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넷플릭스] _ 펭귄 블룸

#1

by 이월생
2021년 | 오스트레일리아
넷플릭스 오리지널
*스포일러 포함

한줄요약 :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되어도 기어이 나아가게 만드는 시간과 희망의 역할


펭귄블룸은 실화 기반의 영화이다.

참고로 영화에 펭귄은 나오지 않는다. 영화 제목 속 펭귄은 주인공 가족이 까치에게 지어준 이름이다.


단란하고 화목한, 남부러울 것 없는 주인공 가족.

가족끼리 떠난 태국 여행에서 큰아들은 엄마에게 테라스 위로 올라와 경치를 보라고 권한다.

아들의 부름에 올라온 엄마는, 낡아있던 난간이 무너지면서 낙상을 하게 되고, 그 사고로 인해 하반신 마비라는 장애를 갖게 된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에 갑작스레 찾아온 비극.


그날의 사고는 가족 모두를 변하게 만들었다.

엄마 샘은 받아들일 수 없는 자신의 상태를, 이미 존재 자체로 짐이 되어버린 스스로를 철저하게 고립시키며 모든 것을 거부하기에 이른다.

아슬아슬한 심리상태로 하루하루 살얼음판 같은 날을 보내는 엄마를 보는 남은 가족들 역시 하루하루 생기를 잃어간다.

자신의 부재로 혼자 아이들을 케어하느라 동동거리는 남편과, 자신의 눈치를 보며 혼란스러워하는 아이들까지 신경 쓰기에 그녀는 자신의 현실이 너무 버겁다.

"내가 여기 당신 곁에 있어"라는 남편 캠의 말에 눈물을 흘리며

"그걸론 부족해. 미안해 캠. 애들을 생각해도 기운이 나질 않아"라고 답할 만큼.

도저히 이겨낼 수 없을 것만 같은 현실에 모든 것을 놓아버린 샘.


그렇게 지내던 중 큰아들이 구조해 온 까치 한 마리가 그들의 일상에 찾아온다.

자신의 몸 하나로도 충분히 버거운 엄마에게 아들은 학교에 있는 동안만이라도 까치를 돌봐달라는 부탁을 남긴다.

다리를 못쓰는 자신과 닮아있는 날지 못하는 까치가 그녀는 괜히 불편하고 싫었지만 아들의 부탁을 외면하지 못하고, 까치와 불편한 동거를 시작하게 된 샘.

하지만 함께 보내는 시간에 따라 까치에게 마음이 조금씩 열리고, 어느새 샘도 펭귄이라는 이름의 까치의 회복을 바라고 응원하게 된다.

점차 기운을 회복해 가는 펭귄은 샘에게 위로로 다가온다.

펭귄의 회복과정을 지켜본 후, 비로소 샘은 자신이 펭귄에게 건넸던 응원을 본인 스스로에게도 건네본다.


하반신 마비 상태인 자신의 모든 것을 외면하고 거부했었지만, 그 상태를 받아들이고 그 몸으로 새로운 도전을 해보기를 선택한 것이다.

남편의 권유로 그녀가 시도한 건 카약.

"사고 이후 처음으로 내가 평범하게 느껴졌어요. 카약을 타고 있으면 나도 남들과 다를 바 없죠"

사고 이후 처음으로 그녀에게 생기가 생겼다.


즐거움도 잠시, 큰아들이 우연하게 열어놓은 문으로 나간 펭귄이 다른 까치들에게 공격을 받은 후 사라져 버리는 일이 발생한다.

엄마를 망가뜨렸다는 죄책감에 이어 자신이 돌보던 까치마저 그렇게 만들었다고 오열하는 노아.

그리고 그런 노아에게 샘은 드디어 이 말을 건넨다.

"매일 후회해. 그 빌어먹을 옥상에 올라가지 말걸!
하지만 우린 갔고, 그건 우리 선택이었어. 네 선택이 아니라.
이 모든 일이 네 탓이 아니야. 장담해.
그냥 오래돼 썩은 나무였던 거야. 엄마가 강하질 못해서 그걸 말해주지 못해 미안해. 힘든 시간 보내게 한 것도. 엄마도 이걸 이겨낼 만큼 강하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엄마는 강해. 이제 알았어.
엄마 여기 있어. 네 엄마야. 변함없는 엄마."

이 대사를 적기 위해 다시 그 장면만을 재생했는데 그 잠깐을 보고도 눈물을 훔쳤을 만큼 아들과 엄마 역할을 맡은 배우들의 연기가 대단하다.

정말 다시금 추천하는 영화.

각설하고, 저 장면을 보고 선택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되었다.

우연히 찾아온 비극과 불행에 내 선택이 0%인 경우라는 게 있을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 타인의 권유처럼, 선택처럼 보여도 결국 그러기로 최종적으로 선택한 주체는 나 자신일 수밖에 없다. 오른쪽으로 걸을지 왼쪽으로 걸을지, 넘어지며 팔을 쓸지 다리를 쓸지, 저 사람이 발권한 비행기를 탈지 말지 등 모든 최종 선택에는 당사자의 지분이 없을 수가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전부 나 때문인 것만 같은 일'은 애초에 타인에게 생길 수가 없다.

내 일은 전부 나 때문임이 가능하지만, 타인의 일이라면 그 사람의 선택이 0일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당연하게도 타인에게 생긴 일 전부가 당신 탓일 수는 없다'는 말을 해주는 듯한 장면이었다.


개인이 감당할 수 없는 비극을 마주했을 때, 어떻게 되어가는지를 참 잘 표현한 영화라고 생각했다.

"넌 그냥 너야. 다쳤어도, 너야"

나조차도 내 모습을 부정하게 될 때 이 말만큼 화가 나는 말이, 그러나 곱씹을수록 위로가 되는 말이 또 어디에 있을까.


비극을 마주한 사람의 가족들 입장도 충분히 잘 표현되었다.

"이런 고생을 하게 해서 미안해"
"무슨 소리야? 난 현존하는 가장 운 좋은 사람인 걸"
"왜?"
"꼬박 하룻밤을 다신 당신을 못 보면 어쩌나 했는데 다시 봤고, 매일 보잖아."

남편과 샘이 나눈 대화였다.

가족이, 소중한 사람이 다친 경험을 해본 모든 이들이 공감할 대사이다.

'제발 뭐든 할 테니 살아만 있게 해 주세요. 또 볼 수 있게 해 주세요. 그것만 해주세요.' 같은 간절한 기도를 해본 적 있는 사람이라면 저 마음이 어떤 건지 알 수 있다.


남편이 고충을 털어놓는 장면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샘 앞에서 너무 행복해하나? 애들 앞에서 너무 슬퍼하나?
애들만 데리고 해변에 나가면 우리가 너무 이기적인 건가? 또 샘을 너무 보살피는 걸까? 부족한 걸까?
샘이 추락한 후 내가 옮겨서 걷질 못하는 건지요 저도 매일 걱정해요."

집안일과 양육을 매일 함께 해왔던 사람이 다쳐 2인분의 몫을 해내야 하며, 동시에 아픈 짝꿍을 돌봐야 하고, 그 와중에 다친 사람의 눈치를 보며 힘들다는 말조차 꺼낼 수 없는 남편의 입장이 저 한 장면으로 이해되었다.

추락한 후 자신의 조치로 인해 걷지 못하게 된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을 느끼고 있음에도, 그런 감정에 매몰되어 있을 수 없는 아빠와 남편이라는 무게감까지.

어쩜 한 대사로 이토록 많은 의미를 전달할 수 있는지 새삼 대단하다.


결론적으로 펭귄은 어느 날 갑자기 다시 가족들의 집으로 돌아온다.

좋은 일은 갑자기 생기기도 한다는 샘의 대사가 생각나는 장면이었다.

그리고 샘은 세계 적응형 서핑대회에서 2번의 우승을 했다는 크레딧으로 영화는 끝이 난다.


이 영화를 어떤 문장으로 소개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

'다시는 걸을 수 없게 되어도 기어이 나아가게 만드는 시간과 희망의 역할.'로 정했다.

아쉬워서 적어보는 진짜 마지막 한 문장.

'비극은 갑작스럽지만, 희망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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