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마음에 작은 씨앗을 심다
특별한 일이 없는 평범한 오늘은 비가 내렸다.
여느 때와 같이 운동을 다녀오고 책을 읽고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하루를 시작했다.
비는 꽤나 추적추적 어설프게 내렸지만, 그래도 온 세상을 제법 적셔놓았다.
집에 도착해, 차가워진 몸을 따뜻한 커피로 녹이는 동안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먼 타지에서 생활하는 오랜 친구였다.
서로 사는 게 바쁘다는 핑계로 안부를 자주 묻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늘 곁에 있는 듯 변함없는 목소리였다.
대화가 무르익어 갈 때쯤, 친구는 내게 문득 고맙다는 말을 했다.
그 자리에 변함없이 있어줘서 고맙다고 하며, 마음속 걱정과 고민 그리고 불안함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었는데 문득 내가 생각나 전화를 걸어왔다고 말했다.
나도 고마워
지치고 외로운 날, 문득 내 생각이 났다며 멀리서도 전화 한 통을 걸어온 그 친구에게 내가 했던 말이다.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 이 넓은 세상과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 나 혼자 덩그러니 놓여있어 지독하게 외로운 순간, 그 순간에 내가 생각났다면 그 사람에게 나는 어떤 존재일까?라는 생각을 해보면 내가 친구에게 했던 고맙다는 말이 쉽게 이해될 것이다. 그에게 있어 나는 믿을 수 있고, 의지할 수 있고, 위로받을 수 있는 사람인 것이다. 내가 나를 스스로 그렇게 생각한 적이 없음에도, 그에게 나는 이미 그런 사람이 된 것이다. 그 말 한마디는 이미 나를 따뜻한 사람으로 만들어준다.
위로
나는 사람들 속에서 말을 많이 하기보다, 많이 들어주는 편이다. 사실, 할 말이 많지 않기도 하고 괜히 말을 꺼냈다가 실수를 할까 염려하는 마음이 크다. 그래서인지, 언젠가부터 사람들의 말을 들어주는 시간이 더 많아졌고, 그렇게 누군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었다.
대화가 끝날 무렵, 나는 사람들에게 늘 이야기한다.
"큰 도움이 되어주지 못해 미안해."
그럴 때마다 그들은 내게 이렇게 말한다.
"아냐,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었어."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었을 뿐, 어떤 조언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위로를 받고 돌아간다.
문득 내가 생각나서 전화를 걸어온 그 친구는 위로를 받았을까?
작은 위로나마 받았길 바란다.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다
사람이 잘 살아간다는 것은
누군가의 마음에
씨앗을 심는 일인 것 같다.
어떤 씨앗은
내가 심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린 뒤에도
쑥쑥 자라나
커다란 나무가 되기도 한다.
- 위지안 <오늘 내가 살아갈 이유> 中
나는 누군가의 마음에 어떤 씨앗을 심었을까, 그 씨앗들은 지금 어떻게 자라나고 있을까...?
서로의 소원해진 마음에 사라진 씨앗도 있을 것이고,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누군가의 마음에서 이미 훌쩍 커버린 나무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오랜 친구의 전화 한 통으로 인해, 누군가의 마음에 커다란 나무로 남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정말 잘 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