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를 뜻하는 말에 겨우 ‘돌’이 붙고 난지 얼마 안 돼, 나는 엄마보다 다섯째 이모와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연년생으로 동생을 낳아 두 아이 육아가 너무 벅찼던 엄마는 가장 믿음직하면서도 마음 편히 부탁할 사람으로 이모를 골랐으리라. 이모는 낮이면 돌쟁이인 나를 서너 살이 될 때까지 돌봐줬고, 그러느라 밤에만 일할 수 있는 공장을 다녔다.
그래서인지 이모는 항상 내게 이모가 아닌 ‘두 번째 엄마’ 같았다. 이모의 타고난 무뚝뚝함과 나의 까칠함으로 인해 지금의 우리는 서먹하고도 평범한 이모와 조카 사이가 됐다만, 그래도 내 맘속 두 번째 엄마를 꼽으라면 그건 반드시 내 다섯째 이모다.
더 뒤로 시간이 흘러 이모의 첫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도 나는 늘 이모를 엄마처럼 따랐다. 이모도 나를 딸처럼 챙겼다. 2년 터울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이모는 자기 자식이 우선일 법도 한데, 항상 나와 내 동생을 친자식처럼 아껴줬다.
아니, 친자식처럼 아껴준 그 따뜻한 마음이 기억 속에 오래도록 박혀 있다. 내가 중학교에 들어간 후 우리 집 형편이 어려워지자, 이모가 우리를 더 많이 챙겼다. 학교에 입학했을 때, 졸업했을 때, 명절마다, 내 생일. 축하가 필요한 순간마다 이모는 늘 우리 엄마보다 더 큰 선물을 준비했다.
그렇게 이모가 나한테 해준 선물과 마음이 한둘이 아니더랬다. 시간이 지나 어린 시절의 기억은 흐려지고 이모에 대한 추억도 드문드문해졌지만 지금도 내 마음엔 급하게 뒤집어 노른자가 질질 흐르는 계란후라이 속에서 넘쳐흐르는 이모의 사랑이 가득하다.
계란후라이 전용 팬이라 일부러 터지게 만들기 어려웠다. ⓒ 이현희
이모의 계란 후라이를 생각만 하면 나는 열한 살로, 내 동생은 열 살로 돌아간다. 아빠와 함께 장사에 나선 엄마는 낮부터 밤까지 종일 집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알아서 밥을 먹어야 했다. 이모네 집 근처 학원에서 방학 특강을 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 방학 특강은 중간에 점심시간이 껴 있을 정도로 온종일 수업이 이어졌다. 다른 아이들은 집에 가서 밥을 먹고 오는데, 우리는 학원도 멀고 엄마도 없어서 늘 이모네를 찾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은 이모가 우리에게 특식을 주고 싶었는지, 짜장면을 시켜주겠다고 했다. 대책 없이 우리는 짜장면을 먹어서 좋았고, 그렇게 40분 넘게 짜장면을 기다리며 사촌 동생들과 놀았다.
우리가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시간은 1시간. 짜장면을 시킨 지 40분. 발만 동동 굴리던 이모는 다시 중국집에 전화를 걸었다. 주문 누락이었는지 수화기 너머 상대방에게 무척 무섭게 화를 냈다. 다시 오 분이 지나고 이모는 정말 급하게 부친 계란후라이 5개에 찬밥으로 점심을 차려줬다.
막 부쳐온 계란 노른자는 무척 뜨거운 반숙이었다. 계란 후라이 맛이야 뻔하지만 뭐. 이모는 4살, 2살인 자기 아이들만도 정신없을 텐데 밥 굶게 생긴 조카들에게 연신 사과했다. 허겁지겁 먹고 우리는 다시 학원으로 달려갔다. 그렇게 내 일상 속으로 그 계란후라이 맛은 사라졌다.
그래도 누군가 “이모가 해준 음식 중에 뭐가 제일 맛있니?”하고 묻는 날이면 늘 계란후라이라고 대답한다. 다른 계란 후라이 말고. 그날의 그 다 터진 계란 후라이 다섯 개.
찬밥과 함께 그려보는 이모의 계란 후라이. ⓒ 이현희
더 자세한 이모의 계란 후라이 레시피
- 재료 : 날계란 5개, 급한 마음
01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두르고 한 5초 뒤 바로 계란 5개를 깨준다.
02 이 레시피의 가장 중요한 점은 급한 마음이기 때문에 매우 초조해한다.
03 흰자가 아직 물 같을 때 계란 후라이를 뒤집어 준다.
04 한 5초 뒤 다시 또 뒤집어 준다.
05 노른자가 터지면 완성. 실패할 경우 다시 01로 돌아간다.
[이야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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