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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Dec 21. 2022

주 69시간 일을 하는 삶

자 외국과 비교 좋아하시니까, 이런 비교는 어떻습니까. 우리나라 사람들 1년 동안 일하는 시간이 2016년 2069시간이었는데 작년에 겨우 1951시간까지 줄었습니다. 그런데 OECD 국가들이 마지막으로 1951시간 일한 때가 언제일까요. 1972년입니다. 잘못 읽으신 거 아닙니다. 50년 전입니다. 그래요, 유럽 등등은 그렇다고 치고요, 옆 나라 일본 사람들은요, 1992년입니다. 우리가 노태우 전 대통령 때, 서태지와 아이들 데뷔했을 때, 마지막 대입 학력고사 봤을 때, 1951시간 일하고 안 한단 말입니다. 작년에 일본, 1607시간 일했습니다. 우리보다 350시간 적게 일합니다. 저런 나라들 규정 들고 와서 저 나라들도 허락해주니까 우리도 하자고 하면, 그대로 설득이 될까요?


김범주 기자의 기사 일부이다.

노동시간이 늘어나는 문제에 요즘 주변이 소란스럽다.

사실 지금 당장 내 직업과는 무관한 일이라 엄청 큰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았다.

당장 나와 관련된 문제들만으로도 충분히 버거운 요즘이기 때문이다.

여러 분야의 기존 제도를 바꾸거나 없애고 있으니, 도무지 모든 것에 신경을 쓸 시간적 여유가 없던 중에 위의 기사를 봤다.

솔직히 처음엔 잘못 읽은 줄 알았다.

마지막으로 1951시간 일한 것이 50년 전이라는 다른 나라의 사례들은 한국 사회가 하고 있는 가스라이팅을 실감하게 만들었다.

대한민국은 워커홀릭이라는 말도, 일도 일등 노는 것도 일등이라는 바쁜 사회에 대한 묘한 자부심 같은 것도 사실은 사람이 갈리고 있다는 현실 앞에선 다 의미 없다.

세계 1위 자살률을 몇 년째 기록하는 통계와 바쁜 게 당연한 사회적 분위기를 마냥 무관하게만 바라볼 수는 없다.

모두가 이렇게 사니까 괜찮아 보이지만, 그 모두에 속하지 못해 스스로 이곳에서의 생을 종료해버리는 사람들이 많다는 뜻이니 말이다.


주 69시간제로 변경하면서도, 그것은 예외적인 상황에만 일어날 것이라는 회유는 들으면서도 현실인가 싶었다.

근로자가 사용자의 업무 지시를 거절할 수 있는 법적 명분이 사라지면 결국 노동시간 결정권을 사용자의 판단에 맡겨야 한다.

기자의 말처럼 다른 건 외국 좋아하면서 왜 이런 건 따라 하지 않는지 모르겠다.

다행스럽게도 다수당인 민주당은 이에 반대하는 입장이라 당장 내년은 아닐 것 같지만 사실 이마저도 확신할 수는 없다.


물론 꼭 52시간 이상이 필요한 경우도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직종이나 직업이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라면 한 번쯤 왜 다른 모든 선진국들이 근무시간에 제한을 두는지에 관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악용되어 피해를 야기할 가능성이, 저 제도로 인해 득을 보는 사람보다 많다면 기꺼이 다수를 위한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 아닐까 싶다. 어쨌든 국가는 국민 다수의 삶을 더 좋게 만들어줄 의무가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연장근로가 52시간을 초과하는 사업장은 1.4% 에 불과하다고 한다.

이를 위한 제도 개혁이 과연 '국민'을 위하는 것일지 의문이다.

주 52시간 제한을 뒀기에 필요했던 인력들의 실업은 도대체 무엇으로 해결할 수 있을지 그에 관한 방안도 없을게 분명해 보인다

걱정이다. 걱정하고 싶지 않으나 당장 너무 삶과 닿아있는 것들이 달라지는 현실이 버겁게 느껴진다.

세상이 더 좋은 곳으로 가길 바라나, 당분간 그런 희망을 품지 않는 편이 오히려 내가 살아가는 현실에게는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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