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편지
OO 님께
#1
한동안 OO 님께 편지를 못썼어요. 아주 사사로운 일로 시작된 답답함이 시나브로 온 마음을 집어삼키더라고요. 우리에겐 여러 일들이 주어지지요. 큰 고민 없이 해결할 수 있는 쉬운 일, 다소 어렵지만 분명한 결과가 주어지고 결과에 따라 나의 입장이 달라지거나 어떤 보상을 받는 일, 시간과 돈을 들여하는 일, 그런 것보다는 마음을 쓰는 일 … 우리는 살면서 끊임없이 그런 일들을 마주하게 되지요.
이번에 마주한 건, 어떤 분명한 결과가 보이지는 않지만 그 과정 속에서 마음이 끝없이 소모되는 일이었어요. '관계'라고 하지요.
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눌러보기도 하고, 외면해보기도 했지만, 결국 '나는 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야'라는 직설적인 문장을 상대방의 가슴팍에 던져버렸어요. 그분에게는 제가 당신의 이야기에 공감하고 위로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한 일인 것만 같았지요. 상대방의 당연함이 지속되는 동안 저는 그 감정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있었고, 또 그만큼 고통스러웠어요. 한 방향으로만 전해지는 생각과 감정들은 받는 이로 하여금 꽤나 지치게 하지요.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나를 위해서라도, 건강한 마음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그 매듭은 끊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결국 모진 말로 귀결되었네요.
아이러니하게도, 요 며칠 제 마음은 평온했고 건강했어요. 스스로를 다독이는 시간도 이제는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괜찮아졌지요. 모진 말로 잠시 '쉼'을 선택했지만, 다시금 좋음으로 마주할 수 있는 그런 쉼이길 바라요.
#2
여러 일들로 바쁘게 지내, 한동안 새로 이사 온 집을 정리할 수가 없었어요. 그래서 이번 기회에 작은 것부터 하나씩 사서 꾸미는 중이에요. 마침, OO 님의 편지글에서 '식물'을 자주 접하게 되어, 이참에 저도 식물을 집에 들여볼까 해요. OO 님께서 화초에 물을 주고, 잠시 머릿속을 비우며 그저 멍하니 화초를 바라보며 느끼셨다고 말씀하신 ‘여유’가 제게도 있기를 바라봅니다. 그렇게 조금씩 사소한 날들에 약간의 노력만으로도 제 스스로가 괜찮을 수 있기를 바라요. OO 님에게도 그런 날들이 많아지길 바라요.
여름 냄새가 물씬 풍기는 요즘,
특별히 더위 조심하시고요.
깊은 밤, 좋은 마음으로 보내시길 바라요.
정훈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