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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Dec 01. 2022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게 가능한 사람

혼자 있을 시간이 너무너무 적은 요즘이다.

연말을 핑계로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만나서이기도 하지만, 일이 바빠진 탓도 있는 것 같다.

정해진 일정에 따라 휩쓸리듯 하루하루를 겨우 넘겨보내는 중이다.

그 와중에 이렇게 글을 올리는 일 덕분에 그나마 하루에 적어도 한 시간, 생각이라는 것을 하며 사는 게 가능했다. 다른 일에 앞서 브런치를 켜게 되는 이 숙제 같은 일과가 다행스러운 이유다.


다만 특별한 사건이랄 게 없다 보니 주제를 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또 적어둔 문장을 할 수 없이 또 빌려 쓴다.


인생에서 가장 가까워야 할 사람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다.
그 사실을 우리는 종종 잊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이라는 긴 터널을 걷다 보면 그 안에서 수많은 인연들이 어슴푸레한 빛을 남기며 스쳐 지나간다.
잠시나마 빛을 비춰줄 수는 있어도 밖을 향해 걸어 나가는 것은 결국 자신의 의지다.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사람이라지만, 또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것이 혼자인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런 순간을 의미하는 ‘혼자’라는 단어는 고적하고 쓸쓸한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누군가의 영향도 받지 않고 홀로 있기에 온전한 나를 가까이서 마주할 수 있게 해 준다.
나아가 혼자인 시간을 통해 걱정이나 근심 같은 케케묵은 감정들을 정리하거나 반복되는 일상에서 벗어나 새로운 환경을 찾고 삶의 전환점을 맞기도 한다.
실제로 인간의 삶에서 의미 있는 수많은 발견은 혼자인 시간에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때로 고독하고 쓸쓸한 혼자만의 시간이 찾아오더라도 두려워하거나 피하지 말고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기회로 삼아보자.
어쩌면 나에게 할 말이 가장 많은 사람이 나일지도 모르니까.

_투에고 [그때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사람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내가 아는 어떤 지인들은 정말로 외로움을 덜 느끼는데, 나는 이것이 진짜라고 믿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그 사람들이 외로움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지, 외로움 자체가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러고 보면 나도 참 생각이 편협하고 협소하다.

인간이라면 응당 일정 수준의 외로움을 느끼는 것이 당연하다고 여기며,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다는 것을 비교적 최근에 받아들였으니 말이다.

최근 그들과 어떤 대화를 하면서 어쩌면 내가 그동안 그들에게 느껴야 하는 외로움의 적정치를 강요해 왔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로 그냥 납득하기로 했다. 그들은 정말로 외롭지 않다는 사실을.

누군가와 함께 있어야겠다는 필요성 자체를 잘 못 느끼기에 곁에 지인이나 친구가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여전히 괜찮았다.

오히려 친구가 많은 사람들보다 느끼는 외로움이 적어 보이기도 했다.


언젠가 두 사람에게 각각 외로움에 대한 질문을 했던 적이 있다. 더 많은 친구가 있으면 좋지 않겠냐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한 사람은 내게 개인적 공간이나 사적인 부분을 침범당하는 게 너무 싫어서, 친구나 지인이 생기면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주고받는 게, 그들이 있어 좋은 점보다 크게 다가온다고 했다.

이미 아는 사람들이야 어쩔 수 없다지만, 굳이 새로운 인간관계를 만들어 본인 것을 알려주고 싶지 않다고.

또 약속이 생겨도 당일이 되면 거의 매번 취소되기를 바랄 만큼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기도 한다고 했다.

혼자 취미활동을 하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른다고.

그날은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었는데 문득 쓰다 보니 그날 나와의 일정도 취소되기를 바랐었다는 말이었던 걸까? 하는 생각이 갑자기 스친다.

여하튼 생각해보면 그 사람은 내향성이 정말 강하고, 관심 있는 분야가 한정되어 있으며 그 외 분야에는 정말 관심이 제로인 사람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 사람과의 시간이 편했던 것 같다. 내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그 사람의 관심사가 아니라면 그 사람의 기억 속에 내 이야기가 남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대화 주제를 가려낼 필요가 없었으니 말이다.

그리고 설령 기억하더라도 내 이야기를 곱씹지 않고, 나와 헤어지는 순간 이내 본인의 삶과 취미활동에 몰두할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

그렇기에 나는 그 사람에게 사소한 내 이야기를 가장 많이 하는 것 같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을 거라는 것, 기억하더라도 그 이야기들을 곱씹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나를 맘 놓고 말하게 한다.


또 다른 지인은, 이 사람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친구를 만들지 않는 편이다.

사람과의 관계를 의도적으로 제한한다.

매 순간 스스로 이성적인 판단과 결론을 내는 게 가능하기에, 타인과 감정적인 문제를 상의하거나 공유할 필요가 없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옆에서 지켜봐도, 독립적으로 모든 일을 해결하는 게 가능한 사람이니 굳이 타인과 본인의 문제를 나눌 필요가 없어 보이긴 하다.

또 아니라고 생각한 관계를 굳이 이어나가지 않고 인간관계를 굉장히 깔끔하게 정리해낸다.

내가 본 사람들 중 '아닌 건 아닌 거'라는 문구를 삶에 가장 단호하게 적용시키며 사는 사람이다.

우스갯소리로 '네 개 내가 아직 걸러지지 않은 게 신기하다'라고 할 정도로 그 사람만의 기준치를 충족해야 그의 지인으로 남게 되는 듯 보이는데, 지켜본 결과 기준치랄 게 뭐 대단히 특별하고 높기보단,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것'에 중점이 맞춰져 있는 느낌이다. 

살다 보면 남에게 피해 주지 않고 사는 사람이 사실 많지가 않다. 그렇기에 그 사람의 친구로 계속 남을 수 있는 사람이 많지가 않은 것도 납득이 되는 부분이다.

그 사람처럼 살면, 세상 사람들이 조금은 멍청해 보이겠다 싶을 정도로 삶을 똑 부러지게 오차 없이 깔끔하게 살아내는 사람이라 나는 오래도록 그 사람의 지인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누군가가 그 사람과 나를 유유상종으로 봐주면 좋겠어서 말이다.

차갑다 느껴질 수 있는 성향이나, 옆에서 지켜본 그 사람은 적어도 개인적인 영역에서 만큼은 옳고 합리적인 일만을 선택하며, 아프더라도 진실을 마주하고 해야 하는 선택을 해낸다. 

팩트를 중시하고 상황을 차가우리만큼 객관적으로 직시하는 성향이 특히나 나와 달라서 곁에서 보고 배울 점은 배우고 싶은 마음이다.

물론 오래 곁에 있는다고 배워지는 게 아니라는 건 해가 갈수록 실감한다.


여하튼 외로움을 견디지 않는 사람들은 존재는 나를 조금 놀라게 만들었다.

이겨내는 게 아니라 그냥 애초에 외로움이 없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는 조금 부럽다고 생각했다.

이 사람들은 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결국 무리 짓고 또 흩어지며 사는 이 인간사회에서 외롭지 않아 사람 없이도 괜찮다는 것은 그 자체로 엄청난 어드밴티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영화 <헝거게임>을 보면서도 저기서 제일 무섭겠는 건 말할 사람이 없는 것이겠다. 고 생각했을 정도로 말하지 않는 시간을 못 견디는 사람이라 더욱이 이런 사람들이 부러운지도 모른다. 말을 하지 않는 것을 못 견뎌 혼자 있는 시간에 이렇게 글이라도 뱉어내야 하는 사람이라서.

여하튼 내가 그런 사람이기에 나는 저 책의 문장을 적어두었다.

다른 사람과 이야기하길 즐기느라 나와의 시간을 소홀히 할까 봐 말이다.

한번 더 되뇌어야겠다.

타인이 나를 스치며 잠시 빛처럼 느껴질 수는 있으나, 결국 혼자 나아가 빛을 찾아내야 하는 건 스스로라는 사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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