’를, 겉모습은 안 닮았지만 성격이 엄마랑 똑 닮은 동생과 엄마는 ‘대’를 좋아한다. 그런데 또 아빠랑 동생은 입안이 짜릿해지는 신김치나 묵은지를, 엄마와 나는 파릇파릇한 겉절이를 좋아한다. 김치 하나에도 이렇게 취향이 다르다.


취향은 달라도 어쨌든 김치를 사랑하는 마음만은 같아서 끼니때마다 배추김치, 알타리(총각김치), 석박지, 열무김치, 파김치, 꼬들빼기 김치 등 김치만 거의 5가지를 올린다. 우리 집 밥상에서는 제철 김치가 바뀌는 걸 볼 때마다 계절을 알 수 있다.


그런 집밥의 분위기가 그대로 도시락에 담겼으니 내 도시락 한쪽에는 항상 김치가 빠질 수 없었다. 일부러 출근 시간보다 일찍 일어나 도시락을 준비해주는 엄마의 성의가 항상 고마웠고 반찬 투정도 할 수 없었지만, 어쩐지 도시락 뚜껑을 열 때마다 불만 한 가지가 피어올랐다.


“왜 내 도시락 김치는 항상 ‘대’만 들어있지?”


요리에 꽤 재능이 있지만, 요리의 수고로움을 이겨내지 못하는 나. 그런 나는 엄마에게 반찬 투정을 거의 하지 않는다. 맛에 대해 평가도 하지 않는다. 워낙 맛있기도 하지만 아무나 해낼 수 없는 그 수고로움을 알기에 항상 칭찬을 보낸다. 하지만 어째서 내 도시락엔 김치 ‘대’만 들어 있는가?


현희에게는 이렇게 김치 이파리를 권해주세요. ⓒ 이현희


반년을 꼬박 참고 먹던 어느 날인가 저녁 밥상에 잘 익은 김치가 올라왔다. 엄마는 나에게 김치가 너무 잘 익었다며 역시 하얀 ‘대’ 부분을 권했다. 나는 내 입에서 질문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엄마 왜 도시락 김치에 항상 대만 넣어줘?”


엄마가 대답해준 이유는 무척이나 간단했다.


“현희 네가 대 부분을 좋아하잖아?”


그렇다. 엄마는 내가 싫어하는 걸 줄 리가 없다. 그냥 나를 몰랐을 뿐이다.


"아니야, 나는 ‘대’를 좋아한 적이 없어, 항상 ‘이파리’만 골라 먹느라 아빠 눈치를 보는걸."


"그랬구나. 엄마는 몰랐어."




내가 이파리 사랑을 공표한 다음 날. 내 도시락 반찬 칸에는 오롯이 김치 이파리만 들어 있었다. 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에도, 그다음 날의 다음 날에도. 퇴사할 때까지 꼬박 쌌던 내 도시락 속 김치는 항상 이파리 부분이었다.


엄마와 등산을 하면 항상 우리는 내려오는 길이 더 돈독하다. 이상하게 어릴 때부터 나는 내리막길을, 게다가 계단이어도 잘 못 내려온다. 그래서 내 내리막길엔 항상 엄마의 손이 있다. 행여라도 딸이 넘어질까 꼭 붙잡느라 맺히는 땀도 함께. 그런 엄마가 내가 싫어하는 반찬을 싸줄 리가 없지.




더 자세한 엄마의 김장김치 레시피




01 '배추를 절인다 / 절임 배추를 산다' 중 선택한다.

(우리 집의 경우 몇 년 전부터 간편한 절임 배추를 마트에서 주문해다 쓴다. 김장 시간에 맞춰 배송된 절임 배추는 물기를 꼭 짜면 준비가 끝난다.)


02 찹쌀가루를 물에 갠 뒤 끓이며 되직하게 쑨 후 식혀준다.


03 고춧가루, 까나리액젓, 새우젓, 설탕, 다진 마늘을 넣고 김장 속을 버무릴 양념장을 만든다.


04 무는 채를 썰고, 갓과 쪽파는 무와 비슷한 크기로 뚝뚝 썰어준다.


05 김장 속재료와 양념장을 버무려 속 김치를 만들고, 속 김치만도 먹는 아빠를 위해 조금 덜어 둔다.


06 물기가 빠진 절임 배춧잎 한장 한장 사이에 김장 속 김치를 넣는다.


07 속 김치를 다 채우면 머리를 말듯 배추를 둥글게 싸서 김치 통에 차곡차곡 넣는다.


08 (겨울 기준) 베란다(또는 바깥)에서 5~6일간 숙성한 후 김치냉장고에 저장한다. 도중에 김칫국물이 넘칠 수 있어 세심한 관심이 필요하다.


09 맛있게 먹는다.




2019 김장에 처음 도전한 후 <김치는 사 먹는 것이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 이현희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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