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도 모르고 존재 자체도 미약한 들꽃이 격하게 그리운 날이다. 나태주시인님은 들꽃에게 참 의미로운 시를 지어 주셨다. 우리는 그 짧은 시를 많이 애송하기도 한다. 물론 그 시는 예쁘다는 것이 포인트이지만 이쁨을 넘어서는 당당한 존재의 가치와 자유로움에 나는 마음이 꽂힌다.
문득, 갑자기, 오래된 일화가 떠오른다.
아마도 약 사십년 전의 일인 듯 하다. 하이얀 칼라가 몹시도 청아했던 단발머리 중학생의 교실이야기다.
항상 단정하고 공부도 잘 했던 그 아이는 청소 시간이 되면 늘 혼자 대열에서 이탈된 체 서 있다. 그러나 다른 단발머리 소녀는 선생님이 계시던 계시지 않던 늘 빗자루를 들고 걸레를 들고 친구들과 청소를 열심히 했다.
사건이 반전되는 시간은 항상 우리들 곁에서 서성인다. 갑자기 선생님이 나타나는 시간이다. 대열에서 이탈퇴어 있던 소녀는 곧바로 빗자루를 들고 청소를 하기 시작하고 늘 열심이던 단발 친구들은 잠시 쉬는 틈에 선생님께 청소 안 하고 노는 아이로 찍혀버린다.
그래서인지 단발머리 새침때기 친구는 선생님의 사랑을 받았지만 친구들에겐 조금 거슬리고 미운 존재가 된다.
왜 오늘따라 이런생각이 뇌리를 스치는지 모르겠다. 세상이 산업화 정보화 첨단산업사회로 넘어 가면서 사람들의 생각 또한 많이 바뀌어졌다.
그래서일까! 우리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는 아예 관심조차도 없다. 눈에 보일 때만 인정 받는 이상한 문화가 한없이 낯설기도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모습을 너무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나의 어줍잖은 나이 때문인지 순수했던 지난날들의 습성이 피부 깊숙이 남아 있기 때문인지 수박 겉핡기 식의 보이는 부분에 대한 도드라진 평가를 보며 씁쓸한 마음을 감촐 수가 없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행동을 잘못된 것이라고 딱히 꼬집어 말할 수도 없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세상은 이렇듯 냉정하다. 눈에 보이지 않으면 사장되고 인정 받지 못하는 그림들이 아까워서 서글퍼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아무리
"아름다운 일들이 더 많다. 좋은 일들이 더 많다" 이렇게 되내어도 현실의 벽에서 부딪히는 모습들에선 차마 절망하지 않을 수 없다.
김훈작가님은 말한다.
"먹고 사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 보면 비애를 느낀다"
이 구절을 보며 가슴 짙게 공감했던 기억이 있다.
우리는 먹고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속울음을 삼켜야 하고 먹고 살기 위해 얼마나 많이 진정한 자신을 내동댕이쳐야만 했던가!
봄비 내리는 한 주의 첫날에 누가 인정해 주지 않고 인정 받지 않아도 늘 그 자리에서 웃고 있는 들꽃이 생각난다. 어떤 누군가의 가슴엔 몸서리치도록 그리운 존재감을 더해 주는 마냥 행복한 들꽃!
오늘은 그런 들꽃이 격하게 그리울 뿐만 아니라 걸림없는 자유로움을 배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