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꽃의 산고
봄은 좋다.
정말 좋다.
모든 것을 깨고 소생하는 봄,
내가 아는 봄에 대한 짧고 명료한 상식이다.
오늘
뒷베란다에서 발견한 배추꽃이다.
태어나 처음 만난 배추꽃 얼굴보고
화들짝 놀랐다.
미안한 마음에 놀라움이 잠시 소강상태에 이르고 배추꽃이 배추꽃의 출처에 대한 기억을 터치한다.
지난 겨울 김장 때 친구가 갖다 준 배추를
쌈이나 싸 먹자고 남겼다. 그 배추가 4개월이 되었는데도 죽지도 않고 유채꽃 닮은 꽃을 피워냈다.
그것도 물 한 방울 적셔주지도 못했는데.
봄이 되면 만물이 제각각 얼굴로 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한다 해도 내가 만난 배추꽃은 충격이었다. 이쁘고 신기함을 떠나 인간의 잔인함 아니 정확히 말해서 나의 잔인하고도 무심함에 스스로 부끄러워서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물 한방울 적셔주지 않아도 꽃 피워 올린 배추의 산고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린다.
황무지에도 꽃이 핀다고 하지만 배추에도 이렇게 꽃이 핀다는 것은 상상을 초월한 의식과도 같아서 생명의 경이로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그간 분명 베란다를 오며 가며 방치된 배추를 보았을 것인데 이토록 피워 올린 꽃대 앞에서 시선이 멎은 자신을 아량으로 이해하기엔 한심함을 금치 못하겠다.
적극적인 사랑과 관심을 주지는 못할망정 산고를 일 초도 돌아보지 못했다는 자책감 또한 스멀스멀 나를 괴롭힌다.
나는 정말 사랑이 있는 사람인가!
따스함이 있는 사람인가!
하지만 더 이상의 자책은 여기서 멈추고 대신 감사함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태어나 처음으로 배추꽃을 봐서 감사하고 눈길 닿지 않는 축축한 곳에서도 경이로움이 탄생 된다는 것을 안 것도 감사이다.
생명의 신비 앞에서 한없이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한 오늘 하루이다. 삶이란 그 어떤 모양이라도 허투루 흘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다.
마음 줄 수 있을 때 마음 주고 눈길 줄 수 있을 때 눈길을 주어야 한다. 그것이 가치로운 것이다.
그것은 곧 사랑이라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도 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