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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Nov 30. 2022

북스테이를 방문하는 이유

북스테이.

책과 머무르다의 합성어로, 책으로 가득한 숙소를 의미한다.

한 번쯤 가보고 싶었지만, 진입장벽은 다름 아닌 가성비였다.

여행지에서 숙소로 북스테이를 선택하면 대부분 15시에 입실해 다음날 11시에 퇴실해야 하는데, 이는 숙소에서 책만 읽기에도 충분해 보이지 않는 시간이었다.

그런데 여행까지 해야 하기에, 15시부터 입실할 수 있는 상황이 늘 허락되지 않아 매번 후순위로 밀리곤 했다.


그러던 중, 올 가을 드디어 북스테이를 선택하게 되었다.

그 당시 나는 어딘가에 가고 싶으나, 무언가를 하고 싶지는 않은 그런 기분이었다.

그냥 어딘가에 콕 들어가서 진짜 푹 정말 쉼을 경험하고 싶다 하는 그런 시가.

그때 문득 북스테이가 생각났고, 그렇게 조금은 급하게 북스테이를 예약하고 방문했다.


들어서자마자 빼곡한 책장부터 보였던 그 숙소는, 일반 감성 숙소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개인적으로 잘 꾸며진 숙소를 찾아다니는 것을 좋아해 숙소에 대한 데이터가 많은 편이었는데, 북스테이는 그런 감성 숙소들과는 어딘가 다른 느낌을 주었다.

뭐랄까, 책을 좋아하는 지인의 집에 놀러 온 듯한. 혹은 책을 좋아하는 누군가의 집을 하루 빌린듯한 그런 느낌을 받았다.

어디인지 언급하지는 않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가격을 납득하기 어려운 숙소이기도 했다.

그랬음에도 사람들이 왜 북스테이를 찾는지를 그날 그곳에서 알 수 있었다.


대형서점과 달리, 취향이 담긴 북스테이의 책장에서 평소의 나라면 선뜻 선택하지 않았을 책을 집어 드는 순간들이 가장 결정적이지 않을까 생각된다.

내가 방문했던 곳은 특히나 책장이 독립 서적들로 가득 채워져 있었는데, 그곳이 아니었다면 내 손에 잡혔을 리 없는 책들이라는 인상을 받았다.

표지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어쩌면 평생 만나지 못했을 책을 덕분에 읽었고, 좋은 문장들을 참 많이 만날 수 있었다.

또 대부분의 북스테이는 조금은 고립되어 있는 장소에 독채로 존재하기에, 위치가 주는 비밀스럽고 아늑하고 포근한 느낌이 합쳐져 판타지 같은 공간이라는 생각을 하게 했다.

아주 어릴 적 읽었던 동화에 언급되는 숲 속 오두막에 들어와 있는 느낌?

그런 동화 속을 대단히 꿈꾸거나 갈망한 적 없는 편이었던 나조차도 조금은 신비로운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가끔 세상의 모든 것과 단절되고 싶은 때가 있는데 그럴 때 이런 곳이면 잠시나마 그런 느낌을 가질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또 찾게 될 것 같다고 말이다.

북스테이를 관리하시는 분은 이곳에 한 번도 온 적 없는 사람은 있지만 한 번만 방문한 사람은 없다고 말씀해주셨다.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비교적 적은 돈으로 마련한 나만의 책장. 나의 아지트 같았다.

이런 느낌 때문에 또 같은 북스테이를 언제고 쉼이

필요할 때 방문하는 게 아닐까 싶다.


북스테이는 분명 독립서점과는 달랐다.

생소한 책을 모아두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독립서점과 다르게 그 안에서 완전히 풀어져 나만의 방식으로 그 모든 책들을 읽고 곱씹는 게 가능했다.

무슨 차이냐고 물으면 똑 부러지게 설명하기는 어려우나 독립서점은 쓱 보고 취향이 아니라면 나오게 되지만, 북스테이에서는 취향이 아니더라도 하루 동안 함께하게 된다.

그렇게 기어코 펼쳐보게 된다.

개인적으로 그건 간과하기엔 큰 차이였고 북스테이만이 가진 장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시 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와 함께 방문해도 좋겠지만, 상황이 허락한다면 혼자 가도 좋을 것 같다.

나 역시 언젠가는 혼자 방문해 세상을 잠시 꺼두고, 마음껏 외로워하다가 책을 펼쳤다가 또 글도 쓰면서 그렇게 나랑 원 없이 놀아주어야지 다짐하며, 오늘의 글도 끝맺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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