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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Nov 29. 2022

제목을 정하지 못했다는 고백

오늘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라는 제목의 책이다.

독후감을 쓰기에 앞서 고백하자면, 나는 부유해보았고 또 가난해보았다.

부유한 시절에도 가난했던 시절에도 우리 가족은, 특히 아빠는 변함없이 부지런하셨다.

그렇게 내가 경험했던 삶 때문에 나는 가난은 단지 운과 선택의 대가라고 느껴진다.

물론 그렇지 않은 이들도 있겠지만, 모든 가난이 게으르고 노력하지 않은 이들의 것이며, 모든 부유함이 부지런하고 매 순간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것이 아님은 분명하기에 이 글을 시작한다.


따라주지 않는 운과 최선이 아니었을지도 모르는 선택들.

그것들의 대가 치고는 가난은 생각보다 깊고 어두웠다.

밝은 끝이 보이는 터널이 아닌, 발버둥 칠수록 빠져나오기 힘든 늪에 가까웠다.

우리나라는 더더욱 가난의 궤도에 오르면 쉽게 빠져나가기가 힘든 곳임을 몸소 느꼈다.

한 번의 실패에도 재생이 힘든 나라인 이유를 고민해봤는데, 아직도 여전히 가난을 개인의 영역이라고 여기는 생각들이 많기 때문이 아닐까 싶었다. 복지 포퓰리즘이라는 말이 이토록 많이 쓰이는 국가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여하튼 그렇기에 생계에 필요한 만큼의 돈을 벌고 나면 나는 꼭 사회적 기업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이든, 궁극적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적어도 한 번씩의 자유로운 실패를 경험하게 해 줄 수 있는 일을 해야겠다고.

이런 생각을 하던 중 이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경제 불황이 시작되면 국가가 개인을 일일이 돌보기 어려워진다. 있던 복지기금도 줄이자고 한다.
박근혜 정부 때 노인회관에 들어가는 연탄값 등의 난방비를 전액 삭감했다. 큰돈은 아니지만 다리를 더 지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정권은 생각한 것 같다. 경제는 어렵고, 정부는 안 도와줄 것 같고, 식구한테 손 내밀기도 어려운 순간, 어떻게 할 것인가? 제일 먼저 손을 내미는 것은 불법 다단계일 것이고, 그다음에는 자영업 창업으로 눈이 갈 것이다. 자영업 창업, 3년 동안 버틸 확률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   

불황의 시기에 더 많은 돈을 버는 것보다는 덜 가난해지는 것도 개인에게는 중요한 전략이다. 불법 다단계 빼고, 자영업 창업   빼고, 이것저것 빼고 나면 내릴 수 있는 판단이 별로 없다.
이런 경제적 조건이 사회적 경제가 중요하게 떠오르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은 선뜻 선택하기 어렵고, 판단하기도 쉽지 않다. ‘이게 대체 뭐여, 사회적 경제?’ 우리는 사회적 경제에 대해 아직 잘 모른다. 그리고 사실 알고 싶은 마음도 별로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무턱대고 창업하겠다고 달려드는 시간의 일부, 정말 아주 일부만 내서 사회적 경제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 해로울 것 같지는 않다.


앞서 읽었던 [레버리지]에도 비슷한 문장이 나왔었다.

더 많은 이들을 돕는 것이 결국 나를 돕게 한다는 뭐 그런 내용이었다.

두 저자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게 흥미로웠다.


아마도 우리는 경제를 과학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삼국지나 리니지 공성전 같은 판타지의 한 분야로  받아들이고 있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판타지에는 영웅이 등장하고, 대자본이 동원되거나 세상을 한 번에 바꿀 듯한 신기술이 등장한다. 그리고 물량 공세와 정교한 전략이 판을 움직이는 기본 요소가 된다.
실제로 우리가 살아가는 경제가 그럴까? 거시라고 불리기는 하지만, 국민경제의 많은 것들이 소소한 사람들의 일상으로부터 나온다. 찌질해 보이고 비루해 보이고 때로는 남루해 보이기도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일상성이 모여서 거시 경제를 만든다. 우리가 생각하는 거시는 너무 판타지적이고, 너무 힘이 센 것들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아주 일부다. 우리는 일상성을 무시하고, 삶은 경제의 영역, 아니 과학의 영역이라고 생각하는 데 너무 익숙해져 있다. 우리가 지나치게 판타지로 가는 동안 경제에 관한 이야기는 너무 커져 버렸고, 하늘 위로 올라가 버렸다.


이 구절은 적어둘까 말까 고민을 많이 했는데, 비단 경제뿐만 아니라 요즘 사람들은 더더욱 자주 많은 것들을 이처럼 판타지화 시키는 것 같다는 생각에 적어보았다.

보통이면 안되고, 모두가 일정 이상의 것들을 누려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sns의 존재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는 것을 실감한다.

솔직히 나 역시도 그로부터 자유롭지 못함을 느낀다. 따로 sns에 포스팅을 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의 일상을 보면서 이전과는 다른 보통의 기준이 생기고 있는 듯싶다.

적은 내용과는 다른 말일 수도 있지만 여하튼 그만큼 소소한 일상이 홀대받는 요즘의 세태가 안타깝다.

어쩌면 몇 년 후 소소한 일상 브이로그가 역으로 유행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문장에선 경제를 너무 크게 생각하고 있다는 말에 공감했다.

밀리의 서재에 의하면 지금 읽고 있는 이 책의 완독률이 39%라고 한다. 그만큼 경제라는 분야의 진입장벽이 높고, 알아서 뭐하냐, 하는 영역으로 여겨지는 편인 것 같다.

그렇게 '내 일은 아니다'하며 외면해온 한명한명의 하루하루가 모여, 오늘날의 이런 대한민국이 만들어진 게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 민족은 참 우수하고 뛰어난데 유감스럽게도 얻으려고 노력한 것에 비해 빠르게 내어준다. 지키는 뒷심이 조금 부족한 건지 사람을 너무 믿는 건지 모르겠으나, 그런 우리가 이따금 안타깝다.

내어주는 사람도, 만약 믿었다면 속은 사람도 문제라고 볼 수 있겠지만, 사실 진짜 문제는 사람들의 눈과 귀를 막는 일에 애쓰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대한민국이 세계적인 경제 대국 수준의 경쟁력과 기술력을 가지고도 더 이상 오르지 못하는 것은 언론의 부패 때문이라는 독일 슈피겔지 시사주간지의 문장을 인용하며, 이쯤에서 이 이야기는 마무리한다.


아직 고작 이 책의 서두만을 읽었다.

오늘은 책을 펼칠 시간이 단 30분도 나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었다는 핑계를 살며시 함께 적어본다.

어떤 글을 적고 있는지 생각할 틈 없이 매일매일이 지나가버려, 요즘은 미션을 클리어하는 심정으로 브런치 글을 발행한다.

매일 글을 쓰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지 실감하게 되어 새삼 매일 글을 쓰는 것을 업으로 하는 작가들이 대단했다가, 그게 업이라면 또 가능할 것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일도 하고 글도 쓰려니까 시간이 없구나 싶다. 둘 다 꾸역꾸역 해내긴 하나, 두 가지 모두 어디로 향하는지 가끔 길을 잃곤 한다.

'이게 맞나?' 싶은 순간들을 종종 마주한달까.

그럴 때면 그냥 손가락이 움직이는대로 글을 쓴다. 글을 쓴다기보다 생각을 뱉어내는 것에 가깝다.

이 분출의 목격자가 생각보다 많아져 조금은 신중해야겠다 싶다가도, 이렇게 쓴 글을 시간에 쫓겨 그냥 발행까지 눌러버리게 된다.

신중했더라면 걸러졌을 모든 생각이 발행되는 이 과정은 내게 의미가 크다.

원래가 신중한 성격이라 충분한 검토를 할 수 없는 이런 식의 일처리를 몹시 싫어하는데, 100일 프로젝트를 시작한 첫날에 비해 해당 부분의 강박이 굉장히 큰 폭으로 사라졌음을 느끼기 때문이다.

비겁하나, 이 100일의 글 중 일부는 언젠가 아무도 모르게 발행 취소를 눌러버릴지도 모른다.

워낙 변덕이 심한 성격 탓에 오늘은 괜찮았던 게 내일은 아닐 확률이 낮지 않기에, 이렇게 슬쩍 그럴지도 모른다는 고백까지 함께 분출해둔다.

그럼에도 이 일을 계속하는 건, 정말 진심으로 이 과정이 내게 이로움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이 느낌을 언어로 풀어 적는 데에는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분명한 건, 나는 내년 1월 1일 또 다른 프로젝트도 시작해볼 예정이다.

이렇게 반강제적으로 1년에 100일씩 세 가지 일을 반복해낸다면 나는 매년 나를 더 더 많이 사랑해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다시 한번 12월 1일. 무언가를 시작해보기 몹시 적합한 날이 다가오고 있으니 평소 도전해보지 못했거나 미뤄뒀던 작은 일을 시작해보기를 추천한다.

[2022년 마지막 한 달 프로젝트]라는 의미 있는 이름 아래서 여력이 된다면 어떤 일이든 도전해보기를 말이다.

그렇게 마주하게 될 내년 1월 1일에는, 올해의 첫날 내가 나를 사랑했던 것보다 더더더 스스로를 기특해하고 사랑하게 될 것을 응원해본다.

이제 마무리를 하려고 하는데, 중간에 주제를 잃어 도대체 무슨 제목을 붙여야 할지 모르겠다.

여전히 정하지 못한 이 엉망진창인 글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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