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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Dec 17. 2022

도망으로는 지켜낼 수 없는 것들

연말이 되면 괜히 마음이 들뜬다.

나무에 붙어있는 조명들이,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한 캐럴들이 이유 없이 기분을 널뛰게 만든다.

만나지 못했던 얼굴들을 만나고,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나름의 일을 하다 보면 12월은 유난히 금방이다.


남은 12월에 이 글을 포함한 15개의 글을 더 쓰면 내가 9월 23일에 다짐했던 100일간의 글쓰기는 끝이 난다.

어제까지도 1월이 되어도 계속 이렇게 매일 글을 적어 올릴까를 고민했었는데, 오늘 최종적으로 그러지 않기를 선택했다.

2023부터는 조금 더 적극적인 새로운 일을 시작해보기로.

이 결심의 배경은, 퇴사를 향한 다짐이었다.

더 늦기 전에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에도 지금 당장 퇴사를 하지는 못할 것이다. 나에겐 책임져야 하는 나의 삶이 있고, 그 삶을 안정적으로 유지시켜주는 것은 유감스럽게도 월급이기 때문이다.

퇴사하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일은 있다. 그걸 알았지만 하지 않았었다.

길지 않은 인생에서 가장 치열했던 시기를 꼽자면 취업 전이고, 가장 안일하게 살았던 나날을 고르자면 취업 후였다. 그걸 앎에도 이 안정감이 좋아 그저 머물길 선택했는데, 이제는 그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영영 치열한 모습을 잃고 이대로 살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나는 벗어나려고 하지만, 사실 이대로 사는 방식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안정적인 직장에서 반복에 지치지 않고 사회 구성원으로서 제 몫을 해내는 일도 충분히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생활은 단순한 직장생활 이상의 것들을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그렇기에 나 역시 이곳에 5년이 넘는 시간 동안 머물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제는 더 이상 이곳에서의 모습이 내가 원하는 나의 모습이 아니기에 나는 다른 선택을 하려고 한다.

브런치에 매일 글을 올리는 일 덕분에 내가 하루에 2-3시간의 잉여시간은 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또 어디에라도 선포해 미약한 강제성이 주어지게 되면, 이런 일을 지속해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그래서 2023년 다음 100일은 조금 더 진취적인(?) 어려운 미션을 나에게 주려고 한다.

그런 도전이 쌓이다 보면 적어도 경험은 많아질 테니까, 일단은 해봐야겠다.

따라서, 나는 앞으로 남은 올해 열심히 글을 올릴 예정이지만 정 없게도 12월 31일을 끝으로 브런치에 글을 매일 발행하지는 않을 계획이다.

이전처럼 조금 더 느린 속도로, 정제된 글만을 올려봐야지.

조금 더 시리즈적인 글을 발행해보고 싶기도 하다.

내 일과 관련된 글을 발행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고, 이 부분은 계속해서 고민해봐야겠다.


영화 아바타 2를 보고 이상한 포인트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I can’t save my family by running."

영화 속 이 대사를 듣고, 나도 지키고 싶은걸 지키기 위해 도망을 선택하면 안 된다는 생각을 했다.

지금의 삶이 언제부턴가 도망처럼 느껴진다. 안정적인 도피처에 숨어있는 기분.

이곳을 벗어난 내 삶이 어디로 갈지는 모르겠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역시 모르겠다. 하지만 가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았고 그래서 가보려고 한다.


나를 도왔던 지금의 상황이, 이제는 나를 망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변화를 주어야겠다는 확신이 오늘에야 들었다.

누구도 내 삶의 가해자로 만들지 않기 위해, 또 누구의 탓도 하지 않기 위해서 나는 분명하게 바뀌어야 한다.

사실 이 사실을 안 지는 1년도 더 되었지만 유의미한 용기를 내기가 두려웠다. 이곳을 벗어나 무언가를 증명해내야 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겁이 났던 것이다.

하지만 도망은 언제나 최종 선택일 수는 없다는 것을 이제는 인정하고 나아가야겠다.


이런 상황을 대비해 어렸을 때 그토록 자주 '자 이제 시작이야!'라는 도입부의 노래를 불러왔던 걸까?

두렵지만 '자 이제 시작이야' 가사 속 그 시작을 이제는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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