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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Dec 07. 2022

제주도에 이런 사진관이 있었으면 정말 좋겠네

읽고 있는 소설 [하쿠다 사진관]에서 가장 좋은 점 하나를 꼽으라면 주인공 석영을 잘생긴 사람으로 설정한 것이고, 가장 아쉬운 점 하나를 꼽으라면 등장인물의 이름이 '제비'라는 것이다.

등장하는 개 이름도 '벨'인데 사람이 '제비'라니!!

몰입을 하다가도 몰입이 깨지는 이름이었다.

 

이름 말고도 이런 류의 소설을 읽으며 몰입이 깨지는 순간이 있는데, 그건 자영업을 하기로 결심한 캐릭터들이 너무 세상 물정을 모르는 모습을 보일 때이다.

그렇지만 소설이기에 가능한 그런 낙관과 긍정, 희망이 소설을 읽게 만들기도 하니까 꼭 나쁘지만은 않다.

복잡한 현실에서 가끔 이런 비현실적인 아니 정말 비현실 한 캐릭터를 보면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으니 말이다.

내가 처음 가져와야겠다 생각한 문장은 이것이었다.

떡조개를 넣은 라면이 한 그릇에 칠천 원일지라도, 그것은 단지 라면과 떡조개의 가격만은 아니다.
라면을 끓이려면 주방이 있어야 하고, 식탁을 놓을 매장도 있어야 한다. 전기세나 수도세도 물론 내야 한다. 신선한 식재료가 필요하고, 솜씨 좋은 요리사도 임금을 받아야 한다.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 한 장의 가격이 칠천 원일지라도 그것은 단지 종이 한 장의 가격은 아닌 것이다. 사진관이라는 건물의 임대료가 그 안에 들어 있다. 비싼 사진기와 조명들의 유지 관리 비용도 들어 있고, 유행에 민감한 배경 세트의 인테리어 비용도 들어 있다. 실력 있는 사진사가 받아야 할 임금과 고객을 응대하는 직원 임금도 포함돼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것까지 생각 못 한다. 자신들이 휴대폰 카메라로 찍어도 사진사처럼 찍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걸 돈 받고 판다며 억울해한다. 대개의 경우 그건 큰 착각이다. 이토록 싱싱한 떡조개 라면을 집에선 끓이기 힘든 것처럼.

이 문장들이 선택된 이유는, 이 글에서 말하는 '그런 것까지 생각 못하는 사람'에 내가 포함되어있기 때문이다. 사진이 비싸다고 생각했던 게 문득 미안해졌다. 그래 단지 종이 한 장의 가격이 아닌 건데, 나 역시 찍는 사람의 능력과 전기세 수도세 임대료 등등을 고려했던 적 없었다.

이제라도 알았으니, 조금 더 너그럽게 시세들을 이해하려 노력해보려 한다.


“아까 그 사람들…… 행복할까요?”
목포 할머니의 집 앞에서 제비가 물어보았다.
“글쎄. 안 맞으면 헤어지겠지.” 석영이 어깨를 들썩였다.
“하지만 두 사람, 서로 무척 신뢰하는 것 같아. 만일 헤어지더라도 사이좋게 헤어질 거야.”

만약 헤어지더라도 사이좋게 헤어질 거라는 말이 아프게 들렸다.

개인적으로 사이좋은 헤어짐이라는 게 가능하다고 믿는다.

그리고 그건 사이가 나쁜 헤어짐보다 더 아플 거라고도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돈과 예술이 별개라고 생각해.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돈과 바꿀 수 있는 것만 진짜 예술이라고 생각하지.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사람의 생명 다음으로 중요한 게 돈이니까. 그런 돈하고 바꿀 가치가 있어야만 예술이 되는 거야. 비쌀수록 더 가치가 있는 거고.

돈과 바꿀 수 있는 것만 진짜 예술이라는 시선에 더 공감이 되는 스스로가 조금은 씁쓸해 문장을 통째로 적어두었다.


물꾸럭마을에 살면 어릴 때부터 귀에 못이 박히게 들어. 문어의 속성에 대해.
그거 아니? 문어 수컷은 짝짓기를 하면 죽어버려. 암컷 혼자 알을 키우지. 동굴이나 바위 밑에 터를 잡고, 새끼들이 다 자라 부화할 때까지 계속 다리를 움직여. 끊임없이 파도를 일으켜 신선한 공기를 공급하는 거지. 새끼들이 부화하려면 최소 다섯 달은 걸리는데, 그동안 암컷은 아무것도 안 먹어. 오직 알만 지킨다.
새끼들이 알을 찢고 나오면 그때 비로소 죽지. 마을 삼촌들은 입버릇처럼 말했어.
‘어멍 잃은 알들은 썩어불매.’ 내가 물질해야만 우리 효재가 썩지 않아.
그래서 나도 숨을 참았지. 다른 해녀 엄마들처럼

문어의 속성을 읽으면서 눈가가 뜨거워질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그렇게 되었다.

어미 잃은 알들이 썩는다는 말이 마음에 남았다.

썩는다는 표현이 그렇게 잔인하게 들린 건 처음이었다.


제주 일대는 언제든 다시 폭발할 수 있어요. 한라산은 활화산이니까. 천 년 동안 쉬긴 했지만, 지구 입장에서 그건 하품을 하는 정도로 짧은 시간이죠. 지구의 관점에서 우리는 하루살이랑 비슷해요. 그런데도 논문을 쓴다는 둥 퇴짜를 논다는 둥 아등바등 살아가죠

휴전 중인 나라에 살면서 전쟁도 고려하지 않는데, 화산을 염두 할리 만무하다.

그래도 이런 글을 읽으면 한 번씩 우리를 둘러싼 위험들에 대해 다시금 인지하게 된다.

지구의 관점에서 하루살이랑 비슷한 게 인간이라는 사실은 오히려 좋게 느껴진다.

하루살이의 삶이니 조금 더 용기 내봐도, 적극적으로 굴다가 크게 망해봐도 다 괜찮을 것만 같은 기분이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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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3분의 2 정도 읽었는데, 어떤 매듭이 지어질지 아직은 감이 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분명 계속 읽고 싶은 책이다.

저녁을 먹는 시간에 SNS가 아닌 이 책을 선택했으니, 이 정도면 충분히 추천할만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내일 남은 분량을 마저 읽고, 마지막 독후감을 적어보기로 하며 오늘의 글은 이만 마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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