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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cea Apr 20. 2021

별 일 없는 나는 이른 잠을 청한다

감정 쓰레기통

#1

 늦은 새벽, 친한 동생으로부터 메시지를 하나 받았다.


사람들은 왜 나를 감정 쓰레기통으로만 여길까?

- 나는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싶었는데 지나고 보니 정작 내가 필요할 때에는 그 사람들이 곁에 없네.

- 필요할 때만 나를 찾고, 온갖 넋두리를 늘어놓고는 돌아서버려.

- 내가 뭘 잘못한 걸까? 내 잘못이기는 할까?


 그에게 무슨 말을 해줄 수 있을까 고민했지만, 진심이 담기지 않아 가볍고 섣부른 조언이나 나이에 기반한 괜한 훈장질로 행여 그에게 상처를 주지 않을까 하여 조만간 만나서 이야기하자는 말로 말을 아꼈다. 


#2

 가끔 그런 날이 있다. 누군가 힘들다며 손을 내밀어달라는 신호를 보내오는 그런 날. 느닷없는 연락에도 나는 기꺼이 그 사람을 만나러 간다. 그리고는 얼굴을 보고 마주 앉아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에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상대방의 이야기에 공감하며 그의 마음을 쉬이 짐작하기가 어려운 것도 있지만, 사실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길어 올리는 말들은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꽤나 힘겹기 때문에 중간에 입을 떼기가 쉽지 않아 그저 듣고만 있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 그의 이야기가 다 끝날 때쯤 그의 얼굴은 이미 한결 가벼워 보인다. 그걸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상대방의 마음이 진정되는 것. 불편했던 감정이 조금은 누그러드는 것. 그와 마주 앉은 것은 처음부터 그게 목적이었으니까.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한결 가벼운 발걸음으로 멀어지는 상대방의 뒷모습, 그거면 됐다. 


 집으로 돌아와 침대에 몸을 뉘인다. 잠을 자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지만, 알 수 없는 피로가 몰려와 눈이 감긴다. 오늘은 뭐 하나 제대로 한 것도 없는데 이른 잠을 잔다.


 내 마음이 좋지 않은 날에도 나는 누군가를 위로한다. 그의 상처 받고 지친 마음이 이해가 되어서일까? 나의 마음도 그렇게 위로받길 바라는 마음일까? 위로를 찾는 사람들은 알까, 자신과 마주 앉아 위로해주고 있는 사람의 마음도 아프다는 걸. 


#3

무제


                                   임정훈


불쑥 찾아온 너에게서

슬픈 내 얼굴을 마주한다.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을 위해

땅 속 깊이 뿌리 박힌 나무가 되어

시간과 중력을 허락한다.


수많은 네 그림자들은

내 온몸을 긁고, 할퀴고, 찌르고

나는 그들을 끌어안는다


네 것들이 

하나 둘 내 것이 된다

그렇게 나는 네가 된다


한결 가벼워진 너는

짤막한 인사를 건네고

저 멀리 사라진다


아무렇지 않은 오후

별 일 없는 나는

가진 게 많아

이른 잠을 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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