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Mircea Jan 26. 2021

나는 당신에게 나무가 되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씨앗을 심다

특별한 일이 없는 평범한 오늘은 비가 내렸다.

여느 때와 같이 운동을 다녀오고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비는 꽤나 추적추적 어설프게 내렸지만, 그래도 온 세상을 제법 적셔놓았다. 


집에 도착해, 차가워진 몸을 따뜻한 커피로 녹이는 동안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먼 타지에서 생활하는 오랜 친구였다. 

서로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를 자주 묻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늘 곁에 있는 듯 변함없는 목소리였다.


대화가 무르익어 갈 때쯤, 친구는 내게 문득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어줘서 고맙다고 하며, 마음속 걱정과 고민 그리고 불안함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는데 문득 내가 생각나 전화를 걸어왔다고 말했다. 


나도 고마워

지치고 외로운 날, 문득 내 생각이 났다며 멀리서도 전화 한 통을 걸어온 그 친구에게 내가 했던 말이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 이 넓은 세상과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나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어 지독하게 외로운 순간, 그 순간에 내가 생각났다면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내가 친구에게 했던 고맙다는 말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에게 있어 나는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내가 나를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음에도, 그에게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그 말 한마디는 이미 나를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위로

나는 사람들 속에서 말을 많이 하기보다, 많이 들어주는 편이다. 사실, 할 말이 많지 않기도 하고 괜히 말을 꺼냈다가 실수를 할까 염려하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그렇게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대화가 끝날 무렵, 나는 사람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

그럴 때마다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아냐,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어."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뿐, 어떤 조언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위로를 받고 돌아간다.

문득 내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어온 그 친구는 위로를 받았을까? 

작은 위로나마 받았길 바란다.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다
사람이 잘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인 것 같다.

어떤 씨앗은
내가 심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뒤에도
쑥쑥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기도 한다.

- 위지안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中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어떤 씨앗을 심었을까, 그 씨앗들은 지금 어떻게 자라나고 있을까...?

서로의 소원해진 마음에 사라진 씨앗도 있을 것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의 마음에서 이미 훌쩍 커버린 나무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오랜 친구의 전화 한 통으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에 커다란 나무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정말 잘 살아야겠다.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퇴사를 결정할 수 있었던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