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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cea Jan 30. 2021

My father, my superstar

Episode 6

 

 

힙하게 변해가는 성수동 골목길에 위치한 아날로그 감성으로 도배된 작업실에서 친구 K를 만났다. 

그는 터키인이며 물 위에 그림을 그리는 터키 전통예술인 에브루 아티스트다. 그는 하고 싶은 일들을 위해 기 한국에서 생활하고 있다.


IL A PASSE, EN FAISANT LE BIEN


 항상 보통사람이 되기보다는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는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그는 먼저 남들이 생각하는 보통과 특별함에 대한 평가는 신경 쓰지 않는다며 그저 본인이 생각하는 특별한 삶을 살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다양한 곳에서 에브루를 알리며 활동하고 싶은 마음에 터키에서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다시 한국으로의 생활을 하고 있는 게 그 시작이었다. 지금 성수동에 있는 작업실도, 그가 본격적으로 에브루 클래스를 열어 사람들에게 에브루를 가르치기도 하고, 자신의 전시회를 위한 작업을 계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는 자신의 에브루 작품과 자신의 삶을 기록한 책을 내는 작가도 되고 싶어 했다. 또한, 국제 정치에도 관심이 많아 한국에서 정치외교학 석사과정을 했다. 궁극적으로는 국제기구에서 활동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며, 다양한 방면에서 자신의 재능과 노력을 쓰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특별한 삶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에게 직업을 물어보면 하나 이상의 대답이 나오기 힘들지만, 자신은 여러 직업을 꿈꾼다며 세상은 넓고 하고 싶은 일이 아주 많다고 했다. 그가 꿈꾸는 그의 마지막 모습은 남아있는 사람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는 것이다. 그는 20대 중반에 유럽연합(EU)의 지원으로 프랑스에서 예술가로 활동을 했었는데, 우연히 노르망디의 한 성당 앞을 지나가다가 다음과 같은 묘비명을 보았다고 했다.


IL A PASSE, EN FAISANT LE BIEN


'그는 잘 살다가 떠났다', 

이름 모를 묘비의 주인, 그의 삶이 바로 K가 바라는 삶이었다. G.G 마르케스의 저서 <백 년 동안의 고독>을 언급하며 예술가로서의 자신의 감정과 생각들을 글로 써서 책을 내고, 그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며 사람들의 얼굴에 기쁨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가 떠난 후에 그는 없지만, 늘 그의 작품들이 남아있을 걸 생각하면 행복하다고 말하며, 먼 훗날 자신을 떠올리는 사람들의 기억에 잘 살다가 떠난 사람으로 기억되면 그것으로 충분한 행복이라고 말했다.  





아버지의 그늘

 그가 잘 살다 떠나는 것에 관하여 이야기하던 중 문득 아버지 이야기를 꺼냈다. 이슬람교가 터키의 국교는 아니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무슬림이다. 이로 인해 아직도 터키는 굉장히 엄격하고 강한 가부장적 사회가 유지되고 있다. K의 아버지 또한 그런 사회적 분위기에 익숙하신 분이기 때문에 자식에게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많이 익숙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차분하고 조용한 성격에 깊은 종교적 신념을 갖고 계시기 때문인지, 늘 엄중하고 진지한 모습만을 보이셨다. 이 때문에 어린 시절부터 K에게 아버지라는 존재는 대하기 어려운 존재, 실수를 보여서는 안 되는 존재였다. K는 집안의 막내로 태어났고, 아버지를 제외한 유일한 남자다.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와는 달리 어머니와 누나들과 늘 가까이 지내고, 마음속 이야기를 다 꺼낼 정도로 깊은 유대감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K는 한국에서 가족과 영상통화를 할 때, 그들에겐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지만 아버지와 통화를 할 때에는 늘 곧은 자세로 바로 앉아 늘 딱딱하게 굳은 표정으로 대화한다. 지금까지 그에게 아버지는 늘 그런 존재였다. 그러던 그가 최근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많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앞으로 그가 가장 닮고 싶은 한 인간이자, 뛰어넘고 싶은 단 한 사람. 바로 그의 아버지였다.

 아버지, 그가 잘 살다가 떠났다고 말할 수 있는, 인정받고 싶은 단 한 사람.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


  K가 아버지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아버지를 닮고 싶다고 말한 것이 선뜻 이해가 되지 않았다. 아버지의 존재는 늘 그를 얼어붙게 만드는 존재였고, 그런 아버지는 멀리 타지에 있는 아들에게 애정 어린 표현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K에게 아버지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는지 물었다. 그는 잠시 생각을 정리하고 대답했다. 사실, K와 그의 아버지는 성향이 매우 다르다. K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으로나 자유주의 신념을 가진 반면, 그의 아버지는 종교적 신념, 정치적 신념 모두 강하게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셨다. 그래서 아버지와의 대화는 늘 자신의 의견보다 아버지의 의견이 더 중요했고, 둘의 관계는 K가 자신의 의견을 내비치지 않는 선에서 그치기 마련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 K는 아버지께서 자유주의에 대해 공부하고 계신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자식과 조금 더 깊은 대화를 하기 위해, 자식의 의견을 존중하며 이해하기 위해 67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새로 공부를 시작하셨다고 했다. 이러한 변화는 그동안 K가 상상하지도 못한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K는 아버지의 이러한 변화에 크게 감동받았다고 한다.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옳았던 것만을 강요하던 한 어른이 다른 이의 생각을 존중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꼰대'라는 단어가 왜 현대 사회에 만연한 단어인지를 생각해보면 이해하기 쉽다. K는 아버지가 자신을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고 계신 만큼 자신도 그의 삶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부장적 사회 속에서 아버지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가족에 대한 헌신과 책임을 짊어지고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한다. 늘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 자식들에게 애정 어린 표현을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힘들다는 말을 한 번도 내뱉지 않은 아버지. 분명 당신이 지치고 힘들 때도 있었겠지만, 모든 것을 혼자 짊어진 삶의 무게가 얼마나 견디기 힘들었을까 생각할수록 '나는 그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해보지만 지금의 자신은 그럴 용기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K가 아버지의 삶을 이해할수록, 그를 존경하게 된다고 말했다.


나는 당신의 자부심입니다

 

 K는 아버지를 존경하는 동시에 그보다 더 멋있고, 현명하게 그리고 명예롭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K는 언젠가 그가 책에서 읽은 글귀를 소개했다. 


'If the son cannot be a better person than his father, both of them are failed' 
만약, 아들이 아버지보다 나은 사람이 될 수 없다면, 그들은 모두 실패한 것이다.



 그는 앞으로의 삶이 어떻게 변화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고 한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 자신의 삶이 더 좋은 방향으로 나아갈수록, 그가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될수록 그 스스로 아버지 앞에 당당한 아들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그에게서 전에는 볼 수 없었던 여유로운 미소를 보았다. 마치 평행선 위를 걷는 것처럼 절대 맞닿을 것 같지 않았던 K와 그의 아버지는 그렇게 서로를 향해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 



My father, my super star


 K와의 인터뷰를 통해 아버지라는 존재에 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슈퍼히어로' 

어렸을 때 우리는 모두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 

특히, 아버지의 등은 한없이 크고 넓게만 보인다. 

강철로 된 어깨에 목마를 태우고 무거운 짐을 크고 두꺼운 손으로

번쩍 드는 슈퍼 히어로, 아이에게 아빠는 그런 존재가 된다.


'다른 아빠들과의 경쟁' 

아이가 처음 또래 집단을 마주하게 되면 겪는 흔하디 흔한 일. 

이 무렵 아이에겐 우리 아빠가 세상에서 제일 잘난 존재다.

그와 동시에 가장 무섭고 엄격한 존재가 된다. 

아이가 조금씩 성장하며 세상에 대해 알아갈 무렵, 

우리 아빠가 세상에서 가장 잘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엔 아빠보다 부자인 사람도 있고,

힘이 센 사람도 있고, 키가 큰 사람도 있다.

아이가 성장할수록 아빠는 작아진다.

내가 좋아한 히어로는 그렇게 사라져 간다.


'의식의 성장' 

그러나 이내 우리는 깨닫게 된다. 

그는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사랑하는 존재라는 걸. 

이러한 의식의 성장과정을 통해 우리는 부모님을 이해하게 된다. 

언제나 그렇듯, 그들의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존경합니다


 내가 기억하던 나의 어린 시절은 정말 부유했다. 수많은 어른들이 우리 집에 찾아왔고, 늘 술과 고기를 잔뜩 먹고 돌아갔다. 아버지에 대한 첫 기억은 맥주와 담배 그리고 사람들이었다.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 집안 형편이 많이 어려워졌고 그 모든 부담을 짊어진 부모님의 어깨를 그 시절의 나는 보지 않았다. 당시 내가 속해있던 가장 큰 사회 집단은 학교였고, 학교에서는 집안의 형편이 많이 어렵다는 걸 티 내지 않았다. 같이 어울리던 친구들이 성적이 좋다는 이유로 그들과의 관계를 위해 공부를 했다. 뒤쳐지는 게 싫었고, 내 잘못이 아닌 일 때문에 내가 누군가로부터 동정의 눈빛을 받는 것을 무척이나 자존심 상하는 일로 여겼었다. 밖에서 티를 내지 않으려면, 그 모든 불만을 가슴속 아주 단단한 상자에 담아 무거운 자물쇠로 콱 잠거야만 했다. 그 시절 내 가슴속엔 늘 뜨거운 분노가 가득했다. 분노는 누구를 향하는 것인지, 얼마큼 쌓여 있는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계속 누르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누가 나를 조금만 건드려도 신경질을 부렸고, 짜증 난다라는 표현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렇지만, 나는 정말 최선을 다해 꾹 참고 있었다. 내가 10대에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우리 정훈이는 일찍 철이 들었다는 말이다. 친척들에게, 선생님들처럼 내 주변에서 나를 보던 모든 어른들은 늘 한결같이 철이 일찍 들었다는 말을 했다. 그게 칭찬인지, 동정인지 구분하지도 않은 채, 부모님께 짐이 되지 않으면서도 또래 친구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나를 철저히 가두어야 했다. 어른들이 했던 철이 들었다는 말은 내게 그런 모습을 강요하는 듯했다. 성인이 된 후, 집안의 형편이 나아지면서 가까운 친구들에게 내가 숨기고 있던 것들을 하나 둘 털어놓았다. 그러면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느꼈던 것 같다. 내 마음은 그렇게 서서히 풀렸다. 내가 받았던 모든 압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적어도, 내 입장만 생각하면 그랬다. 성인이 되었어도 나는 아버지의 마음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나를 위해 포기해야 했던 것과 포기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지 않았다.

 

 시간이 많이 흘러 최근에 아버지의 뒷모습을 본 적이 있다. 조금 더 컸던 내가 변한 걸까, 그의 모습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던 걸까.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씀을 드려야 할지 한참을 생각했다. 내가 당신을 그토록 원망했다고, 내가 당신에게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 제대로 한 적이 없다고, 지금까지 버텨주어서 진심으로 고맙다고. 수많은 생각이 들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말이 없었다. 지난 시간, 나에게 그는 세상에서 가장 멋진 사람이었던 적도 있었지만, 세상에서 가장 멋지지 않은 사람이었던 시간이 더 길었다. 그러나, 어느덧 나를 처음 만났을 때의 그의 나이를 훌쩍 넘은 지금의 나는 그가 너무 멋있어 보인다. 나는 그 상황에서 그와 같은 선택을 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지금까지도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쉽게 꺼내지는 못한다. 그와 나 사이에는 큰 거울이 있는 것 같다. 그에게 마음을 표현하려고 할 때마다 나를 꼭 닮은 당신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 괜히 민망해지곤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 글을 빌려서라도 내 마음을 꼭 전하고 싶다. 


Dear. My father, my superstar 
“당신의 멋지지 않은 모습도, 당신의 눈물도,
당신의 미안함도 고맙고, 사랑합니다.
저는 늘 당신의 아들이자 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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