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월생 Dec 02. 2022

평범한 시민이 투사가 되는 이유

[희생자 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이라는 헤드라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기사를 읽었고, 읽는 내내 또다시 참담해졌다.

출근길에 눈물과 울분을 모두 참아내며, 한 순간 희생자 유가족으로 불리게 된 아버지들의 인터뷰를 읽었다.


저희 집사람한테 경찰에서 연락이 왔다고 하더군요. 일산 동국대병원인가? 왜 거기 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 딸이 왜 거기 가 있는지도 모르는데, 거기에 있다고 하더라고요. 일산으로 갔어요. 제가 일산에 갔더니 병원 응급실이 아니고 장례식장에 있는 영안실로 저를 안내하더군요. 제 딸이 영안실에 너무 춥게 차갑게 누워 있었어요. 이 아빠가, 딸내미가 그렇게 차갑게 죽어가는데 아무것도 옆에서 보탬이 못되고, 손 한번 잡아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딸내미를 떠나보냈습니다.

- 조기동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조예진 씨 아버지


이런 인터뷰를 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리셔야 했을지 감히 상상하기도 어렵다.

경찰의 연락을 받은 아내분은 그에게 택시를 타고 오라는 말을 하셨다고 한다. 먼저 해당 사실을 알게 된 가족이 또 다른 가족에게 해당 사실을 전할 때의 심정이 어떨지 상상조차 어렵다.

이분은 인터뷰를 하는 시점인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고, 아주 긴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듯하다고 말씀하셨다.

현실감이 없고, 문득 길가다 눈물이 난다고. 그렇게 한 10여분 길 한가운데서 하염없이 울곤 한다고 하셨다.

그 소식에 또 마음이 아린다. 길을 가다가 문득, 그렇게 10분을 서서 우는 심정을 생각하면 울컥 눈물이 차오르고 목이 멘다.

 

상견례를 장례식장에서 하게 되었다는 사연을 가진 희생자도 있었다.

우리 아내는 너무 속이 상해서 여기(송채림 씨 방)를 못 올라와요. 유족들 단체대화방 있는데 거기도 못 들어가요. 그런데 아까 집에 (아내가 쓴) 메모지가 있길래 봤더니. '채림이 보고 싶어, 한 번만 한 번만. 저 계단 올라오는 발소리 채림이 인 줄 알고 엄마 깜짝 놀랐어. 채림아, 꿈속에라도 한 번만 나와줘'라고 적혀 있더라고요. 사실 저를 더 힘들게 한 거는 그거예요. 애를 잃은 엄마가 세상에서 제일 불쌍하다잖아요. 그 사람이 내 옆에서 울고 있는 게 너무 불쌍하고요. 이런 유족들 심정을 좀 알아줬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 송진영 씨 / 이태원 참사 희생자 송채림 씨 아버지


유족들의 단체대화방에 들어갈 수 없다는 말에 문득 영화 [나는 사랑과 시간과 죽음을 만났다]가 생각났다.

상실감에 빠진 사람들의 모임에 끝끝내 참가하지 못하는 딸을 잃은 어떤 아버지의 이야기를 그린 영화였는데, 사랑했던 만큼 고통스러워하며 생의 모든 의미를 놔버린 채로 살아가는 한 사람의 이야기는 픽션임에도 참 아팠다.

비슷한 경험을 진짜 삶에서 하고 계시는 아내분의 이야기는 영화와는 비교도 안되게 아려왔다.

그 사람이 내 옆에서 울고 있는 게 너무 불쌍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남편분의 심정은 얼마나 지옥이실지.


해당 인터뷰를 읽고 저분들의 슬픔에 공감한다면,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이 사람들에게 힘을 보태야 한다고 생각한다.

책임 있는 직책을 가졌다면, 그에 맞는 책임을 지는 게 맞다는 이야기를 함께 외쳐야 한다.

유가족들의 아픔이 1순위의 고려대상이었다면 유가족을 연대하지 못하게 하면 안 되는 거였다.

비슷한 아픔을 가진 사람들은 그 존재만으로 서로가 서로의 위로가 구원이 된다고 한다. 그런데, 그걸 못하게 만들었다. 그들이 모여 겨냥하는 게 자신들일까 봐 모이지 말고 혼자 있으라고, 각자 아픔을 외로이 감당하라고 했다. 책임은 둘째 치고, 슬픔에 공감하는 인간이라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인터뷰 말미에 하신 말씀이 인상 깊다.

10월 29일 전에 그냥 평범하게 살던 시민이라고. 그런데 그날 이후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늘이 무너졌는데 더 이상 아까울게 무엇이겠냐는 물음이었다.

부디 저분들의 목소리가 더 많은 이들에게 닿았으면 좋겠다.

유가족들이 흘리는 눈물에 더 많은 분들이 공감하면 좋겠다.

평범한 시민이었던 사람들의 싸움을, 외롭게 놔두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사람들이 책임을 묻고 싸우겠다는 대상은, 책임을 져야 함에도 아무것도 내려놓지도 진심으로 사과하지도 않은 사람들이다.

사과하면 행동해야 하기에 사과조차 하지 않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오후 6시경 처음 경찰에 신고가 들어왔을 때 작동하지 않았던 행정 시스템이 사건의 분명한 원인이다.

세금을 내고 있는 이 땅에서, 국가에서 사람들은 국가에 의해 보호받을 권리가 있다.

이 당연한 사실을 말하고 있는 유족에게 부디 어떤 정치적 프레임도 씌워지지 않기를 바란다.


더 이상 제발 평범한 사람들이 투사가 되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란다.

사회적인 참사나 재난에 책임지는 정부의 부재가 시민들을 투사로 만들어왔던 역사는 이제 그만 반복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그저 평범하고 싶지 누구도 이미 충분히 힘든 삶에서 투쟁까지 더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나라를 믿고 살고 싶다.

상식적인 공감과 위로 그리고 추모가 가능한 세상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살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게 가능한 사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