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음이 지쳐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동네 카페에서 노트북을 켰다. 한참을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 뭐라도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타자를 쳤다. 그러자 온갖 부정적인 것들이 쏟아져 나왔다. 어차피 지울 걸 알면서도 무언가에 홀린 듯 토로하듯이 글을 써내려 갔다. '분노'라는 단어로 글 맺음을 하고 난 뒤 잠시 숨을 돌렸다. 그리고 내가 쓴 글을 한 번 쭉 읽어보았다.
그렇게나 어두운 분위기의 글을 썼다는 사실에 놀랐다. 사실, 나는 기억나지 않을 정도로 오래전부터 어둠에 관한 편견이 있었다. 어두운 현실이나 마음, 콘텐츠의 주제 같은 것들에 불편함을 안고 있었고, 그것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채 나 혼자 느끼는 불편함이었다. 창작물은 늘 밝고 긍정적인 면을 바라보고 추구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고집스러울 정도로 그 대화의 흐름과 결말이 따뜻하고 긍정적이어야 만족했던 것 같다. 그런 편견과 습관은 내가 가진 불안과 두려움을 인정하지 못하는 태도에서 나온 결과물이었다. 괜찮지 않아도 괜찮다고 표현해야 마음이 놓였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야만 마음이 편했기 때문인 듯하다.
그러나, 최근 들어 부쩍 내가 가진 불안함과 두려움을 마주하게 될 때가 많아졌다. 애써 감추려 했던 생각과 감정들이 이따금씩 툭툭 튀어나와 더 이상 그것들을 의도적으로 외면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무심코 써 내려간 글이 어둡고 불편함을 주는 글이었다는 사실이 그걸 방증했다고 생각한다.
#2
때마침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나는 친구의 전화를 건 용건은 묻지도 않은 채, 메시지로 내가 쓴 글을 보내고 그 글에 대해 한참을 말했다. 내 말이 끝날 때까지 가만히 듣고만 있던 친구는 어디라도 가자고, 바람을 쐬자고 했다. 그렇게 즉석 여행을 가게 되었다.
우리는 가장 빠른 표가 있는 춘천으로 향했다. 숙소, 일정, 예산은 일절 고려하지 않은 채 그저 발길이 닿는 대로 돌아다녔다. 춘천에 왔으니 닭갈비를 먹자며, 소양강을 따라 걷자며, 근처에 강원대학교가 있는데 캠퍼스 구경을 가자며, 애니메이션과 토이 박물관이 있으니 체험해봐야 한다며. 우리의 즉석 여행은 그렇게 짧게나마 한량의 삶을 닮아있었다.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시나마 나를 구속했던 많은 상념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구나.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생각해보니, 여행을 하는 내내 친구는 내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왜 마음이 답답했는지, 무슨 고민과 걱정거리들이 있는지에 대해 전혀. 그가 내게 물었던 것은 '지금' 어디를 가고 싶은지, '지금' 무엇이 먹고 싶은지, '지금' 뭘 하고 싶은지였다. 그는 나로 하여금 '지금'을 살게 했고, 내 지친 마음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여행하는 내내 나는 그걸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야 겨우 생각이 났을 정도로 아무런 걱정도 불안도 없는 순간들을 보냈던 것이다. 그 덕분에, 그의 침묵 덕분에.
위로라는 것이 별거 없다지만, 누군가를 위로해야 하는 상황을 마주하면 늘 무슨 말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을 하게 된다. 그러나, 때론 아무 말 없이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깊은 위로가 된다는 것을 새삼 상기시킨 하루.
아무것도 묻지 않아 줘서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