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적으로 정약용에 대해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바로 그가 남긴 <기록> 때문이었다.
출세의 길이 막혔다고, 죄인이 되었다고, 폐족이 되었다고 자포자기하여 손 놓고 있지 않았습니다. 정약용은 형조에 기록된 몇 줄짜리 글로 평가받는 것을 거부하고 자신의 글을 남겨 후세의 평가를 받으려 했습니다. -역사의 쓸모 중에서-
그는 왕의 총애를 받는 인재였지만 갑자기 억울한 누명을 쓰고 대역 죄인이 되었다. 오랜 시간 유배지에서 생활하면서, 억울한 현실을 한탄하고 비참한 상황에 분노하며 살 수 있었다. 학문을 연마하고 정신 수양을 하는 것이 덧없다고 여기며 삶을 대충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더 열심히 유배지의 삶을 가꾸며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다. 먼 타지에서도 편지로 두 아들에게 ‘폐족’이기 때문에 더욱 열심히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한다. 단순히 결과가 아닌 진실한 사람이 되기 위해 공부할 것을 재차 강조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자식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삶의 가치를 알려주고, 삶에 희망을 전하는 모습이 참 인상적이다.
정약용은 무엇보다 자신도 계속 <읽고 쓰는 삶>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가겠다는 다짐이자, 의지였다. 비록 유배지의 삶을 살고 있지만, 자신이 남긴 글이 쌓여서, 결국 자신을 평가할 것이라 믿었다. 나는 그의 글을 읽으며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그를 알아가고 느낀다. 결코, 그를 “폐족” 또는 “죄인”이라고 기억하지 않는다! 역사는 그 시대가 남긴 기록을 후대가 해석하는 것이라면 결국 기록을 해야 역사가 되는 것이다.
최근 학창 시절에 썼던 많은 편지와 일기를 읽으며 25년 전의 나를 고스란히 기억했다. 빛바랜 기록을 통해 글을 쓰고 나누는 것을 좋아했던 ‘나’를 온전히 마주한다. 우연히 만난 나의 역사 속에서 잊고 있던 나를 만나니 너무 반갑다. 어른이 되고, 더 중요한 일을 한다는 핑계로 더는 글을 쓰지 않았다. 바쁜 일상 속에 글을 잃어가자 조금씩 나도 사라졌다. 남겨진 조각들 속에는 무엇인가 끼적이고 싶었던 마음이 조용히 숨 쉬고 있었지만 돌보지 못했다.
엄마가 되고 다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안에 웅크리고 있던 <쓰는 삶>에 대한 씨앗이 싹을 틔우고, 아이가 태어나는 것과 함께 내 글도 세상에 태어났다. 발가벗은 나를 세상에 보이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내 신상에 엄청난 일이 일어날 것을 상상하며 막연히 걱정도 한다. 다행히 세상은 내 글에 별로 관심이 없었고, 덕분에 부단히 <쓰는 삶>을 이어갈 수 있었다. 다시 치열하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사라져 가는 내 삶을 붙잡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을까? 유배지 같은 육아 속에서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발버둥이었을까? 여전히 이유는 오리무중이지만, 나는 글을 쓰면서 매일 나의 역사를 만들어간다.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이 더해서 눈덩이처럼 굴러가던 시간이 눈송이처럼 살포시 내 삶에 내려앉기 시작했다. 신기하게 무채색의 날도 억지로 글로 남기면 다채로운 색으로 표현이 된다. <기록>을 통해 내 삶은 더욱 선명하고 풍성해진다.
미천한 내 글과 기록에 더 큰 가치를 더하자, 다양한 글을 '잘' 쓰고 싶다는 욕심이 생긴다. 나를 향해 쏟아내는 일방적인 글에 견고한 삶의 가치와 희망을 담아 세상에 전하고 싶어 진다. 글을 통해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진심으로 소통하는 따사롭고 풍요로운 삶을 그려본다. 하지만 글에 대한 욕심이 더해지는 만큼 글을 쓰는 것은 더 어렵고 힘들어진다. 브런치에 꽤 오랫동안 글을 올리지 못한 것도, 합평 모임을 함께 하는 것을 고심하는 것도. 사소한 것 하나까지 핑계가 되어 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하지만 내 마음속에는 다양한 핑계보다 더 큰 한 가지가 꿈틀거린다.
내 안에 요통 치는 작은 마음을 두 손에 소중히 담고 간절히 기도한다. 나를 닮은 글을 정성껏 쓰고, 세상에 진실한 나를 나누며, 다채로운 색과 견고한 깊이를 더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내 글아~ 멋지고 견고한 날개를 달고 세상 속으로 훨훨 날아가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