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수업>을 읽고
‘열심히’ 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그 순간이 나의 ‘최선’ 일 수도 있습니다 <라틴어 수업> p.84
다이어리를 펼치지 않은 지 두 달이 지났다. 일어나고 싶을 때 일어나고 하루 중 꼭 해야 하는 일을 제외하고 더는 욕심을 내지 않으니 기록할 필요가 없다. 늘 하고 싶은 것이 많아서 가능성 이상을 계획했다. 양손 가득 쥐고 있던 욕심을 많이 내려놓았다 생각했는데 여전히 숨을 헐떡인다. 이상하지?
더 많이 하려고 애쓰지 않은 삶은 나태하고 게으르다 생각했다. 숨이 목구멍까지 차 있지 않으면 자책하게 된다. 이렇게 살면 안 된다고. 더 노력하고 최선을 다하라고. 나에게 휘두르는 채찍질에 잠깐의 쉼도 불편했다.
여느 때와 다른 느슨한 시간을 꽤 오래 보내다 보니 알게 되었다. 일상 속에는 이미 차고 넘칠 만큼 할 일이 쌓여있었다. 무의식적으로 많은 일을 해냈고 굳이 계획하지 않아도 몸이 자동적으로 일상을 굴리고 있었다. 나를 꾸짖는 대신 매 순간 '최선'을 다한 과거를 꼭 안아주어야겠다. ‘최선’의 모습은 늘 다르니까.
시간은 가장 훌륭한 재판관이다.
<라틴어 수업> p.123
시간과 루틴에 강박적일 만큼 집착한다. 시간을 쪼개고 또 쪼개야 바쁜 일상에서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떤 날은 열심히 사는 모습이 대견해서 활력 넘치는 하루를 보내지만, 불쑥 허망한 마음이 몰려올 때면 의구심을 갖는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아등바등 살고 있나!
누구에게나 하루 24시간은 공평하게 주어지지만 모두 같은 24시간을 살지 않는다. 삶의 모습이 각양각색이듯 시간을 대하는 자세도 제각각이다. 나는 효율적으로 살고 싶었다. 하고 싶은 일을 더 많이 하고 원하는 목표를 더 빨리 달성해야 했다. 외적으로 보이는 목표와 성취에 집중했다. 하지만 시간 관리는 단순히 계획하고 기록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았다. 시간 안에 직접 뛰어들어 직접 내 몸으로 시간을 살아내야 한다. 시간을 온몸으로 통과하고 나면 서서히 '그런 사람'으로 변해갔다. 매일 일기를 쓰고 운동하고 책을 읽는 사람으로, 막연하게 꿈꾸던 삶이 어느새 내 앞에 펼쳐졌다. 시간관리는 바로 존재 관리이다. 시간에 관심을 갖고 욕심을 내는 것은 그만큼 삶에 정성을 다하고 꿈꾸는 모습으로 살아가고 싶은 절실함 때문이었다.
더는 아등바등 사는 나를 타박하지 않으련다! 내가 원하는 것을 마음껏 꿈꾸고 만족할 만큼 당당하게 애쓸 것이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지 않을 뿐 절대 변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변화는 하루의 작은 움직임이 모여야 한다. 묵묵히 몸이 만들어가는 시간이 쌓여야 한다. 지금 이 순간 나아가는 한 걸음이 내가 누릴 수 있는 전부이다.
차근차근... 천천히...
나는 내 길을 가야 하고 이때 중요한 것은 '어제의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은 정확히 모르는 내 걸음의 속도와 몸짓을 파악해나가는 겁니다. 공부는 무엇을 외우고 머릿속에 지식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걸음걸이와 몸짓을 배우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라틴어 수업> p.181
어제를 제대로 살지 못한 오늘은 바쁘고 어수선하다. 꺼림칙한 마음을 풀지 못하면 오늘이 유난히 무겁고 힘들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살아간다면 오늘도 무미건조한 하루가 될 가능성이 높다. 오늘은 어제에서 태어난다. 과거를 되돌리거나 고칠 수 없다. 어제 보낸 시간에 대한 후회만 점점 쌓여갈 것이다. 어찌할 수 없는 과거가 지배하는 삶 속에서 우리는 무기력해질 수밖에 없다.
강물은 흘러 바다가 되고 물고리를 품는다. 강력한 생명력을 품고 있고 생명은 계속 변한다. 다행히 오늘도 흘러간다. 어제의 삶에서 태어난 오늘은 머물지 않고 내일로 흘러간다. 어제의 모습이 어떻든 당장 새로운 다짐을 하고 변화를 시도한다면 다른 내일을 선물할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나이 드는 것이 막연히 거부감이 들고 두려웠다. 아쉬움과 후회로 쑥쑥 크는 아이들에게 천천히 크라고 자주 말했다. 흘러가는 시간은 축복이라는 생각의 씨앗이 싹을 틔운다.
무심한 시간을 흘러 흘러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이르렀다. 다른 오늘을 맞기 위해 단장하기 딱 좋은 때이다. 다시 다이어리를 펼쳤다. 지난 시간 공백이 마음을 불편하게 하지만 괜찮다. 지나 온 시간 최선을 다 했고 여전히 걸어가고 있으니. 지난 시간을 담담히 덜어내고 선물 받은 내일을 새롭게 담아본다. 가 본 적 없는 길이라 어떻게 걸어갈지 모르겠다. 찬찬히 나 아가다 보면 내년 이 맘 때는 '나만의 걸음걸이와 몸짓'을 배웠을 것이라 믿을 뿐이다. 걸음마를 배우는 한 살 배기의 마음에 다짐의 매듭을 짓는 자세를 더해가고 싶다. 상상만으로 설렌다.
토끼 눈을 하고 밤늦게까지 책을 읽다가 깜박 잠이 들었다. 화들짝 놀라 잠이 깨서 뒤죽박죽 엉킨 생각의 타래를 글을 풀어가며 어제를 돌아보고 오늘을 다독이며 내일을 꿈꾼다. 쉽게 풀리지 않지만 자판 위에 손을 멈추지 않으니 글이 나아간다. 마침표를 찍고 나니 새로운 내일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