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는 내 눈앞의 도시가 지겹다. 평생 어느 곳으로 시선을 돌려도 그저 건물뿐이었다. 도시를 지겨워하게 된 계기는 뻔하다. 제주도 때문이다. 자연 속에서 살며 자연스럽게 '자연의 맛'을 봤다. 그 뒤로 산, 나무, 꽃, 바다의 '덕후'가 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여기까지는 일반적인 도시 사람이랑 비슷하다.
'평범한 도시 사람? 에이, 나는 아니지.' 이 자부심은 우리 엄마가 시골 사람이란 데서 출발한다. 엄마의 고향은 가는 길조차 사라진 태백산의 산골짜기. 그 옛날 탄광촌 사람들이 집을 짓고 사느라 조성된 작은 마을이다. 학교 가는 길이 10리가 넘고, 그마저도 고개를 3번은 넘어 꼬불꼬불 이어진 산길을 따라가야만 했다.
이런 길을 걸으면 하는 말. '학교 다니던 길이 이만큼만 잘 닦였어도 하루에 10번은 갔다!' ⓒ 이현희
엄마가 시골 사람이면 좋은 점이 하나 있다. 주변에 보이는 꽃과 열매가 무엇인지 궁금할 때 검색 대신 엄마로 해결된다. 엄마는 그 시절 따 먹던 보리수 열매와 마주치면 우리가 묻지 않아도 "어머 보리수가 다 있네."하고 꼭 한 번이라도 어루만졌다. 그런 엄마에게 괜히 "엄만 어떻게 이런 걸 다 알아?", "보리수 열매는 무슨 맛이야?", "안에 씨가 있어?"라고 질문을 퍼붓는 게 나의 사랑 표현이다.
그렇게 엄마를 사랑하다 보니 이제 나도 도시 촌것치고는 쫌 자연을 안다. 이맘때 산에 가서는 산딸기와 뱀딸기를 알아보고, 진달래 꿀이나 찔레순 먹는 방법도 아는 수준이다. 아무래도 먹을 수 있는 것에 더 관심이 간다. 그중에서도 단연 눈에 띄는 자연은 '망초대'다.
엄마, 아빠와 셋이서 30분 만에 모은 망초대. 이 사진을 찍고 한 주 뒤 아빠가 이만큼 더 뜯어 왔다. ⓒ 이현희
망초대 나물은 몰라도 여름이면 지천에 피는 망초꽃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거다. 망초대 나물은 봄에 망초꽃의 새로운 줄기가 한 뼘 남짓 올라올 때 윗부분의 여린 순을 꺾어서 삶아 먹는다. 꽃이 필 만큼 커버리면 억세서 먹을 수 없고, 비실비실한 놈들보다 통통한 놈을 골라야 먹을 만하다.
도시의 길에서도 쑥을 한줌 뜯는 아주머니들은 흔한 풍경이지만, 망초대 꺾는 젊은 여자는 흔치 않은 풍경인가 보다. 이모네 밭에서 망초대를 톡- 톡- 꺾고 있으면 옆의 밭에서 주말 농사를 짓던 분들에게 이런 말을 꼭 듣는다. "그게 뭐예요? 먹을 수 있는 거예요?"
망초대로 지은 밥, 씁쓸한 밥에 만능 간장 양념을 쓱싹 비벼 먹으면 저절로 다음 숟가락이 땡긴다. ⓒ 이현희
예, 먹으려고 꺾는 겁니다. 이게 삶아서 시금치처럼 조물조물 무쳐도 맛있고, 곤드레처럼 밥 지을 때 넣어도 맛있고, 얼갈이처럼 된장국에 넣어도 맛있다고요. 이게 그렇게 만능 나물입니다. 이 나물로 할 것 같으면 태백산 산골에 살던 우리 엄마의 엄마, 할머니 때부터 무쳐 먹던 그런 나물 입죠.
무슨 맛이냐고 물으신다면, 사실 그렇게 엄청 맛있는 나물은 아니다. 식감은 유채나물이랑 비슷하고, 어른 입맛에도 조금 쓰다. 이 특별할 것 없는 망초대 나물의 장점은 맛보다 어마어마한 성장력에 있다. 형제가 여덟이나 돼 지금의 나처럼 잘 먹지 못했던 엄마한테는 꺾어도 꺾어도 계속 다시 채워지는 뷔페 같았을지도 모른다.
올해 우리 가족은 이모네 밭 옆에 자란 망초대를 꺾었다. 이제 우리 집은 굳이 길가의 나물을 뜯지 않아도 먹고살 만하지만, 망초대를 꺾는 것은 굉장히 중독성이 있다. 처음엔 "망초대 안 지겨워?"하다가 톡- 톡- 계속 꺾다 보면 "그만 가자~"하는 엄마 목소리에도 "응~ 조금만 더~"를 자꾸 외치게 되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