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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Nov 25. 2022

사람들이 모여서 월드컵을 시청하는 이유

어제는 카타르 월드컵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경기가 있던 날이었다.

고백하자면 나는 해당 사실을 어제 아침쯤에야 알았을 정도로 월드컵과 스포츠에 관심이 없다.

다만 이번 월드컵을 보이콧하는 목소리는 알고 있었다.

시의적절하게 공개된 넷플릭스의 고발성 다큐멘터리 [FIFA UNCOVERD]에 의하면, 피파라는 단체는 비리로 가득했고 이미 부패했다.

그래서 월드컵을 그저 공정하고 멋진 스포츠로 보기가 힘들었다.

아직 해당 다큐 전부를 보지는 못했지만, 피파의 존재 이유가 더 이상 축구가 아님은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스포츠를 가장한 돈이고, 탐욕이고, 비리임을 아는 상태에서 그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지 않았다.

카타르 월드컵은 특히나 논란이 많았는데, 그 이유는 경기장 건설 과정에서 노동자들의 인권을 무시한 처우로 수많은 노동자들을 희생되게 만들었음에도 여전히 해당 사실을 묵과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해당 이유로 영국의 공영방송인 BBC는 카타르 월드컵의 개막식을 생중계하지 않았다.

영국이? 싶지만 그럼에도 이번 BBC의 결정은 카타르 월드컵 노동자로 차출되어 희생된 사람들에게 나름의 위로가 되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여하튼 이런저런 이유들로 나 역시 의도적으로 이번 월드컵에 더 무심하려고 노력했다.

누가 이겼다더라. 같은 이야기까지 안 듣고 살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중계료에 도움이 되는 일은 말아야지 혼자 다짐했다.

그러나 모순적이게도 우리 집 티비에서는 월드컵이 방송되고 있긴 하다. 티비도 채널권도 가족 모두의 것이라, 내 보이콧을 다른 가족에게 강요할 순 없기 때문이다.

또 모두가 안 본다면, 월드컵만을 위해 최선을 다했을 각 국가의 선수들은 무슨 죄일까 싶기도 하다.

그렇기에 나도 정답을 모르겠다.

그냥 월드컵을 보면서도 카타르 월드컵 개최 이면에 숨겨진 피와 눈물을 잊지 않는다면, 그것으로 먼 곳에 있는 나의 일은 다 한 것이 아닐까.. 비겁하게도 이런 마음이 편한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여하튼, 어젯밤 열 시. 월드컵 경기를 시작하는 시각에 나는 집이 아니었다.

친구와 동네 치킨집에서 만나기로 하고 나왔는데, 해당 가게에는 입장조차 할 수 없었다.

평소라면 조용했을 가게들이 사람들로 가득했다.

가게의 테이블들이 전부 티비를 향해있고, 사람들도 월드컵을 볼 수 있냐는 질문을 하며 가게에 들어섰다. 그런 분위기는 처음이어서, 정말 신기했고 또 놀라웠다.

아니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이렇게 월드컵을 좋아하는 사람이 많았나? 싶기도 했고, 그간 내가 좀 많이 무심했던가를 생각해보게 되었다. 마지막 월드컵의 어렴풋한 기억이 2002년인데, 그럼 그 사이 20년 동안은 도대체 월드컵 날마다 나는 어디서 무엇을 했었는지 새삼 몹시 궁금했던 밤이었다.

아무튼 하필 어제 치킨이 먹고 싶어 나갔었는데, 열 시에 입장하는 사람들을 위한 자리는 거의 모든 치킨집엔 남아있지 않았다.

티비를 안 보실 거면 티비 아래 앉으라는 치킨집이 있긴 했는데, 잠시 앉아본 결과 티비 소리 때문에 대화 소리가 들리지도 않을 지경이었다.

할 수 없이 사람이 가장 없어 보이는 한적한 맥주집에 갔는데, 가게의 사장님이 운이 좋으시다며, 예약석(?) 손님이 안 오셔서 명당에 앉으실 수 있게 되었다고 말씀해주셨다.

그렇게 나는 월드컵을 좋아했다면 상당히 명당이었을 티비가 정면으로 보이는 맨 뒷자리에 앉게 되었다.

내 앞에 서른 명쯤 되는 사람들이 티비를 보고 있었고, 내가 앉은자리에선 그들과 티비가 하나같이 보이는 그런 자리였다.

자리에 앉고 메뉴를 시키고 보니,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먹기를 멈추고 축구에 집중하고 있었다.

중간중간 안주를 계속해서 시키는 테이블은 우리뿐이었다.

자꾸 더 시키기도 죄송할 만큼 가게의 주인분까지 축구에 완전히 집중해있는 모습이었다.


'집에서 편하게 보면 될 텐데 왜 다 같이 볼까?' 이유를 몰랐었는데, 어제부로 나는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다 같이 한 마음으로 무언가를 응원하는 그 느낌이 생각보다 아주 뭉클했다.

어젯밤 열 시, 그곳에 함께 있을 수 있어서 정말 좋았다고 생각될 만큼.

나이가 들었나,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서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는 이유 하나로 같은 순간 아쉬워하고, 같은 순간 기뻐하는 그 장면이 뭐랄까 꼭 응답하라 시리즈 드라마를 보는 듯했다.

[우리는 하나]라는 그 올드한 슬로건이 절로 떠오르는 날이었다.


우리가 하나라는 그 기분을 느끼기 위해 스포츠 경기를 보는 거라면 모든 게 이해되었다.

90분 동안 솔직히 기대 이상으로 행복했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응원하는 그 마음만으로도 하나 여질 수 있다는 사실이 2022년 답지 않게 느껴졌다.

어제 그 술집의 서른 명 가까운 사람들이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같은 순간 열광하고, 실망하고, 뜨거워졌다가 아쉬워했다가를 반복했다.

약속이나 한 듯이 경기 쉬는 시간에 맞춰 생맥주를 더 시키고 화장실을 다녀오는 그 장면도 괜히 정다웠고,

빨리 다녀오시라는 말도, 필요한 게 있으면 후반전 시작 전에 얼른 시키라는 손님들의 대화도 전부 정겨웠다.

모르는 사람이지만 다 함께 이 대한민국의 경기를 지켜보자는 그 마음들이 따뜻하게 느껴졌다.

고작 서른 명이 함께인 그 공간도 그랬는데, 더 많은 이들이 모인 거리는 얼마나 뜨겁고 벅차오를까 생각하니 사람들이 축구를 보러 경기장이 아닌 곳으로 응원을 가는 마음이 이해되었다.

역시 사람은, 더군다나 나는 직접 경험을 해 봐야 비로소 알게 된다.

주인분이 내어주신 명당자리 덕분에 응원하는 사람들과 축구경기가 한눈에 들어오던 그 장면을 기억에 남길 수 있었다.

언젠가 또 기회가 된다면, 남은 월드컵에서 한 번은 더 시간을 맞춰 어제 그곳에 가보고 싶다.

다시금 사람들 속에서, 같은 마음으로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응원을 건네는 그 경험을 하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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