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생각 이상의 수고로움
오늘로 16일째 브런치에 글을 올리고 있다.
그대로인 일상의 과업에서 '브런치에 글쓰기'가 추가되었다는 건 생각보다 더 훨씬 더 수고스러운 일이었다.
짧다고 생각되는 글도 적어 올리는데 최소 두 시간 정도가 소요되었다.
매일 글을 22시 혹은 23시쯤 올리는데, 24시가 다가오면 더 이상의 검토를 포기하고 어느 정도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올려버리곤 하는 것이다.
이토록이나 수정 없이 브런치에 글을 올리는 스스로가 어이없을 정도.
고작 보름 해보고 어떤 걸 느꼈다고 하는 것도 우습지만 지금까지 내가 알게 된 건 두 가지.
글을 쓰는 행위는 사유하는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라는 점과, 동시에 생각보다 더더 수고스럽다는 점이었다.
글을 쓴다는 건 읽는 것과는 완전하게 다른 일이었고, 쓰면 쓸수록 세상 모든 작가들이 대단해 보였다.
특히나 출간 작가는 더더 대단해 보이는데, 특정 시점의 생각을 일생동안 영원히 내 이름으로 유통되게 만든다는 점이 그렇다
특기가 번복인 내게, 어떤 생각을 일정 기한 이상 유지시킨다는 건 대단해 보이는 일이었다.
때문에 책에서 문장을 수집하는 일을 좋아한다.
신중하게 적힌 모든 문장 중 내 마음에 남은 문장을 기억하기 위해 기록해두는 일을.
그 기록들을 한참 후에 다시 읽어보는 일은 즐겁다.
이게 왜 적혀있지? 싶은 문장도 있고, 읽을 때마다 배로 좋아지는 글도 있다.
문학이 위로가 아니라 고문이라는 말도 옳은 말이지만, 그럼에도 가끔은 문학이 위로가 될 수 있는 이유는 그것이 고통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의 말이기 때문이고,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그런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_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에서
언젠가 본 이 문장이 글과 문학을 더 좋아하게 만들었다.
내게도 글은 고문을 가장한 위로였다.
성악설은 정말 이어서일까, 타인의 글을 읽다가 그 글 안에 담긴 고통을 보게 되면 함께 괴로우면서도 동시에 그것이 위로같이 느껴지곤 했다.
고통받는 사람에게는 고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의 말만이 진실하게 들린다는 문장도 깊게 공감한다.
브런치에 글을 적은 이 보름의 시간 동안,
읽고 쓰는 일이 내 삶에서 생각보다 더 귀한 것이었음을 실감한다.
그 시간을 더 소중히 아끼고 다듬어
평안하고 잔잔한 사람에 더 가까워지기를 희망하며,
나의 100일 도전기를 계속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