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이케아를 방문했다.
특별히 구매해야 할 것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겨울이라 러그를 구비해볼까 하는 마음을 한편에 갖고 있긴 했다.
결론적으로 내가 구매해온 것은 고무장갑, 언제 필요할지 모르는 보관통과 행주 그리고 지퍼백이었다.
이케아를 방문한 날들 중 가장 적게 소비하고 온 날이었다.
이케아를 처음 방문했던 날이 기억난다.
자취를 처음 시작할 때, 텅 빈 방을 꾸며야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방문했다.
인테리어에 큰 뜻 없이 그저 간단하게 필요한 것들만 사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이케아의 쇼룸을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쇼룸을 입장하기 전, 벽면을 보면 0000000원으로 이런 방! 같은 문구가 있다.
이케아에서는 해당 금액으로 그런 쇼룸 같은 방을 꾸밀 수 있다는 말이었다.
가구는 살 수 있으나, 안에 물건까지 채워야 했던 나는 그런 가구들에 그만큼의 금액을 쓰면 안 되는 것이었는데,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방 하나를 꾸미는데 얼마를 썼는지 나조차도 놀랐던 기억이 난다.
3개월 할부로 열심히 그 값을 치러냈었다.
지금 같았으면 차라리 그 돈으로 괜찮은 안마의자를 하나 놓고 침대와 안마의자 딱 두 개만으로 살았을 텐데, 그때는 이렇게 똑똑하지 못했었다.
젊을 때라, 아니 어릴 때라 안마의자 같은 것은 옵션도 아니기도 했다.
그때의 나와 달리 오늘의 나는 만원대 스툴에도, 헹거에도, 조명과 수납장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인형도 이제는 집에 두면 먼지만 쌓인다는 것을 안다.
크고 값싼 트리를 구매할까 잠시 흔들렸으나, 그 또한 없어도 잘 살고 내가 아무리 이쁘게 만들어도 백화점에서 전문가들이 만든 것만 할까 싶어 져, 트리가 많이 생각나면 시간을 내 그런 장소에 방문해서 보고 와야겠다고 생각하며 지나쳤다.
정말 잘 한 결정이라고 다시 한번 생각한다.
이제는 내게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음이, 글을 적는 지금 문득 기특했다.
이케아의 모든 가구를 지나친 건 더 이상 필요한 가구가 없어서인 것도 큰 이유였지만, 원래 가구 자체에 큰 욕심이 없는 편인 덕분이기도 하다. 가구 한정 물건을 오래오래 쓰는 일이 너무 가능하다. 굳이 바꾸어야 하는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나를 아는 이들은 내가 유명한 인테리어/집들이 어플을 다운받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는데, 그래서 앞으로도 그 어플만큼은 가급적 피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배달어플을 사용한 이후로 매일 쏟아지는 쿠폰에 정신없이 소비했던 것을 떠올리면, 인테리어는 정말 감당할 수 없을게 분명하다.
있는데 또 사는 것. 에 해당하는 종목은 옷으로 충분하며, 그것마저도 이제 버거워 줄여나가는 중인데 인테리어라니 상상만 해도 벌써 힘겹다.
인테리어에 취미가 있는 사람은 아주 부자인 사람이라던데, 정말 그럴 수밖에 없겠다 싶다.
그것들을 두고도 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야 하는데, 그게 가능하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여하튼 가구에 취미가 전혀 없는 사람도 이케아라는 공간에서 빈손으로 나오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살까 말까 고민하다 한번 지나치면 끝이어야 하는데 그 이후로도 한 세 번 정도 또다시 내 눈앞에 나타나니 말이다.
'자니?'라는 문자를 꼭 세 번이나 받은 느낌이랄까. 처음에 흔들렸지만 애써 외면했는데, 그것을 연속 세 번이나 무시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게 내 손에는 몇 가지 물건들이 기어코 들려있었다.
왜 꼭 보관통 같은 것을 살 때, '커피값도 안되는데.' 같은 생각이 드는 건지 모르겠다.
그럼 그것을 사고 커피를 안 마셔야 말이 되는 건데, 커피는 물론, 이케아 계산대 뒤편에 있는 핫도그 집까지 꼭 방문하게 된다.
왜 천 원 이어서는 안 먹기도 애매하게 만드는 걸까?
진짜 똑똑한 사람들이 분명하다.
이케아 방문 자체를 고심해서 해야겠다고 한번 더 생각하게 된다.
고무장갑과 지퍼백은 잘한 선택이 맞다.
글을 쓰는 지금도 후회는 없다. 특히나 이케아 지퍼백은 가성비가 무척 좋으며, 한번 사두면 일 년은 넘게 거뜬하니 아주 좋은 선택이었다.
고무장갑도 살 때가 되었는데 방문했던 곳이 하필 이케아였다.
필요한 것을 구매한 것이니 잘한 일이다.
그렇게 오늘의 구매는 전부 그럴만했다고 결론 내리고 싶다.
계획 없이 이케아를 방문했는데 아무것도 소비하지 않고 나오는 게 가능했던 사람은, 개인적으로 생각할 때 금주도 금연도 가능할 사람이다.
더불어 아래 내가 적어놓고 종종 읽어보는 이 문장에 의하면 권력을 가진 사람이기도 하다.
부럽다.
여하튼 소비를 줄여나가고 싶은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아래 문장을 공유하며, 점점 나아지고 있는 이 소비병의 경과보고를 마무리해본다.
저축을 하면 무엇이든 소비할 수 있는 권력이 생긴다.
수많은 마케터들의 최면에 홀려버리는 것이 아니라, 여유 있게 쳐다볼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이것이 바로 절제의 최고 가치다. 우리가 무형자산의 하나로서 절제를 배워야 하는 이유다.
특히 자기 자산을 사용하는 것을 절제할 수 있다는 말은 자기 자산의 흐름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통제를 통해 자산이 모이는 것을 경험해야 한다.
그럴 때 성취감은 물론, ‘언제든 사용할 수 있는 권력’이라는 재력의 본질을 느낄 수 있게 된다.
마치 수십억 원의 자산가가 언제든 원하는 차를 살 수 있다고 느낄 때 얻는 즐거움, 수천억 원의 자산가가 언제든 원하는 건물을 살 수 있다고 느낄 때 얻는 즐거움과 비슷하다.
규모가 작더라도 감정은 정확히 동일한 것이다. 이 즐거움이야 말로 돈이 주는 최고의 권력이다.
그 맛을 정확히 이해하고 스스로 첫 단추를 꿸 수 없으면 돈이 모일 리는 없다.
그 권력의 시작은 스스로 자신의 자산을 절제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달려 있다.
돈이 모이면 여유가 생긴다. 그리고 관심이 생긴다. 내 소유가 될 수 있다는 현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눈 깜짝할 사이에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다는 마음 자체만으로도 세상 모든 게 달라 보인다.
100만 원이 모이고 1,000만 원이 모이면 이제는 과소비의 영역이 이전과 많이 달라진다.
웬만한 사소한 물건은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이 된다. 꼭 필요할 때만 사고, 필요하지 않을 때는 매대에 내버려 둘 수 있게 된다. 또한 몇 푼의 소비를 해봤자 재산이 크게 줄어들지도 않는 상황이 된다.
그때부터 정말 냉정하게 소비의 우선순위를 생각할 수 있게 된다. 이전에는 비싸게 생각했던 곳에서 은사님이나 지인들에게 맛있는 밥을 살 수도 있다. 스스로에게 투자할 마음도 생긴다.
더 이상 돈을 씀으로써 돈이 있는 척하지 않아도 된다. 내 자신을 돈으로 위로할 필요가 없어진다.
절제란 단순히 돈을 모으는 것에서 그치지 않는다. 권력감을 주는 것에서 끝이 아니다.
허세로 가득 찬 자만감을 진짜 자존심으로 바꾸어준다는 데 진짜 가치가 있다.
남에게 과시하기 위해 낭비해야 될 많은 시간을 아껴준다. 몸을 부풀려야 했던 복어 같은 자신의 존재를 굳이 부풀릴 필요 없는 고래로 만들어주는 것이다. 절제는 자기 자신을 보다 나은 존재로 진화시켜 준다.
허세가 자존심으로 진화할 때, 과시가 자기를 향한 믿음으로 진화할 때 무형자산의 근원 자체인 우리는 좀 더 성장할 수 있게 된다.
부를 거머쥔 사람들은 소비가 주는 기쁨이 짧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을 쥔 자들이 소비를 부추긴다는 사실을 잘 안다.
그렇기에 부자들일수록 돈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부자들이 작은 돈도 아끼는 것처럼 보이는 건 자본주의의 속성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쓰지 않을 돈이라 해도 자신에게 모이게 만든다.
모아두면 더 큰 여유가 느껴지기 때문이다. 스스로에게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돈이 있다는 것은, 수십수백 가지 일을 언제든지 할 수 있다는 자유를 가졌다는 의미다.
소비 충동에 대해서도 완전한 자유를 얻는 것이다. 만약 지금 소비의 충동을 이겨내기 힘들다는 생각이 든다면, 어떤 자동차나 명품이 있어야만 이 불안하고 초조한 삶에 위안을 얻을 것 같다면, 오히려 반대로 생각해보면 어떨지 묻고 싶다. 그런 자동차나 명품을 아무 때나 살 수 있는 권한을 내 손안에 쥐고 있는 것이 오히려 더 즐겁고 더 자존감이 채워질 수도 있는 일이다.
안 사고 기다리면 그 권한을 영원히 누릴 수 있다. 돈을 아껴야 하는 고통이, 돈을 모으는 기쁨으로 바뀌는 것은 순식간이다. 조금만 익숙해지면 훨씬 지속 가능한 행복이 만들어질 것이다.
_[부의 확장]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