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rcea Feb 01. 2021

난간 없는 계단을 조심스레 오르는 것

Episode 7

내겐 얼굴만 보아도 웃음이 나는 사람이 있다. 

장난기 가득한 눈빛을 멈출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뒤늦게 확인한 부재중 전화에, 무슨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걱정부터 하게 되는 그런 사람이 있다.


한적한 주말 오후 한남동 카페테라스, 

맑은 하늘을 그대로 담은 듯한 원피스를 입고 온 S를 만났다.


반전에 반전에 반전


 S는 남들보다 훨씬 좋은 조건의 삶을 살고 있다. 오랜 해외 생활로 5개 국어를 하며, 스위스와 한국 두 곳에서 대학을 졸업하여 소위 부러운 스펙을 갖고 있다. 현재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언제든지 바꿀 수 있는 경제적 지원도 뒷받침되고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난 곳은 대학교 캠퍼스였다. S는 스위스에서 대학을 졸업한 뒤, 한국에 돌아와 내가 다니던 대학교에 편입했다. 그녀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명품백과 구두 그리고 캠퍼스 안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선글라스를 쓰고 잔디밭을 활보하던 그녀였다. 내게 S의 첫 모습은 남들의 시선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듯한 당당함과 함부로 말을 걸지 못할 것 같은 도도함으로 기억된다. 그러나 그녀를 알아갈수록 그녀의 첫인상은 나만의 편견에 불과했다는 걸 깨달았다. 알고 보면 그녀는 내가 아는 세상 누구보다 여린 사람이다. 언젠가 S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해외에서 어린 여자애가 혼자 살면 종종 무시당하거나, 희롱당하는 경우가 있는데 그런 두려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 비싼 옷을 입고, 도도하게 보이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녀를 꾸며주는 모든 것은 아주 여린 사람이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것들에 불과했다.  


나는 유기견이야

인터뷰 중 스스로를 어떤 모습으로 바라보느냐는 내 질문에 그녀는 잠시 숨을 고른 후 대답했다.



나는 유기견이야



 생각지도 못한 대답이었다. '스스로를 유기견이라고 표현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이내 그녀의 말을 납득하게 되었다. 내가 아는 그녀는 조금만 사랑을 주어도 모든 걸 내어주는 그런 사람이다.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주고, 받아주는 사람.

절대 먼저 등 돌리지 않는 사람.

미흡하지만 늘 노력하는 사람.

그런 그녀의 모습은 양날의 검과 같이 엄청난 장점인 동시에 치명적인 단점이 되기도 한다. 본인도 그 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문득 속이 상했다. 

 사실, S는 마음이 아픈 사람이다. 벌써 몇 년째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오는 불안함과 내면 깊은 곳에 있는 외로움을 이겨내기 위함이다. 병원 일로 바쁘신 아버지, 석사과정으로 바쁜 어머니 그리고 수없이 홀로 보낸 외로운 시간들. 그런 와중에 그녀는 중학생 때 또래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했다. 그녀는 고등학생이 되자 곧바로 자퇴 후 해외로 떠났다. 아는 사람도 없는 타지에서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다. 매일 같이 느꼈던 차별과 무시 그리고 수없이 많았던 성희롱. 수많은 사람들에게서 보였던 내재된 폭력성. 그러면서도 가족에게 의지하는 법을 몰랐다. 정확하게 말하면 가족에게 의지해도 되는 줄 몰랐다. 그녀는 그런 적이 없었으니까.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으니까. 고통과 두려움을 홀로 짊어지고 가기에 그녀는 너무 어리고 여린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이 상처로 남아있다. 그것이 그녀가 기억하는 과거였다.

 그 모든 과거는 그녀의 건강한 자아를 형성하지 못하게 했고, 지금까지도 상처로 남아 그녀를 아프게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며 어디서부터 인지 모를 분노가 느껴지기도 했고, 왠지 모를 미안함이 느껴지기도 했다.

 "나는 유기견이야", 그 말이 한참 동안 머릿속을 맴돌았다. 


당신의 사랑으로

 

 그녀가 한국으로 돌아온 가장 큰 이유는 정서적 안정 때문이다. S는 어릴 적부터 유독 할머니를 좋아했고 잘 따랐다. 그녀가 대학을 졸업할 즈음,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할머니의 암 투병 소식이 들렸다. 황급히 유학을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것도 그것 때문이었다. 

저희 할머니는 결벽증이 심하셨어요.
그런 분께서 집 안에만 계시고 목욕도 제대로 못하셨어요.
그래서 할머니에게 다음 날 목욕탕에 가자고 했어요.
다음 날, 어김없이 오후 1시에 일어났는데 얼굴이 많이 피곤해 보이시더라고요.
 알고 보니, 할머니는 제가 목욕탕에 같이 가자고 한 게 너무 좋아서 밤새 잠을 설치셨더라고요.
내내 제 방문 앞에서 저를 기다리셨을 할머니를 생각하니 눈물이 왈칵 쏟아졌어요. 

얼마 뒤, 할머니의 병세가 안 좋아지면서 요양병원에 입원하셨어요.
어느 날, 보라색 퐁퐁 한 송이를 들고 할머니가 계신 병원에 갔어요.
누워 계셨던 할머니께서는 꽃 내음을 맡으시고는 "우와~"라며 어린아이처럼 소리 내어 웃으셨어요.
할머니의 병실에 계시던 다른 할머님들이 모두 우리를 바라봤죠.
그때 이미 할머니께서는 말을 잘하지 못하셨어요.
 근데 갑자기 할머니가 손바닥을 쫙 펴며 앞으로 내어 보이시는 거예요.
 '우리 손녀 5개 국어 할 줄 알아요'
할머니는 저를 자랑하고 싶으셨던 거예요.
지금도 정말 많이 보고 싶어요.

 할머니의 사랑은 S가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커다란 변화를 주었다. 그날 이후, 한국에 오고 나서 처음으로 어머니에게 정서적인 의지를 시작할 수 있었다고 했다. 이후 이곳에서의 삶에 적응하면서 점차 일상의 안정을 되찾았고, 그만큼 부모님과도 건강한 관계로 발전할 수 있었다. 


난간 없는 계단을 조심스레 오르는 것

 

 그녀에게 일어났던 수많은 일들, 그런 일들을 겪었을 때 어떻게 반응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모르는 게 당연했다. 집안에서, 사회에서 그녀에게 강요했던 것은 늘 양보하고, 배려하는 모습이었다. 자신이 피해자인 상황에도 그녀가 할 수 있었던 건 '괜찮아요'라고 말하며 웃음으로 무마하는 것이 전부였다. 그건 그녀의 선택이 아니었다.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누군가 한 번쯤 자신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었다면, 그녀가 겪고 있는 일들을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알려주었다면, 아마 지금의 모습이 타인에게는 덜 상냥하지만, 적어도 스스로 만족하는 모습이었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녀는 아직 많은 것이 서툴고 어렵다. 마음에 상처가 가득해서 같은 일이라도 더 깊고 오래 아프다. 그렇지만,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조금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벌써 여러 해 동안 꾸준히 심리상담을 받고 있다. 아마 수 천만 원은 더 쓴 것 같다며 웃었다. 물론 전혀 아깝지 않은 돈이다. 스스로의 어떤 모습이 변화했는지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분명 자신이 변하고 있는 것을 느끼고 있기 때문이다. 그녀가 바라는 앞으로의 모습은 '현재에 충실한 삶'이다.


 마음이 과거에 있으면 후회를 안고 살고,
마음이 미래에 있으면 불안을 안고 산다.


 그런 것에 얽매여 '지금'을 등한시하면 안 된다고 말하며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라는 말과 함께 인터뷰를 마쳤다. 그녀는 오늘도 난간 없는 계단을 한 발 한 발 조심스레 오르고 있다.


빛은 어둠의 부재다


 횡단보도 앞에서 초록 불을 기다리고 있으면, 저 멀리 건너편에서 이미 머리 위로 손을 흔드는 S의 모습을 자주 본다. 만남을 뒤로하고 집에 갈 때면, 그녀는 굳이 건널 필요 없는 횡단보도를 같이 건너며 인사를 하고 간다. 그녀는 그런 사람이다. 큰 눈과 입으로 환하게 웃는 밝은 미소를 가지고 있고, 시시콜콜한 농담에 쓰러지며 웃는다. 상대가 말을 시작하면 중간에 끊지 않고 끝까지 귀를 기울인다. 내 눈에 비친 그녀의 모습은 스스로 빛을 내는 멋진 사람이다. 


 흔히들 어둠을 '빛의 부재'라고 말한다. 우리의 입장에서는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물리학자는 이렇게 말했다. 


빛은 어둠의 부재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때, 즉 태초에 존재했던 건 결국 끝없는 어둠 그 자체다. 빛보다 어둠이 먼저였다는 말이다. 빛은 그다음이다. 빛은 어둠이 있기에 존재할 수 있고, 그만큼 밝을 수 있다. 빛과 어둠은 그런 존재다. 많은 상처를 가진 그녀가 밝게 웃는 것처럼, 우리가 밝게 웃고 따뜻한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건, 어쩌면 우리 스스로가 외롭지 않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상처와 상처의 만남 
살아간다는 게
상처와 상처끼리 만나서
그 상처를 부비며 살아가는 거겠지만
당신과 상처를 비빈다면
난 정말 행복할 것 같습니다.

김종원 시인 '좋은 사람' 중에서


우리는 늘 상처 받고 그 상처를 안고 살아간다. 

내겐 그저 그런 하루였던 오늘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견디기 힘겨운 하루였을 것이다. 

피부에 난 상처는 연고를 바르고 반창고를 붙이면 된다. 

얼마 지나지 않아 새살이 난다. 

잘 치유한 상처는 흔적도 남지 않는다. 

그렇다면, 마음에 난 상처는 어떻게 치유해야 할까?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마음속 상처가 자연스레 치유되지는 않을 것 같다. 

마음의 상처는 느리지만 조금씩 아물어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 

시인의 말처럼 우리가 살아간다는 건 상처와 상처가 만나는 것이다.

각자의 상처를 비비며 살아가는 동안 

우리가 서로의 곁에 있어줄 수 있다면, 

조금씩 서로의 상처를 어루만져준다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


작가의 이전글 My father, my superstar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