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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Dec 20. 2022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먹어야 할까?

생일을 제외하고 케이크를 챙겨 왔던 유일한 날은 크리스마스였다.

아주아주 어렸을 때부터 종교도 없으면서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챙겨 먹는 것은 잊지 않았었던 기억이 어렴풋하게 남아있다.

가정형편이 어려워지고부터는 크리스마스를 챙기는 일은 자연스럽게도 중단되었는데 그 한을 풀고 싶었던 건지,  스무 살이 넘어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억지 부리듯 꾸역꾸역, 매년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구매해 집에 들고 가곤 했다.


오르골, 턴테이블, 크리스마스트리. 이런 덧없는 것들에 돈을 쓰는 일은, 갖고 싶은 마음보다는 맺힌 한을 풀겠다는 마음이 벌인 소비였다.

그저 홑겹에 불과하다고 여겨왔던 가난의 기억이 내 생각보다 진득하게 내 삶에 눌어붙었는지, 그런 것들을 구매하며 한 번씩 나의 괜찮음을, 이제는 생필품이 아닌 무용한 것들도 살 수 있어졌음을 종종 확인하고 싶었었다. 이제는 괜찮다는 인증의 의미랄까?


크리스마스 케이크 역시 비슷한 맥락이다.

딸기가 가득 올려져 있는 케이크에 초를 불면 내 안에 뭉쳐있는 알 수 없는 마음도 조금은 옅게 흩어지는 기분이 든다.

어쩌면 케이크를 먹고 싶은 마음이 커서 꽁한 내 마음을 눌러버린 것인지도 모른다.

내 안에도 유미와 세포들의 출출이 같은 게 있다면 그것의 몸집은 거대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괜히 크리스마스의 찬란하고 화려한 분위기 속에서 들뜨다가도 외로워지고 허망해지고 씁쓸해지는데,

그건 아마도 어릴 때 성냥팔이 소녀를 너무 인상 깊게 읽어서가 아닐까 짐작한다.

내 삶이 객관적으로 뭐 그렇게나 대단한 서사가 있을 건 또 아니기 때문이다.

가끔 부정정인 감정에 휩싸일 때 이렇게 상황을 객관화시켜보는 일을 종종 하는데 이는 좀 도움이 된다.

스스로에게 '야 너 그 정도 아니야. 그렇게 막 힘들어할 자격은 없는 것 같은데?'라고 하면,  

'맞아 솔직히 그 정도 아닌데 좀 오버했다.'하고 금방 정신이 차려지는 느낌?

힘들어하는데 자격까지 필요해? 싶지만, 울 자격이 있는지를 자주 검열해왔던 K-키즈답게,

자격을 논하는데 소질이 있어서 이 방법은 매번 효과적으로 적용된다.


글이 길을 잃었는데 여하튼, 그래서 크리스마스에 케이크를 먹어야 할까? 하는 질문에 답은 여전히 YES다.

그건 내가 종종 가여워하는 십 대의 나에게 건네는 위로이자, 이제는 다 괜찮다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너무 거창하다면 크리스마스 케이크는 시즌 상품이라, 때를 놓치면 구매할 수 없으니 날짜를 맞춰 챙겨 먹는 것으로 해두어도 좋을 것 같다.

대량으로 만들어 평소보다 정성도 조금이게 보이며, 회도 아니면서 시가가 적용되는지 갑자기 가격도 더 비싸지지만,

때론 다 알면서도 기꺼이 호구가 되어주는 게, 특별한 날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게 아닐까. 하는 정신승리를 해보며 이번 크리스마스도 좋아하는 케이크집의 딸기 케이크를 먹을 계획이다.


점점 비싸지는 케이크 가격이 점점 마음속 가격 마지노선을 향해 다가오고 있어서,

내년부터는 딸기를 사서 딸기 케이크를 직접 만드는 일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긴 하지만,

우선 올해는, 한해를 잘 마무리한 나에게 2022에도 일해줘서 고맙다는 마음을 담아 크리스마스 케이크를 선물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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