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에서 벗어나기
내가 범죄자를 만난 이유
벌써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그 시간을 생생히 기억한다. 8년 전, 군대에서 나는 교도 헌병으로 군 복무를 하고 있었다. 내가 근무했던 영창은 일반 병사 징계자보다는 실제 범죄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교도 헌병이었던 내게 주어진 핵심 임무는 24시간 동안 교대로 그들을 경계 및 감시하는 동시에 보호하는 것이었다. 수용 거실 내에서 수용자들의 자해 및 난동 등의 상황이 발생하거나, 법원 공판 및 병원, 교도소 이송 등의 외부 활동 시 발생할 수 있는 상황들을 컨트롤하는 것이다. 표면적으로 우리는 교도관과 범죄자의 신분으로 비치곤 한다. 그러나, 사실 우리는 서로 너무나도 애매한 관계에 놓여있었다.
교도관의 의무와 책임을 지는 민간인
불과 얼마 전까지 나는 민간인이었다. 군 입대와 동시에 어떤 소명이나 정의감이 아닌, 인원 배치 시스템에 의해 헌병으로 배치되었고, 그중에서 교도 헌병으로 차출되었다. 쉽게 말해, 무작위로 뽑힌 것이다. 내가 처음 그들을 마주한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이들을 마주하고 있을까?
불과 두 달 전, 나는 대학교 1학년 1학기 기말고사를 마친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리고 내 눈 앞에 있던 사람들은 살인, 폭행, 강간, 추행, 사기 등의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들이었다. 앞으로 1년 6개월이 넘도록 매일 같이 이들을 마주해야 한다는 생각에 온 몸에 소름이 끼쳤다.
무죄추정의 원칙을 적용받는 범죄자
영창에 수용되어 있던 모든 수용자들은 형법상의 범죄사실이 인정되어 실형을 선고받았지만, 항소 및 상고를 통해 상급법원의 선고 판결이 나올 때까지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범죄자로 취급받지 않는 소위 ‘미결수’(미결 수용자)의 신분이다. 내가 있던 동안 무죄를 주장했던 수용자도, 무죄 판결을 받았던 수용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 항고심 중 그들은 교도소에 이감되지 않고, 영창에 수감되며 형사 소송을 진행한다. 그동안 대부분은 공탁금을 걸고, 정신과에서 수면제와 같은 약을 처방받으며 여러 장의 반성문을 작성한다. 아마, 그들에게 항고심은 일종의 ‘형량 줄이기’와 같은 의미였던 것 같다.
매일 범죄자를 마주한다는 것
대부분의 범죄자들은 시민 공동체의 안전을 위해 법을 근거로 사회로부터 강제로 격리된다. 우리는 보통 범죄자들을 뉴스나 신문 등의 언론보도를 통해 접하곤 한다. 그러나, 나는 군생활 내내, 매일 같이 그들과 마주했다. 그들에게 하루의 시작과 끝을 알리며, 삼시 세끼를 제공하고, 샤워나 실외 운동 등의 기본적인 생활을 보장했다. 동시에,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했다. 반원 모양으로 생긴 수용시설의 한가운데에 내 자리가 있었고, 그로 인해 모든 수용 거실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 이는 곧 그들도 고개만 들면 나를 볼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교도관으로서 그들의 범죄사실에 대해 감정을 가지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고, 무죄추정의 원칙에 따라 그들을 범죄자로 취급할 수 없었다. 그러나, 나는 속으로 그들을 늘 증오하고, 미워했으며, 때로는 그들의 범죄사실과 수용시설 내에서의 태도에 격한 분노를 느꼈다.
그 시간들은 내가 태어나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사람을 경멸하는 동시에 두려워했던 시기였다. 때로는 일상의 평범한 사람들과 다를 바 없는 모습이 보였고, 때로는 자신의 범죄 사실에 대해 반성하지 않고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어떻게든 빠져나가기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을 보였다. 내게 매일 범죄자를 마주하는 것은 사람에 대한 가치를 지키려는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나는 항상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명령에 의해 그들을 경계하고 감시해야만 했다. 동시에, 나는 늘 내가 가진 사람에 대한 믿음이 무너지는 것 또한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그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부터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함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 생생한 기억들은 이따금씩 나를 괴롭힌다. 각종 미디어에서 쏟아지는 범죄관련 기사를 볼 때마다 나는 그 기억들이 떠오른다.
어떻게 하면 그 트라우마를 조금이라도 극복할 수 있을까?
한참을 고민한 끝에 소설을 쓰기로 했다. 그때의 내 두려움을 죽일 수 있는 건 그 것 밖에 없을 것 같다. 대놓고 비난 할 수도, 증오할 수도 없었던 자들을 매일같이 마주했던 책임감도 의무감도 없이 두려워하고 증오했던 '나'를 내 마음에서 씻어내리는 유일한 길. 그 속에 기억과 감정들을 쏟아내고, 조금은 마음이 후련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