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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눈부신 일상 Jul 13. 2024

보탬이 되는 사람

엄마의 기도


우리나라 최북단 차밭이 있는 산학 다원으로 나들이를 다녀왔다. 2년 전부터 기다린 시간이다. 오랜 기다림 속에 차에 대한 마음은 더욱 깊어졌고 잘 숙성된 즐거움과 설렘을 품고 고성으로 향했다.


작고 소박한 다원은 농약과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자연 상태로 차나무를 재배는 청정 차밭이다. 자연 그대로를 만나기 힘든 시대에 귀한 곳에서 더 귀한 경험을 시작했다. 혼자가 아니라 세 아이들과 남편까지 함께 하는 시간이라 기대되면서도 걱정도 되었다. 나뿐 아니라 그들에게도 재미있고 뜻깊은 시간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때문이었다.


한 나절만에 차를 따고 차를 만들기는 시간이 부족하기에 다원에서 미리 찻잎을 따두었다. 차밭을 구경하고 찻잎을 따는 체험을 잠시 해보고 바로 차 만들기를 시작했다. 그럼에도 오전에 시작한 일은 저녁이 가까워서야 겨우 마무리할 수 있었다.


차를 만드는 과정은 단순한 행동의 반복이었다. 찻잎을 불에 덖고 비비며 말리는 과정을 아홉 번 이상 반복했다. 한쪽에서는 큰 소쿠리에 가득 담긴 찻잎을 절구로 하염없이 찧었다. 처음에는 찻잎을 덖고 비비는 과정이, 절구를 찧는 과정이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점점 횟수가 반복되자 자꾸 끝을 찾게 되었다. 강한 자극에 익숙한 우리에게 무척 밋밋하고 지루한 시간이었다.

'우리 아이들은 괜찮나?'


흐르는 땀을 닦으며 굽혔던 허리를 펴고 위로 팔을 올려 기지개를 쭉 켜며 제다실 안에 아이들을 찾았다. 아이들은 옹기종이 모여 앉아서 열심히 절구질을 하고 있었다. 힘들면 서로 교대했다. 한 명은 절구를 찧고 다른 한 명은 절구통에 찻잎을 뒤적였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도 아이들은 힘들다 내색하지 않았고 웃음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찧은 잎을 떡살에 넣고 꼭꼭 눌러서 예쁘게 떡차를 만들었다. 어른들의 손보다 작고 부드러운 아이들의 손길이 더 야무졌다. 찻잎이 조금 더 곱게 찧어야 떡차 만들기가 쉽다는 것을 알고 다시 절구질도 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고 시키지 않았다.


어른들이 뜨거운 가마 옆에서 녹차를 만드는 동안 아이들은 떡차 만드는 일을 맡아주었다. 든든했다. 아이들 덕분에 늦지 않게 두 가지 차를 완성할 수 있었다. 어른들이 제다실을 청소하는 동안 아이들은 방에 모여서 완성된 차를 소분했다. 0.1g의 오차도 용납하지 않을 매서운 눈매였다. 차를 봉지에 담고 기계로 입구를 막는 과정은 신기하고 재미있었는데, 아이들은 혼자 다 하지 않고 조금씩 나눠서 마무리를 했다. 차를 즐기는 아이들이라 마음도 넉넉했다.



녹차 한 봉지, 떡차 한 아름을 안고 산학 다원을 떠나며 아이들은 너무너무너무 즐거웠다고 했다. 이렇게 재미있을 줄 몰랐다며 기대하지 않은 뜻밖의 선물을 받은 마냥 한껏 들떠있었다. 남편 또한 앞으로 차를 더욱 귀한 마음으로 마실 것 같다했다. 나만큼 가족들도 좋은 시간을 보냈다니 안심이 되었다.


차 만드는 모든 과정이 처음이었다. 처음이라 호기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단순한 행동을 반복하다 보면 신선함은 금방 힘을 잃는다. 특히 집중력이 낮고 의도를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쉽게 지루함을 느낄 수 있다. 반나절 이상을 같은 공간에서 비슷한 행동을 반복하기만 했는데 아이들은 무엇에 마음을 쏙 빼앗긴 것일까?


차 만드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어른을 돕거나 그저 구경하는 존재가 아니었다. 각자 맡은 역할이 있었다. 아이들이 뭘 할 수 있겠냐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은 온전하게 한 몫을 해냈다. 서툴지 않았고 무책임하지 않았다. 어떻게 하면 일을 더 쉽게 하는지 찾아냈고, 일을 더 잘하려고 집중하며 땀 흘렸다. 가장 예쁜 떡차를 만들고 한 치 오차도 허락하지 않고 무게를 쟀다. 아직 어린 막내들은 일을 좀 돕다가 사라졌다. 어느새 마당에 개와 놀고, 들판에서 열매를 따고, 방에서 놀이를 했다. 어른들을 찾지 않고 부모가 걱정하지 않게 잘 놀고 있는 것도 그들의 할 일이 리. 부족한 일손이라 아이들의 야무진 손길이 참 든든했다. 농촌에서 아이 한 명이 일꾼이라고 하는 이유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이들이 없었다면 어두워질 때까지 차를 만들었으리.

보통 아이들은 어른보다 약하고 잘 알지 못하고 잘하지 못한다며 뒤에 서 있게 된다. 학업기가 되면 학생의 일로 공부만 남는다. 심지어 아무것도 하지 말고 공부만 하라고 손과 발을 묶어버린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무엇을 느끼게 될까?


<본질육아>에서 지나영 교수는 육아를 밥 짓기에 비유한다. 밥을 잘 짓기 위해서는 맛있는 쌀과 적당한 물과 불만 있으면 된다. 만두처럼 쌀에 이것저것 추가하지 않는다. 아이들은 쌀처럼 이미 그 안에 각 자의 맛을 가지고 있다. 고유의 맛을 잘 표현하기 위해서 더해야 할 것은 없다. 물은 사랑과 보호이고 불은 어떤 경우에도 아이가 바로 설 수 있는 가치이다. 지나영 교수는 아이에게 꼭 가르쳐야 할 가치로 신뢰, 책임감과 성실함, 기여 그리고 배려를 말한다. 여기서 기여는 재능으로 타인과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는 것이다. 자신이 포함된 세상이나 사회에 보탬이 되는 것이다. 시키거나 요구하는 일만 하는 사람과 달리 일에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고 뿌듯함과 내적동기를 부여한다고 한다. 아이들은 차를 만드는 동안 맡은 일을 통해 ‘기여’했다. 모두가 아이들을 응원하고 칭찬했고 고맙다 했다. “덕분에”라는 말에 아이들은 힘들고 지루한 내색 한 번 없이 “괜찮다”며기꺼이 땀을 흘렸다. 시험이라는 제도 속에 경쟁하고 항상 비교당하는 아이들이 느낄 수 없는 뿌듯함이었으리.


“엄마, 떡차는 오래 묵힐수록 맛이 좋데요. 오늘 만든 떡차는 제가 대학교 갈 때 뜯어서 우려 먹을래요~,”

“좋아. 지금처럼 건강하고 예쁘게 자라다오~“





子曰 弟子 入則孝 出則弟 謹而信 汎愛衆而親仁 行有餘力 則以學文
자왈 제자 입즉효 출즉제 근이신 범애중이친인 행유여력 즉이학문

공자가 말했다. "젊은이들이여! 집에 들어가서 부모에게 효도하고, 집 밖에서는 윗사람을 공경하고, 일을 신중하게 처리하여 주변 사람들의 신뢰를 얻고, 널리 이웃을 사랑하고, 인격이 있는 사람을 가까이하라! 그러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지식을 공부하라!

<1일 1강 논어 강독> 중에서


<논어>에서는 여력(餘力) 즉 남은 힘으로 지식을 공부하라 말한다. 인간 됨됨이는 뒷전이고 있는 힘없는 힘을 다 쥐어짜서 공부하라는 요즘 시대와 사뭇 다른 배움의 순서다. 오늘 아이들은 부모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함께 차를 만드는 어른들을 공손히 모셨다. 맡은 일에 정성을 다하며 신뢰를 쌓았고, 서로 돕고 배려했다. 남은 여력이 있을까? 효를 다하고 공경하고 배려고 사랑하며, 신뢰를 얻고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고 나니 더는 지식을 공부할 필요가 없을 듯했다. 이미 지식보다 더 큰 가르침과 깨달음을 온몸에 담을 수 있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푸르름이, 생명력이 가득한 차밭에서

아이들의 고운 미소가 더욱 예쁘게 피어난다.  

긴 시간을 거쳐 싱그러운 찻잎이 향긋한 차가 되어

사람을 이롭게 하고 세상을 따스하게 품듯

인간 됨됨이를 반짝반짝 갈고닦아서

세상에 보탬이 되는 사람으로 성장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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