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내가 아닌 내 모습이 나를 집어삼키다
나를 안 지 얼마 되지 않은 사람이거나, 그렇게 가깝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도 내가 꽤나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사실 나는 그렇게 밝은 사람이 아니다. 사람이 많은 곳을 싫어하고, 누군가에게 주목받는 것을 불편하게 여긴다. 어렸을 때부터 내성적인 성격이 심해서 사람들 앞에 서는 걸 못 견뎌했다. 초등학교에 입학했을 무렵, 아버지의 손에 이끌려 강제로 웅변학원에 다니기도 했을 만큼 우리 부모님께서는 내 성격을 심히 걱정하셨던 걸로 기억한다.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부모님께서는 반장선거에 나가는 것을 원하셨고, 부모님의 바람을 져버려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나는 원하지도 않는 반장선거에 억지로 나가 반장이 되었다. '친구들과 친하게 지내라', '어느 모임에서건 리더가 되어라', '모든 관계에서 원만한 사람이 되어라' 등 내 성격에 반대되는 것만을 강조하셨던 탓인지 나는 부모님의 바람대로 그런 사람이 되어갔다. 아니, 그런 사람인 척했다.
아마 그즈음부터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가 분리되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나의 청소년기에는 사회적 자아가 개인적 자아보다 훨씬 힘이 셌다. 모든 사람이 나를 긍정적이고 밝은 사람으로 기억했고, 나조차 내가 밝고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착각했었다. 그 시간 동안 나의 개인적 자아는 모두가 바라는 '나'의 모습을 위해 억눌려있었던 것 같다. 지금이라면 편히 이야기할 수 있겠지만, 그 시절에는 아주 친한 친구에게조차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좋아해', '시 쓰는 게 좋아', '너무 개인적인 건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20대가 되어 조금은 더 큰 사회에 발을 딛기 시작했지만, 여전히 나는 본래의 내가 아닌 '나'인척 살고 있었다. 이유는 단 하나였다. 사람들이 바라는 내 모습은 본래의 내 모습이 아니었기에.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
누구나 그렇듯 나도 격동의 20대를 보냈다. 대학 생활을 하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고, 여러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곳을 돌아다녔다. 그중에서도 특히 혼자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낯선 도시에서 낯선 사람들과 스치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움을 느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온전한 내가 되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꼈고, 여행에서 돌아오면 늘 그 행복이 자꾸 생각났다. 마약에 중독된 사람처럼 틈만 나면 여행을 다니며 행복을 느꼈다.
어쩌다 보니 나는 운이 좋게 남들보다 조금 일찍 회사에 입사를 할 수 있었다. 직장을 다니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경제적 자유로움이었다. 그러나 회사에 처음 들어갔을 때 맛본 경제적 자유로움으로 인한 행복은 생각처럼 오래가지는 못했다. 일에 치여 바쁘게 살다 보니 여행을 갈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애써 휴가를 아끼고 아껴 여러 개를 한 번에 써서 여행을 다녀와도 편도로 비행기 표를 끊고 간 여행만 하지 못했다. 내가 다닌 회사는 그렇게 수직적인 구조가 아니었지만 여느 조직과 마찬가지로 외향적인 사람을 선호했고, 나는 그에 맞춰 여전히 내가 아닌 나로 지내고 있었다. 회사원들에게 여행에 대한 갈증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겠지만, 나는 그로 인해 결국 3년 반 만에 퇴사를 선택했다.
퇴사를 하고, 여행을 가려는데 갑자기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모든 여행 계획을 취소하고 앞으로 무엇을 할지 생각했다. 그렇게 한 달 정도 외출을 줄이고 집에서 홀로 지내며 앞으로의 계획을 생각하고 있다 보니 문득 사람들 사이에서 억지로 썼던 가면을 더 이상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보다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보다 나를 더 나답게 하는 것은 글을 쓰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때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렇게 나는 나를 글로 풀어가기 시작했고, 내 글을 사람들에게 하나 둘 보여주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지만 공통적으로 원래 알던 내가 사실 내성적이고 그렇게 마냥 밝지는 않은 사람이라는 것에 놀라곤 했다.
물론, 나는 사회적 자아를 아예 버리진 못했다. 아직도 밖에서는 사람들이 원하는 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개인적 자아와 사회적 자아라는 둘의 사이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루기 시작했다. 친한 이들은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기 시작했고, 처음 보는 사람들은 내게 편하게 다가왔다. 덕분에 내 삶의 만족도가 꽤나 많이 올라가기 시작했다.
당연하게도, 아직 나는 두 자아 사이의 균형을 완벽하게 이루지는 못했다. 그건 마치 숙제와도 같은 일인 것 같다. 조금은 부담감을 내려놓은 채 고민할 수 있는, 그런 숙제.
사람을 안다는 것
내가 나를 드러내면 모두가 떠나갈까 고민했던 순간에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온 대사 한 마디에 위로를 받고, 용기를 얻었던 기억이 있다.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 알아버리면
그 사람이 무슨 짓을 해도 상관없어.
내가 널 알아.
과연 그 말이 맞는 걸까 고민하며 지난 긴 시간을 보냈지만, 그 말이 맞았다. 아직도 내 곁에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나는 그들로 인해 행복하다. 그들에게 받은 고맙고 따뜻한 마음을 보답하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사람을 안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우리 모두가 알고 있다. 내가 아무리 상대에게 닿고자 해도 결국 그 모든 것이 쉬이 오해로 점철될 수 있음을 늘 기억해야 한다. 그렇기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알아가려고 노력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 모든 노력은 조금이라도 갇혀있던 '나'를, '너'를 완전치는 않아도 조금은 자유롭게 해 줄 수 있을 것이다. 나를 알아가려고 내 글을 읽어주는 사람들처럼, 나 또한 그들을 알아가려 하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나태해지지 않게 이 글을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