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자식을 키우는 희로애락을 말하는 것처럼 자식을 그리워하는 희로애락도 공평하게 말할 수 잇기를, 느닷없는 눈물도 대화의 일부로 예사롭게 받아주기를 바랄 뿐이다. 기쁨을 말하듯이 슬픔도 심상하게 말하게 해 달라는, 눈물도 일종의 말이라는 그의 요청은 이 슬픔의 시대에 공동체가 익혀야 할 삶의 기술이 아닐까. 기쁨을 나누는 일은 배우지 않아도 사는 데 무리가 없지만, 슬픔을 나누는 일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사람의 일이라는 것을 강석경 씨를 만나면서 알았다.
-<알지 못하는 아이의 죽음> 19p-
홍세화의 <생각의 좌표>에서 8세기 프랑스 교육철학자 콩도르세는 사람을 ‘생각하는 사람’과 ‘믿는 사람’으로 나누었다는 글을 읽었다. ‘생각하는 사람’은 생각이 어떻게 내 것이 되었는지를 물으며 고착된 생각을 바꿀 가능성을 열어 둔다. 반면 생각을 믿는 사람은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변화 가능성조차 갖지 못한다. 묻고 생각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게 되지만 의심하지 않으면 자신이 어떤 사람인 지조차 알지 못할 수 있다. 나는 생각하는가? 믿는가?
나는 예민하다. 무던하다고 믿었는데 감정을 억누르고 생각을 표현하지 않았을 뿐, 외부의 작은 자극이나 변화도 크게 느끼고 반응했다. 자연스럽게 변화보다 안정을 추구했고 취향과 시선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슬픔과 아픔은 자극적이라 피하고 의도적으로 삶의 밝은 면만 보았다. 이웃의 힘들고 아픈 이야기에 귀를 닫았고, 어둡고 우울한 모습에 눈을 감았다. 마음을 위로하고 따스함을 전하는 책만 읽었고, 감정의 낙차가 큰 영화는 긴장되어서 볼 수 없었다. 여행을 갈 때도 안전하고 청결한 장소만 찾았다. 비판적으로 생각하고 다양한 감정을 느끼기보다 익숙하고 편안한 곳에 머무르며 삶을 있는 그대로 믿고 따랐다.
‘믿는 사람’이었다. 생각과 감정이 궁금하지 않았다. 종종 물음표나 느낌표가 생겼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일상은 마침표만 찍으며 나아가기도 바쁘지 않은가! 점점 머리와 심장은 사라지고 팔과 다리만 기계처럼 살고 있었다. 다양한 자극이 아프고 힘들다며 무작정 벽을 쌓다 보니 한정되고 고립된 삶 속에 웅크리고 있었다. 행복한 순간의 합은 행복한 삶이 아니었고, 따스한 빛만 쫓던 삶은 결코 찬란하지만은 않았다. 어둠이 사라진 곳엔 빛도 존재하지 않았다. ‘믿는 삶’이 허상처럼 다가왔다.
“슬픔을 나누는 일은 반드시 배워야만 하는 사람의 일”이라고 한다. 배우지 못했기에 슬픔을 감추고 억압하며 살았던 걸까? 슬픔을 나누는 방법을 글을 통해 배워간다. 슬픔을 나누며 비로소 ‘생각하는 사람’으로 변모한다. 뛰어난 사고의 결과를 만들지 않아도 믿고 있는 생각에 의문을 품은 것으로 충분했다. 믿음을 의심하자 정체가 보인다. 부모, 가족, 주변 관계 그리고 언론 매체에 영향을 받아 자연스럽게 가치관을 형성했고, 무의식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특히 슬픔과 아픔은 참고 삶은 견뎌야 한다며 스스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믿음은 폭력조차 가렸다. 글을 쓰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질문하고 느껴야 했다. 낯선 길을 걷고 불편한 기억을 더듬어본다. 조심스럽게 눈을 뜨고 귀를 열어 무딘 감각과 굳은 생각에 생명력을 불어넣어본다. 두렵고 힘겹지만 ‘나’가 보이고 느껴진다.
슬픔과 아픔은 여리다. 기쁨이나 즐거움에 쉽게 압도당할 수 있다. 행복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사회일수록 부드럽고 연약한 삶을 섬세하게 대해야 한다. ‘인생 다 그런 거지’라며 무심하게 뭉쳐서 가볍게 털어버리면 안 된다. 행복과 슬픔, 나와 너의 모든 삶의 조각을 허투루 대하면 안 된다. 찬란한 빛뿐 아니라 칠흑 같은 어둠도 마주해야 한다. 낮과 밤처럼 공존하고 빛과 그림자처럼 함께 해야 한다. 내 삶이 특별하고 소중하듯 나와 다른 상태의 삶을 인정하고 귀하게 대해야 한다. 자식을 잃고 가슴을 치고 또 치던 한 부모가 타인의 아픔에 귀를 열고 버스 옆 자리 사람의 얼굴을 살피는 모습에 눈물이 흐른다. 생각하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자 단단하게 얼어붙은 내 마음도 꿈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