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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rcea Feb 05. 2021

일상이라는 기적을 선물합니다

Episode 9

 대학병원 소아 물리치료사로 일하는 친구'H'와 오랜만에 만났다. 남자 둘이서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세 시간을 카페에서 떠들었다. 오랜만에 본 그는 사뭇 어른이 되어있었다. 수다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그를 떠올려보았다. 고3 시절에도 꿈을 물어보면, 웃음으로 대답을 무마했던 그는 대학교 간판만 보며 물리치료학과에 진학했었다. 대학교의 낭만은 술이라며 늘 공부는 뒷전으로 하던 그는 결국 하고 싶은 일을 찾지 못한 채 등 떠밀리듯 국가고시를 봤고, 운 좋게도 한 번에 물리치료사 자격증을 땄다. 



소아 물리치료사?!

 물리치료사는 성인과 소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서 진로를 정한다. 보통, 소아 파트는 여성지원자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나는 H가 당연히 성인 물리치료사를 선택할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그는 소아 파트를 선택했다. 환자가 가볍기 때문에 힘이 덜 든다는 단순한 논리를 이유로 들었다. 늘 남성 지원자가 부족했던 소아 파트였기에 온갖 병원에서 그를 찾았다. 그렇게 그는 소아 물리치료사가 되었다. 그리고 3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지난 3년 동안 그는 단 하루도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그의 생각대로 아이들은 가벼웠다. 그래서, 육체적인 노동은 성인 물리치료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그러나, 그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소아로 분류되는 아이들은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이었다. 환자가 자신이 어디가 아픈지, 어떻게 불편한지 정확하게 표현하는 게 치료를 하는 사람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그 '소통'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평소에도 아이들을 좋아하지 않았던 그가 어느샌가 동요를 외워 부르고, 조카들이나 볼법한 만화들을 보게 된 것은 아이들과의 소통을 위한 노력이었다. 그렇게 그는 어느덧 4년 차 소아 물리치료사가 되었다. 



일상이라는 기적을 선물합니다.

 그의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말이 있었다. 바로, 일상을 선물한다는 말이었다. 그는 매일 같이 아픈 아이들을 만난다. 선천적으로 뇌에 문제가 생겨, 우리가 자라면서 당연하게 하는 움직임을 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는 그 아이들에게 평범한 일상을 선물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 발로 서있기 조차 힘들어하는 아이가 치료를 받고 한 걸음 한 한걸음 걷기 시작하는 순간, 손가락으로 지시한 곳을 따라 바라보지 못하는 아이가 언젠가 눈을 마주치고 고개를 따라 움직이는 순간, 치료를 받고 마땅히 누려야 할 일상을 되찾은 아이의 부모님들께서 감사를 전하는 순간, 그런 기적 같은 순간들 속에서 그는 마음에 있던 모든 스트레스가 날아갈 만큼 행복하다고 말했다. 그가 소아 물리치료사가 된 이유는 다소 황당하지만, 지금은 자신이 소아 물리치료를 할 수 있어서, 아이들에게 일상이라는 기적을 선물할 수 있어서 너무나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언젠가, 그가 핸드폰에 자신이 치료하는 아이가 걸음마를 떼는 영상을 보며 울고 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때 내가 봤던 그의 모습은 기적을 선물한 사람이 아닌, 기적을 선물 받은 사람의 모습이었다. 

 집에 돌아오는 길, 하루 종일 떠있던 먹구름 사이로 따사로운 햇살이 한 줄기씩 새어 나오고 시작했다. 이전의 나는 일상은 재미없고 지루한 것이라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고, 그 속에 숨어있던 행복을 찾으려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울며 들썩거리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내 일상도 저렇게 찬란히 빛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고, 어쩌면 이미 내 일상은 행복으로 가득한 것 아닐까 라는 생각도 했었다. 무엇보다 오늘 내게 주어진 하루를 더 소중하고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마음가짐이 필요했다. 집에 도착하고 나서야 깨달았다. 그는 자신이 치료하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내게도 일상이라는 기적을 선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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