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는 항상 돼지고기 김치찌개다.
어느 집이나 ‘사 먹는 것보다 맛있다’하는 영혼의 집밥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집은 엄마가 요리를 잘하는 통에 그 영혼의 집밥이 너무 많아서 탈이지만, 나에게 영혼의 집밥이 무엇이냐 묻는다면 첫 번째는 항상 돼지고기 김치찌개다.
엄마가 요리를 잘하는 집 자식들은 하나 같이 공통점이 있다. 몸이 튼튼하다. 편견일 수 있지만 내 주변은 다 그렇다. 나 역시 마찬가지로 맛있는 엄마 밥을 탐하다 보니 나날이 몸을 불리고 있다. 동생과 내가 엄마 밥을 너무 맛있게 먹고 있으면 지나가던 아빠는 꼭 한마디 한다.
“당신이 음식을 너무 맛있게 하니까 쟤들이 살을 못 빼지!”
그런 아빠의 말에도 나는 틈틈이 다이어트를 시도해왔다. ‘식단 관리를 해야지’, ‘이번엔 꼭 살을 뺄 거야’ 굳은 다짐을 하고 풀과 건강함만이 가득한 식사를 며칠 이어간다. 그러다 무너진다. 무엇에? 엄마의 돼지고기 김치찌개에.
이상하게도 내가 다이어트만 결심하면 엄마는 김치찌개를 끓인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엄마의 집밥이자, 이성을 잃는 메뉴라는 걸 알면서도. 늘 엄마도 딸의 다이어트를 바라건만, 내가 세상에서 1g이라도 줄어드는 게 싫은지 다이어트만 시작하면 어김없이 돼지고기 김치찌개 냄새가 풍긴다.
엄마의 김치찌개는 절대 이길 수 없다. 일단 김치 익히기에 탁월한 소질을 갖춘 엄마표 신 김치를 사용해 만들기 때문에 냄새부터 사람을 미치게 한다. 고기도 요즘에는 삼겹살을 써서 돼지기름의 감칠맛이 신 김치를 감싸 안아 어디에도 없는 ‘미친 맛’이 탄생한다. 그렇다고 목살이나 앞다릿살 등 기름 없는 부위를 쓰면 내가 싫어할까? 그건 또 아니다.
이렇게 김치찌개에 미쳐서 살아온 세월이 10년을 넘었다. 엄마가 한 김치찌개는 어린이였던 나의 입맛에 그다지 맞지 않았는데, 또 엄마로 인해 나의 영혼의 집밥이 돼버렸다. 맛있게 먹기 시작한 건 우리 감자탕집에서였다. 이 장사 저 장사를 전전하던 엄마, 아빠는 내가 고등학생 무렵부터 감자탕 장사를 시작했다. 물론 감자탕도 끝내주게 맛있었지만(-막간 홍보- 감자탕 이야기도 <입맛을 다시다>에서 계속됩니다) 나의 하이라이트는 늘 돼지고기 김치찌개였다.
목살을 썼지만 고기의 깊은 감칠맛이 꽉 차 있던 그때의 김치찌개. 비결은 감자탕 육수였다. 감자탕에 들어가는 등뼈를 푹 쪄내면 살이 쏙쏙 발라지는 맛있는 등뼈와 돼지고기·마늘의 감칠맛으로 꽉 찬 육수를 얻을 수 있다. 우리 감자탕집에서는 이 육수를 써서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였는데, 기름지기는커녕 굉장히 깊고 담백했다. 예나 지금이나 '기름기'를 혐오하는 엄마가 육수를 끓이는 내내 불순물과 기름을 걷어냈기 때문이었다. 사골 국물이나 마찬가지인 깊은 맛의 국물을 썼으니 어떻게 맛이 없을까.
그냥 고슬고슬한 밥에 새빨간 국물과 잘 익은 김치, 보들보들한 돼지고기를 얹어 먹으면 온갖 시름이 잊혔다. 엄마, 아빠가 한창 감자탕집에서 김치찌개를 팔던 시절 나는 왕복 5시간 거리 학교에 다니는 '통학러'였는데, 한 번씩 가게로 하교하면 편도로 3시간이나 걸렸다. 그 통학의 서러움을 모두 달래주는 맛이었다.
도착하기 한 시간 전부터 배고프다고 문자를 징- 징- 울려대면 엄마는 어김없이
"라면 사리 하나 넣어줄까?"
라는 달콤한 유혹을 건네왔다. 살짝 덜 익은 라면 면발이 김치찌개 국물을 한 아름 끌어안으면 식사가 시작됐다. 당시 우리 감자탕집에서 판매하던 김치찌개 2인분에 라면 사리 1개, 공깃밥 1개가 나의 정량이었다. 이렇게 뱃골이 크니 지금도 돼지고기 김치찌개는 내 뚝배기가 가장 크다.
더 자세한 엄마의 돼지고기 김치찌개 레시피
일단 김치가 맛있어야 한다.(레시피 인터뷰 때 엄마는 본인의 김치 자부심을 한껏 뽐냈다)
01 아주 새콤하게 잘 익어 너무 맛있는 김치를 한입 크기로 넙적넙적 썰어준다.
02 삼겹살 또는 목살을 두툼하게 한입 크기로 썰어준다.
03 돼지고기와 김치를 함께 냄비에 넣고 참기름만 살짝 둘러 볶아준다.
04 재료가 잠길 만큼 물을 붓고 두부, 잘게 썬 청양고추 등 대파 제외 넣고 싶은 부재료를 넣어준다.
05 소금, 다진 마늘 1스푼, 고춧가루를 넣고 김치가 물러질 때까지 팔팔 끓이며 푹 익혀준다.
06 먹기 직전 대파를 위에 뿌리고 꺼내서 맛있게 먹는다.
[이야기 끝]
- 깊은 공감이 일어난다면 작가 구독과 라이킷♥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