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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Dec 08. 2022

소설이 주는 청량감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하쿠나 사진관>의 세 번째이자 마지막 독후감.

이 소설은 읽을수록 의도적으로 개연성을 낮추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연성을 낮춰 소설을 소설로 보도록 돕고 있는 듯 말이다.

조금은 스포가 될 수도 있는데, <하쿠나 사진관>에는 도저히 우연으로 만들어지기 어려운 등장인물이 출연하게 된다. 그 인물은 출연 자체로 소설을 소설이라고 인지하게 만든다.


"그러지 마. 생각해야 해. 너처럼 똑똑한 애들일수록 더 깊이 생각해야지. 자기 결핍을 메꾸려는 똑똑이들처럼 무서운 인간도 없어. 이걸 기억해. 네 구멍을 메꾸려고 남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너 자신을 소진해서도 안 돼. 내 말은, 무의미하게 소진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

해당 인물이 위의 발언을 했다.

이 문장을 읽고 내 안에서 스쳐가는 사람들이 몇 명 있었다.

유독 날이 서있는 사람들이 있다.

단 하나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듯이 행동하며 세상을 사는 사람들이.

내 경험상 그 정도의 똑똑이들은 높은 확률로 처절하게 결핍을 메꾸는 중이었다.

그래서 어쩌다 그렇게까지 하며 사는 이유를 알아버리면, 더 이상 비난할 수도 그를 응원할 수도 없어지는데, 그럴 때 나는 그냥 곁에 있기를 택하는 편이다.

그들이 스스로를 끝까지 소진하지는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수많은 사진을 찍어 사람들이 기억되게 하고, 남은 사람을 기쁘게 하겠다고.

이 문장을 읽고는 사진작가도 매력적인 직업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진작가로서의 사명을 언젠가 남겨지게 될 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한 거라면, 그만큼 보람되는 일이 또 어디 있을까.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사진과 영상의 중요성을 실감했다. 사진과 영상은 남은 이들에겐 영원히 반복 재생되는 그 사람의 순간이라는 것을.

하지만 여전히 그런 순간들의 기록이 머릿속과 마음속에 존재하는 무형의 기록보다 좋다는 확신은 없다.

세상 누구도 단편적인 어떤 날의 순간만으로 기억되고 싶어 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유형의 기록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한다.

무형과 유형의 기록을 둘 다 많이 가지고 있어야 선택할 수 있으니 다다익선이다.


주차된 SUV에 오르며 석영과 제비는 행복했다. 행복한 사람들을 만나서 그렇게 됐다는 걸 그들은 알았다. 예전에는 미처 몰랐다. 세상 사람 모두가 불행한 줄로 알았다. 모두가 분노로 가득 차 있는 줄 알았다.
절대로 용서할 수 없는 일들이 인생에 너무 많았다. 하지만 하쿠다 사진관에서 일하며 그들은 깨달았다. 세상에는 행복한 사람들이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사람은 조금쯤 행복할 때가 있다.

존재하지 않는 소설의 등장인물이지만 그들이 행복하길 응원하게 된다.

사람 다 조금쯤 행복한 순간이 있고, 이런 세상임에도 또 행복할 때는 행복해야 한다.

우리 모두는 그러려고 태어난 것이니 말이다.


이런 책이 대부분 그렇듯, 결말이랄 건 딱히 없다.

그냥 이런 하루하루들이 계속될 거라는 것을 보여주는 열린 결말.

제주도 어딘가에 꼭 이런 사진관이 있을 것만 같은 그런 마무리.

해당 책의 주인공들은 어떤 일을 지나오며 주저앉거나 쓰러지지만, 누군가를 만나고 다시금 삶의 의미를 찾고 결국에 끝끝내 나아가기를 선택한다.

그런 이야기들은 픽션이나 픽션으로만 남지 않게 된다. 이 책을 읽는 사람도 쓰러진 순간 또 이겨내려고 마음먹으면 손 내미는 사람을 만나, 다시금 삶에 의지를 가져볼 수 있겠다는 희망을 갖도록 만드니 말이다.

내 요즘이 조금 텁텁하다. 그래서 청량함이 필요하다.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하쿠나 사진관]의 독후감을 마무리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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