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얼마의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할 지 손가락을 꼽아본다. 그러니까 정확히 43년 전 일이다. 읍 단위의 시골마을에 독일산 세퍼트를 기르는 집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우리집이었다. 그렇게 부유한 집도 아닌데 유독 개를 좋아하시는 아버지께서 그것도 족보까지 있는 용이라는 이름을 가진 세퍼트를 기르는 일은 시골에서 전무후무한 일이다.
용이라는 이름은 그 당시에는 꽤나 세련된 이름이었지만 요즘 들으면 입가에 약간의 미소가 지어지는 촌스러운 이름일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용은 족보가 있었고 개도 인물이 있다는 것을 국민학교 즉 지금의 초등학교 3학년 어린시절에 알았으니 가히 용의 용모는 수려하였다.
또한 훈련을 잘 받았기 때문에 바구니에 메모를 적어서 입에 물리면 그것을 물고 시장까지 보아 오는 정말 용한 용이었다.
또한 영리하고 온순해서 사람을 한번 보면 가려서 짖고 함부로 물거나 마음대로 짖어대는 개가 아니었다. 그런 용은 집도 잘 지키고 8남매나 되는 형제들의 사랑도 독차지 하면서 자랐다.
요즘은 애완견 또는 반려견이라는 이쁜 이름으로 가족처럼 집 안에서 함께 생활하는 강아지가 많지만 옛날에는 모두가 마당가에 따로 개집을 지어 개가 그곳에 살면서 도둑도 지키고 우리와 함께 놀아주는 마당의 가족이었다. 우리는 용의 집을 제법 크고 멋스럽게 지어 주었고 목걸이도 용의 용모에 맞게 멋진 것을 구해서 걸어 주었는데 용의 인물이 한층 더 돋보였다.
어느날, 그런 용이 교미를 할 때가 왔다고 아버지께서는 용을 함부로 똥개와 짝을 지어서는 안된다 하시며 수소문해서 다른 지역으로 가셔서 용을 교미에 성사시키고 오셨다. 개도 교미 시기가 오면 생리 같은 것을 하는 것을 그 때 알았다.
그런 용이 예전과 같지 않게 좀 덜 씩씩해 보이면서 점차 배가 불러 왔다. 아버지께서는 용이 임신을 했다고 시장에 심부름도 안 보내시고 조심스럽게 다루셨다. 그리고는 두달에서 세달 뒤에 새끼를 낳은 것 같은데 아마도 새끼가 열마리 정도 된 것 같았다. 가족들은 새끼를 많이 낳았다고 좋아라 하며 신주단지 모시듯 용을 귀하게 조심스럽게 다루었다.
용의 새끼들이 하도 많아 교미 시켜 온 집에도 주고 그 당시는 돈이 궁했기에 팔기도 하고 지인댁에 분양해 주기도 했다. 그 중 어미젖을 잘 먹지 못하고 비실거리는 한 녀석이 있었는데 그 녀석은 우리집에서 길렀다. 용이 새끼에게 젖을 먹일 때는 온가족이 옆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한 녀석이라도 젖을 못 먹을까 봐 지켜 보면서 젖을 제대로 못 먹는 녀석에겐 미음을 먹이기도 했다. 요즘은 우유를 쉽게 사서 먹일 수 있었지만 그 당시는 우유를 생각할 수 있는 시절이 아니었기에 어머니께서 쌀을 불려 갈아서 만든 미음을 먹일 수 밖에 없었다.
다른 녀석들이 한 마리씩 새로운 주인을 찾아갈 때 마다 우리 형제는 마음이 아파서 하나 하나 인사를 해 가면서 그들을 보냈다. 더러는 울기도 하고 내 것이라고 표해 둔 인물 좋은 녀석들이 떠날 때 마다 마음이 찢어질 듯 했다. 그렇게해서 한마리 두마리 모두 집을 떠나고 남은 못난이 강아지 한마리가 있었는데 그 녀석의 이름이 바보다.
바보라는 이름은 다른 녀석들에 비해 덜 떨어지고 영리하지 못했기에 그저 우리가 붙여준 별명인데 그것이 이름이 되어 그 녀석은 졸지에 바보가 되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바보를 애지중지 동생 키우듯 만져주고 등을 긁어주고 밥을 서로 주겠다고 선한 다툼도 하면서 그렇게 우리와 함께 자라 간 우리의 장난감이자 친구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용은 새끼들을 다 떼어내고 여전히 수려한 용모로 잘 자랐고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생활했다. 그러는 사이에 집에 급격한 변화가 생기면서 어려움을 맞았다. 아버지께서는 그렇게 좋아 하던 용을 팔기로 마음을 먹으시고는 우리에게 통보를 하셨다. 용은 전라도 어느 집에 족보를 지닌 채 팔려 가는데 웬만한 사람보다 영리했던 용은 눈물을 흘리며 슬픈 표정으로 바보 한번 바라보고 우리들 한번 쳐다보고 그렇게 울면서 우리집을 떠났다.
나는 개도 눈물을 흘린다는 것을 그 때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을 했기에 사람과 같은 감정이 개에게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용이 떠나는 날 막내오빠와 언니 그리고 나는 얼마나 울었는지 집이 떠날듯이 대성통곡을 했다.
용이 떠난 뒤 마당 한 쪽에 자리 잡은 멋진 용의 집은 아들 바보의 차지가 되었고 바보는 그런대로 모자랐지만 워낙 종자가 좋은지라 잘 자라고 또 우리들과 잘 어울리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보는 무슨일로 길에 나갔는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만 길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 옛날에는 불빛도 귀하고 또한 차도 귀한 때지만 어쩌다가 바보가 교통사고를 당했는지는 아무도 몰랐다. 바보는 다리를 심하게 다쳐서 피를 철철 흘리며 다리를 절면서 겨우 집을 찾아 왔고 우리는 또 한번 초상집 처럼 울음바다를 이루었다.
오빠와 언니와 나는 "바보야, 이 바보야, 뭐 한다꼬 길에 나가서 이리 다쳤노?" 하면서 밤새 바보를 안고 간호를 하였다.
그러나 그 바보는 피를 너무 많이 흘리는 바람에 끝내 돌아오지 않을 길을 서둘러 떠났고 우리는 가족처럼 사랑했던 바보를 잃은 슬픔에 많은 시간을 멍하게 바보의 집을 바라다 보며 넋이 나간 것 처럼 시간을 보냈다.
용과 바보가 있어서 우리는 너무 행복했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지금은 감히 꿈도 꿀 수 없는 그 시절의 이야기가 불현듯 생각이 난다. 어쩌면 나의 머리속에서 영원히 지워져 버릴 그 이야기가 이렇게 생각이 나고 "용과 바보" 이야기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마도 브런치 덕분인 것 같다. 브런치에서 실시하는 브런치 콜라보에이션 프로젝트를 보면서 사십년 전의 기억이 이렇게 생생하게 나를 자극할 줄은 몰랐다.
가족처럼 울고 웃던 바보와 용의 이야기가 "사람과 동물의 공존 "이라는 주제 때문에 까마득한 그 시절로 타임머신을 타고 가게 해 주었다.
얼마나 감사한 시간인지 모르겠다. 사람과 동물의 감동적인 사랑과 헌신이 오고갔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오늘 바로 이 시간에 용과 바보가 나를 찾아왔으니 미안하고 고맙고 새삼스럽게 보고 싶어진다. 정상적으로 하자면 용도 이미 저 세상으로 갔겠지만, 왜 이렇게 코 끝이 매워지는 지 모르겠다.
오늘밤도 열대야에 힘든 밤을 보낼 것인데 오늘은 특별히 용과 바보 생각으로 마음껏 자유하며 옛날로 돌아가서 큰 집 마당에서 안고 구르고 뽀뽀하던 용과 바보를 만나야겠다. 그리고 많이 보고 싶었다고 많이 사랑했었다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