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월생 Oct 30. 2022

안전사회를 만들겠다던 약속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는, 이 작은 나라에서 오늘 같은 비극적인 사건을 마주해야 하는 걸까.

어제저녁 혹시 이태원이냐고 묻는 지인들의 연락에 이 사건을 알게 되었다.

그게 22시 전이었으니, 기사조차 드물던 그때부터 거의 실시간으로 모든 상황을 지켜봤다.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무력했고, 늘어나는 사망자 수를 확인하는 기분은 참담했다.

22시에 퇴근을 했던 지친 하루였지만 새벽 5시가 넘도록 도저히 잠에 들 수 없었다.

늦은 시각에 벌어진 일이라 다음날인 오늘 아침에야 비로소 이 사건을 알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니 목이 메었다.

이 밤이 사상자의 가족분들이 마지막으로 보낼 평안한 밤이라는 생각을 하니 마음이 아렸다.

역시나 오늘 오전 8시경, 가장 많은 실종신고가 접수되었다는 기사가 보도되었다. 그 뉴스를 보고 또 한 번 무너졌다.

하루아침 지옥 속으로 빨려 들어가게 되었을 유족과 주변인들의 참담함을 차마 가늠할 수 조차 없었다.


백여 명이 넘는 희생자라니.

너무 어리고 또 어린 사람들이었다.

여느 때 보다 아주 조금 더 특별한 하루를 보내고 싶었던 것뿐이었을 사람들이 마주하기엔 너무 가혹하고 또 잔인한 일이었다.

그곳에서 누군가를 지켜내지 못한 사람들도, 그 생지옥을 목격한 이들도 무슨 수로 남은 생을 오늘을 떠올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을지..


이런 참사는 언제나 살아가고 있는 모두를 아프게 한다.

세월호 때가 그랬고 이번이 그렇다.

너무 많은 목숨이 너무 말도 안 되게 이 세상을 떠나버렸다는 사실이 끔찍하고 절망적이고 괴로웠다.


100,000명이 몰리는 행사에 200명의 인력을 배치했다면, 1명이 500명의 인원을 통제해야 함을 의미한다.

당연하게도 불가능했을 테고 그렇기에 이건 인재가 맞다.

그래서 더 비참했다.

내가 사는 곳에서, 적어도 내가 사는 동안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목소리를 내고, 행동하며 바꿔나가고 있었다고 믿었던 모든 시간들이 끝내 무력했음을 입증받는 것 같아 참담했다.

도대체 언제까지 우리는 이런 참사를 마주하며 아파해야 할까.

얼마나 많은 이들이 한순간 유족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너무 끔찍해 생각조차 해본 적 없을 남겨진 사람의 삶을 살아가야 할까.

너무도 참담하고 애통하다. 부디 더 이상의 희생이 없기를 정말 간절히 바라며 삼가 고인들의 명복과, 그 유가족 및 주변분들에 애도를 표한다.


덧붙여, 누구나 어디든 갈 수 있어야 한다.

일을 하러 간 사람도, 놀러 간 사람도 누구나 자신이 계획한 하루를 보낸 후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일상을 보장받기 위해 우리는 세금을 내고 국가에 소속되어 살아가는 것이다.

개인의 행동 앞에 '왜'를 물을 수 있는 건 그것이 범법행위일 때만이라고 생각한다.

판단하지 않는 비난 없는 추모가 불가능한 도덕과 지능을 가진 사람들은 부디 침묵만이라도 해주었으면 한다.

비난해야 할 게 있다면 미흡한 행정이지 그들의 외출 사유가 아니니.

제발 남겨진 유가족과 주변분들이 누군가를 잃은 것 이외의 상처를 접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사망 소식을 확인한 유가족들의 실신 기사를 접하는 내내 눈물이 고였다.

세월호 사고와 대구 지하철 참사 때 희생자들이 남긴 메시지들을 보고 수일을 힘들어했던 때가 겹쳐 생각났다.

왜 또. 왜 또 이런 일을 마주해야 했을까. 세상이 원망스럽고 행정의 무능함에 화가 난다.

153명. 이 말도 안 되는 인원의 희생이, 남은 시간들이 많았을 어린 생명들이 너무 가엾다.


있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완전한 애도를 위해 필요한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유족이 원하는 게 진상규명이라면 무엇의 공백이 사고를 이토록 최악으로 만들었는지 밝혀 책임져야 하고,

그들이 원하는 게 재발 방지라면 절대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확실한 행정적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앞으로 도저히 이전처럼 살 수 없어진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은, 그들이 원하는 방식의 애도를 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모두의 일이니, 남겨진 유족과 주변인들만이 그 짐을 짊어지게 방관해서는 안된다.

각자의 위치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행동하는 것 만이, 세상을 보다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제발 더 이상 이런 비극이 발생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런 처참한 사고는 우리 사회에서 더 이상 없어야 한다.

'안전사회'라는 것이 부디 이 세대 안에 실현될 수 있는, 신기루 같은 이데아가 아니기를 제발 바라본다.

작가의 이전글 비로소 한 사람의 어른이 되는 방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