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서 한 달 살기>를 읽고
“나는 책을 천천히 여러 번 일어야 제대로 이해하고 공감한 기분이 든다. 빨리 읽고 내용을 단번에 파악하는 사람이 대단하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오늘도 느릿느릿 같은 책을 읽고 또 읽으면서 천천히 책에 빠져드는 감각은, 나만이 아는 아주 특별한 장소가 생기는 것처럼 소중하다. 책이 선물해 준 시간이 고마웠다.”
<책에서 한 달 살기> p.195
매주 한 권의 책을 읽고 책 속 한 장면을 음미하며 글을 쓴다. 만 3년째 이어오는 일상이다. 2월 마지막 주에 만날 책을 준비하러 도서관에 갔다. 책을 찾는데 컴퓨터 빈 화면에 “해당 도서가 없습니다.”라는 글자만 나타났다. 뭐지? 마침 집 앞 중고 서점에서 모임 책을 만났다. 후다닥 읽고 되팔기 딱 좋은, 얇고 가벼운 책이었다.
<책에서 한 달 살기>라는 제목에서 호기심과 거부감이 묘하게 교차했다. 요즘 한 달 살기가 유행인데 책에서 한 달 살기라는 기획이 기발하게 느껴졌다. 하루에도 엄청난 책이 쏟아지는 세상에서 한 달 동안 같은 책을 열 번 읽고 열 번의 리뷰는 남긴 사람이 궁금했다. 한편 읽어보지 않은 책에 대한 소개는 쉽게 공감하지 못하는 편이라, 멀찍이 들고 책을 펼쳤다.
‘OOO 한 달 살기’를 소개하는 글을 읽으면 따라 해보고 싶은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오른다. 한 달 살기는 한 달 여행과는 완전히 다르다. 여행은 ‘유럽 5개국’처럼 방문하는 장소가 궁금하다. 반면 한 달 살기에는 지내는 지역보다는 익숙한 일상에서 벗어나서 한 달이라는 시간을 천천히 느끼고 즐기는 삶 자체가 부럽다. <책에서 한 달 살기>도 비슷했다. 저자가 소개하는 책은 삶에 대한 시선과 태도를 보여주기 위한 매개일 뿐이었다. 책을 자세히 소개하지도 않았고 나도 등장하는 책에 시선이 가지 않았다. 책이라는 평범한 도구를 삶의 든든한 벗으로 사귀어가는 한 달의 시간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책을 바짝 당겨 들었다.
4년 전부터 꼬박꼬박 읽은 책이 400권이 넘었다. 점점 읽고 싶은 책이 많아지고 무서운 속도로 쌓여갔다. 빨리 읽지 않으면 무너져내려 나를 덮쳐버릴 것 같아 위협적으로 느껴졌다. 아무리 빨리 읽어도 책 탑의 높이는 줄어들지 않았다. 권태를 느끼기 시작할 때 즈음 글쓰기 모임을 이어가는 마음을 생각해보았다. 책을 통과한 나를 온전히 느끼고 다채롭게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시간을 참 좋아했다.
나는 책을 천천히 읽고 느리게 파악하고 찬찬히 음미하는 사람이다. 책을 읽을수록 빨리 읽을 수 있다는데 여전히 책 한 권에 꽤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저자가 전하려는 메시지에 집중해야 한다지만 자주 엉뚱한 곳에 발길이 머문다. 책은 실천을 통해 변화를 이끌어야 가치가 있다는데 뒷걸음질 칠 때도 많다. 가끔 누군가 묻는 듯하다. 도대체 매일 책을 왜 읽느냐고. ‘그러게요. 저도 궁금합니다.’
100권, 200권,.. 400권의 꾸준히 책을 읽어가는 길에서 오늘은 <책으로 한 달 살기>를 만났다. 시큰둥하게 펼쳐 든 책은 나를 곁에 앉혀 두고 실타래를 풀듯 천천히 이야기를 들려준다. 무심히 이야기를 듣다가 어떤 구절에는 줄을 긋고 종이 한쪽을 접어두기도 하고 연필을 들고 끼적였다. 독서를 통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조언하는 대신 ‘괜찮아! 여행처럼 천천히 즐겨..’라고 조용히 말한다. 감미로운 속삭임에 책을 쉽게 팔지 못할 것 같다.
500권, 천 권, 만 권의 책을 만나는 삶 속에서 책과 함께 하는 시간에 정성을 다하고 아낌없이 마음을 나누어 봐야겠다. 책이 풀어낸 실타래로 내가 원하는 것을 즐겁게 만들어가면 충분할 것이다. 풀었다, 떴다를 반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