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덤
임정훈
뭉툭해진 연필로 쓴 글
선명하지 않은 글자
굵은 활자의 속은 비어있다
전하지 못할 편지
차곡차곡 접어
먹기만 하는 서랍에게 준다
창밖에 내리는 비
한 줌의 모래를 적시지도 못할 빗방울
어느새 온 땅을 적셔놓았다.
리모컨을 손에 쥐고
수 백개의 채널을 돌린다
한 편의 영화를 온전히 보지 못한다
침대 위에 잠든 전화기
지금은 잘 생각이 없으니
온종일 쳐다보지 않는다
내어줄 공간이 없으니
오늘 밤엔 꿈을 꾸지 않아야지
아니, 꿈조차 허락하지 말아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