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에게 내린 다말증 진단
옷장을 비워나가는 일도, 잠을 줄이는 것도, 먹는 양을 적게 조절하는 일도 배부름을 이것만큼 어렵지는 않았다.
세상에서 가장 줄이기 어려운 건 따로 있었다.
바로 '말'.
나는 말이 많다.
너무 많다.
태생적으로 수다쟁이인 사람이었는지, 아버지는 내게 '可言不言大人心 가언불언대인심' 이라는 말을 일찍이 가르쳐주셨다.
말할 수 있는 것을 말하지 않는 사람이 큰 사람의 마음이라는 의미였다.
나는 이 말이 좋았다. 그래서 이 말과, 내가 이 말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수십 번도 넘게 말하고 다녔다.
말할 수 있는 것은 물론, 말하고 싶은 것까지 전부 기어코 말하던 인간이었던 것이다.
얼마 전 새로 알게 된 단어가 있다.
'다말증'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에서 처음 들었는데, 검색해보니 그곳에서 처음 쓰인 단어가 맞는듯싶다.
그곳에 나오는 창희라는 캐릭터가 회사 옆자리에 앉는 동료를 소개할 때 사용했던 단어.
"정 선배는 그냥 말이 많아. 말이 너무 많아. 나 죽으면 국민청원 게시판에 꼭 올려줘야 된다.
다말증 환자 얘기 듣다 스트레스로 죽음. 어떻게 외근한 날보다 사무실 나온 날이 더 힘들어.
일주일 동안 있었던 얘기 다 들어야 해. 뭐 먹었는지까지 다. 다말증 환자야. 막 말하고 싶어 미쳐해. 내가 듣기 싫어 미쳐한다는 건 몰라. 그냥 자기만 있어.
속사포처럼 내뱉은 위 대사에서 다말증이라는 단어가 귀에 꽂혔다.
언제나 새해 목표로 한 줄을 차지하는 항목이 '말 줄이기'인 사람이라 찔려서 그랬던 걸까?
아님 하필 나도 정 씨여서 였던 걸까?
언젠가 퇴사 후 가장 먼저 내게 시키고 싶은 일이 아주 생소한 언어의 나라에 가서, 내가 해석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하는 사람들 틈에서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최소 한 달간 지내보는 것이었다.
템플스테이를 계획해 묵언수행에 들어가는 게 더 합리적일 테지만, 그건 하지 않으려는 걸 보면 정말로 말을 하나도 안 할 생각은 아니었지 싶다.
묵언은 생각만으로도 고통스럽다.
이런 걸 보면 나는 다말증이 분명하다.
브런치를 시작하며 다짐했었다.
말할 시간에 적자. 그렇게 네 안에서 뭐든 뱉어내야겠다면 이왕이면 쓰기로 하자.
그 결과 나는 두 번을 뱉는다.
글로 한번. 말로 한번.
말을 줄이고 싶은 이유가 명확하게 있지는 않다.
말을 남겨 후회했던 경험도 많지 않으며, 충분히 생각하고 말하기 때문에 아무 말을 하고 다니는 편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귀가 둘이고 입이 하나인 이유가 있을 텐데, 나는 입이 둘이고 귀가 하나인 것처럼 사는 것 같아서 이 부조화를 알맞게 고치고 싶은 마음이다.
너무 많은 말을 하는 사람의 말에는 힘이 없어 보이는 것 같은 개인적인 생각도 말을 줄이고 싶은 이유 중 하나다.
내 발언에 무게가 있기를 바라는 마음.
"사람들이 얼마나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하는지 보시면 아실 겁니다. 묵언 수행은 쓸데없는 말을 줄이고, 자기 내면의 세계를 보기 위함입니다. 또한 묵언 수행을 통해 에너지를 축적할 수 있습니다. 진정한 묵언은 남이 묻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않는 겁니다. 묵언 수행은 자기가 직접 체험해 의미를 아는 게 제일 좋습니다."_덕해 스님
그렇기에 매번 다짐한다. 말을 좀 줄여야겠다고.
위의 글을 보며 한번 더 다짐한다.
남이 묻는 말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하지 말자고.
오늘 오후에 오랜만에 친구를 만나러 간다.
만나러 가기 전 한번 더 글을 적으며 곱씹어본다.
귀가 두 개고 입이 하나인, 모습에 맞는 사람이어 보자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