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럽하우스에서 찾은 시 낭독회
나는 종종 시를 쓴다.
시에게는 미안하지만 내가 쓰는 시는 거창하거나, 대단한 시가 아니다.
나도 그렇다.
그저 시를 좋아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집에서 시가 떠오르면 공책을 펴고 연필을 잡는다.
카페에서 시가 떠오르면 노트북을 켜고 브런치에 적는다.
밖에서 시가 떠오르면 휴대폰 메모장을 켜고 두꺼운 엄지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인다.
내 시는 그렇게 여기저기서 태어났고, 그렇게 빛을 보지 못하고 잠들어 있다.
빛을 보지 못하는 수많은 것들에 대한 미안함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
땡볕에서 땀 흘리며 제작한 원목 의자
뜨거운 열기 속에서 만들어낸 그릇
디자인부터 한 땀 한 땀 직접 짠 스웨터
이른 새벽부터 부지런히 구워낸 빵
날씨와 온갖 벌레를 신경 쓰며 키워낸 채소
음표 하나 가사 한 글자도 몇 번씩 수정하며 만든 노래 한 곡.
그들에게 그것들은 자식과도 같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들이 빛을 보지 못할 때,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할 때, 아무도 모르게 그렇게 잠들어갈 때 그들의 마음은 무너져 내릴 것이다. 유행이 지났다고, 더 저렴한 것이 있다고, 특별하지 않다는 이유로 사람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차가운 곳에 잠들어버리는 수많은 것들에 대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마찬가지로, 내가 쓴 시들을 생각하면 미안함과 속상한 마음이 들곤 한다.
클럽하우스 시 낭독회
늦은 저녁, 아무도 없는 집에서 클럽하우스를 앱을 켜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선진 문물에 쉽게 적응하지 못하는 편이기 때문에 쉽사리 그곳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헤매고 있었다. 그러던 중, 시 낭독회를 하는 방을 우연히 들어가게 됐다. 나를 제외한 모든 사람이 외국인들이었다. 아마, 절반 이상은 미국과 캐나다 분들이었던 것 같다. 그곳에서는 누구든지 원하면 순서에 따라 자신이 쓴 시를 낭독할 수 있었다.
처음 10분 동안은 리스너로 그저 듣기만 하고 있었다. 마치 학생 시절 영어 듣기 평가 시험을 치르는 것처럼, 온 정신을 집중해야 그들의 대화가 어떤 내용인지 겨우 알 수 있었다. 그렇게 한참을 그들의 시 낭독을 들었다. 그러면서 과연 이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지 그들의 프로필을 하나하나 보기 시작했다. 그들의 직업은 정말 다양했다. 물론 시인과 작가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회사원, 배관공, 가정주부, 변호사, 경찰, 학생 등 글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이 쓴 시를 낭독하고 있었다. 마치, 영화 '죽은 시인들의 사회'에서 학생들이 밤에 동굴에서 시를 낭독했던 장면처럼 아주 감정적이고, 격렬하게 시를 표현했다.
그 방에서 목소리로만 만난 이들의 시와 그들의 시에 대한 사랑에 적잖은 감동이 밀려왔다.
무심코 방의 제목을 다시 보게 되었는데, 그 방의 제목은 아래와 같았다.
'Poetry Palace' - No experience, No critique, Open mic
이 얼마나 마음이 놓이는 곳인가!
나는 서둘러 책상 위에 놓여있던 공책을 집어 들고 연필을 잡았다. 그리고는 시 한 편을 내 짧은 영어능력으로 번역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그 방에서 손을 들었다. 내 순서가 다가올수록 내 온몸은 바짝 긴장되고, 손에는 땀이 생겼다. 공책에 적어놓은 번역본을 다시 보며 실수한 것은 없는지 몇 번씩 다시 읽었다.
마침내 내 차례가 되었다.
방의 호스트가 인사를 건넸다.
"Hi, junghoon! Glad to meet you here! Please introduce yourself and share your poem!"
나는 숨을 크게 한 번 고른 후, 마이크를 켰다.
"안녕하세요, 여러분. 저는 임정훈이고요, 한국인입니다. 오늘 이 방에 처음 들어와서 여러분의 시 낭독을 듣다가 문득 제가 쓴 시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어 이렇게 용기 내어 낭독을 신청했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오랫동안 시를 사랑해왔고, 종종 시를 쓰기도 했지만 제가 쓴 시를 누군가에게 보여준 적은 없었습니다. 낭독을 듣다 보니, 여러분은 자신의 시에 생명을 불어넣어주고 있는 것처럼 들렸습니다. 실제로, 여러분의 시는 생명을 얻고 제게 다가왔고요. 그래서 저도 오랫동안 잠들어있는 제 시들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주기 위해 낭독을 하려 합니다. 영어를 잘 못하기 때문에, 약간의 실수가 있을 수도 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빈자리
임정훈
두 사람,
마주 앉아 밥을 먹는 것이
그 흔하디 흔한 것이 사랑이라더라
늦은 저녁,
홀로 밥상을 차리곤
가만히 바라보는
당신의 빈자리
"이 시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얼마 후, 어느 늦은 저녁 홀로 계신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썼습니다. 어느 노 시인의 사랑에 대한 시를 인용하여 쓴 '빈자리', 노 시인의 시를 읽었던 당시에는 그 깊은 의미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었지만, 밥이 식어감에도 가만히 계신 할머니의 모습을 보는 순간 그 깊은 사랑의 의미를 온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작은 바람
떨리는 목소리로 시를 낭독한 후 나는 잠시 마이크를 껐다. 아무도 내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내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있었고 심장은 100미터를 전력질주한 듯 빠르게 뛰었다. 잠시 숨을 고른 후, 다시 마이크를 켜고 들어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했다. 그 순간 많은 사람들이 내 시에 환호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에게 박수를 받은 이후로 그렇게 내 시를 환영해주는 사람들을 만난 건 처음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눈물이 난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도 그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며 시를 공유해주어 고맙다는 인사를 건네 왔다. 내가 좋아하는 '시'로 사람들을 기쁘고 행복하게 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내 작은 바람이 그곳에서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 방의 주인이었던 분이 내 계정을 팔로우 하기 시작했고, 다른 사람들도 내 계정을 팔로우했다. 또, 어떤 사람들은 SNS를 통해 내게 미쳐 전하지 못한 감상평을 전해왔다. 그렇게, 우연한 기회에 나는 다시 시를 쓸 용기를 가지게 되었고, 내 시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해야겠다는 결심을 했다. 내 능력이 아직 부족하다는 것은 나 스스로가 가장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나는 계속 시를 쓰려고 한다. 결국, 글도 시도 쓰는 만큼 늘어간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적어도 이번 기회를 통해 나는 내 시들에 대한 미안함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앞으로는 내 시들에게 조금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