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배낭여행_2
2023.04 이후로 나는 앙코르와트 가본 사람이 되었다.
동남아 여행을 계획했을 때부터 앙코르와트에는 가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세계 7대 불가사의에 선정된 이유가 궁금하기도 했고, 이런 랜드마크에 나만의 추억 하나쯤은 만들어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앙코르와트에 가는 한국인 자유여행객이라면 두 가지 옵션이 있다.
1. 한국어 가능 프라이빗 투어
2. 영어 단체 투어
1번의 경우 하루 종일 차량+한국어 가능 가이드와 함께하는 코스로 1명이든 2명이든 $100 정도를 내야 한다.
2번의 경우 인당 $20 정도?
둘 다 입장료 $37은 제외한 금액이다.
생각보다 큰 가격차에 고민했지만, 처음이자 높은 확률로 마지막 방문이 될 것 같아서 한국어 가이드 투어를 선택했다.
영어로 듣는 역사적인 이야기를 전부 이해하지 못하면 아쉬울 것 같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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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어 당일, 새벽 4시 20분 호텔로 데리러 온 가이드를 로비에서 기다리며 그날의 날씨를 처음으로 확인했다.
어제는 피곤해 일찍 잠들었고, 4시 알람을 듣고 20분 만에 준비해 나오기 바빠 바깥을 볼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폭우였다. 천둥번개를 동반한 위협적인 폭우가 쏟아지듯 내리고 있었다.
앙코르와트는 둘째치고 이런 날씨에 캄보디아를 돌아다녀도 괜찮을 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4시 30분. 시간에 맞춰 가이드분이 도착했다.
인사 후 나의 첫 질문은 이 날씨에도 일출을 보러 이 시간에 가는 게 맞을까요..? 였다.
돌아오는 답변은 날씨가 이러면 많이들 취소하신다는 것. 그리고 덧붙이신 말씀은 폭우 속의 앙코르와트를 보는 게 맑은 날의 앙코르와트를 보는 것보다 어렵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나는 보기 어렵다는 폭우 속 앙코르와트의 일출을 보러 출발했다.
매표소까지 가는 30분 동안 여행자 보험을 자주 떠올려야 했다.
특히 급브레이크를 1초만 늦게 밟았아도 오토바이와 부딪힐 뻔했는데, TV에서만 봤던 헤드라이트가 사람을 가까이서 비추는 그 장면을 뒷좌석에서 목격했다.
정말이지 내리고 싶었다.
앙코르와트에 대한 기대도 생각도 사라지고 그저 안전하게 어디엔가 내려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행히 5시 매표소에 무사히 도착했다.
우비를 꺼내 입고 매표를 하러 갔다. 매표는 입장하려는 사람 모두가 직접 가야 한다.
그 자리에서 사진을 찍고, 앙코르와트 입장권에 그 사진을 넣어주시기 때문이다. 해당 사진은 얼굴 인식용이라는 용도에 맞게 목 위의 얼굴만 커다랗게 나온다.
새벽 5시의 얼굴이 그대로 인쇄된 표는 가지고 다니는 내내 조금 수치스러웠다.
앙코르와트의 입장료는 내국인에게는 무료이나 외국인에게는 1일 37달러이다.
캄보디아 물가를 생각하면 비싸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앙코르와트의 규모를 생각하면 이해가 되는 가격이었다.
유지보수 상태를 보면 또 의아하게 느껴질 수 있는 가격이지만 여하튼, 별수 없다.
표가 없으면 입장이 불가하기 때문.
가는 길에도 내내 비가 내렸다.
얼마나 먼지, 어디까지 가야 하는지 같은걸 신경 쓰기엔 휴대폰 불빛에만 의지해 한걸음 한걸음 어둠 속을 나아가야 했다.
벌레소리 물소리 빗소리 같은 것들이 섞인 축축한 분위기였다.
탐험 같은 걸 하고 싶었던 건 절대 아니었는데, 그러고 있었다.
어딘가에 도착했는데, 그곳에서 이제 일출을 기다릴 거라고 말씀해 주셨다.
우린 지금 사진에서 많이 본 커다란 호수 앞이며, 저 앞에 앙코르와트가 있다고 하셨다.
칠흑 같은 어둠만이 내 앞에 있었다. 휴대폰이 없으면 바로 앞이 호수인지조차 알 수 없는 그런 어둠.
다행인 건 우리 말고도 미처 날씨를 알아보지 못한 관광객들이 10명 정도 함께였다.
이름도 국적도 모르는 그들이 괜히 힘이 되었다.
가만히 앞을 보고 있는데, 천둥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몇 초 후 번개가 쳤는데, 그 순간 그 찰나에 눈앞에 앙코르와트의 모습이 드러났다.
단어 그대로 찰나였다.
그 모습을 본 모두는 탄성을 내뱉었다.
살면서 이런 걸 보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을 꼭 남기고 싶어 언제 올지 모르는 번개를 타임랩스를 켜놓은 카메라를 든 채로 하염없이 기다렸다.
얄밉게도 기다림에 지쳐 카메라를 내리면 번개가 쳤다.
아래는 그러기를 몇 번 반복하고 마침내 얻어낸 영상이다.
도무지 밝아지지 않을 것 같은 하늘이 밝아지면서 앙코르와트의 모습이 드러났다.
일출보다는 일몰 같아 보이는 모습이었다.
시시각각 하늘이 바뀐다는 말 그대로 하늘은 여러 가지 색을 보여줬다.
그 폭우를 뚫고, 축축한 길을 20분 정도 걸어온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이다음부턴 걸었다.
계속 걸었다.
앙코르와트가 불가사의인 이유는 동남아시아의 작은 나라의 건축물이라기엔 그 규모와 정교함이 놀라울 정도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코끼리와 노예를 이용했더라도 길지 않은 시간 동안 이런 완성도와 규모를 내는 것은 신의 도움이 없이는 불가능했을 거라고 가이드분이 자부심 어린 목소리로 말씀해 주셨다.
설명을 듣지 않았어도 압도적인 규모임을 걷는 내내 체감할 수 있었다.
정교한 벽화들이 끝없이 이어진 모습을 보고 있으니 '이런 것들이 이렇게 있어도 되는 걸까?' 하는 걱정이 들었다.
나 같은 관광객이 이런 것들을 막 밟고 다녀도 되는지, 벽화를 막 만져봐도 되는 것인지가 말이다.
몇몇 장소에는 펜스가 있었지만 없는 곳이 현저히 많았다.
어떤 벽화는 우리나라 돌하르방과 비슷하게 만지면 몸이 좋아진다는(?) 미신이 있다고 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만졌는지 반질반질 해진 모습을 보미 미신을 믿는 사람들이 귀엽게 느껴지다가도 100년 후의 사람들은 이걸 못 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정교한 벽화들이 그것들의 역사에 걸맞은 대접을 받거나 보호를 받지는 못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앙코르와트 복원이 언제쯤 끝날까 궁금해 검색해 보고 알게 된 사실은, 우리나라가 2023년부터 2026년까지 3년간 미국, 독일, 이탈리아, 일본에 이어 5번째로 앙코르와트 보존 복원 사업에 뛰어들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캄보디아는 도움을 준 나라의 국기를 사원 앞에 보이게 전시해 놓는 듯 보였는데, 2026에 가면 한국 국기도 볼 수 있을 것 같다.
새벽 5시부터 시작되는 투어라 8시가 넘어가면서부터 급격하게 지치게 된다.
체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날씨의 문제라고 믿고 있다.
그럼에도 앙코르와트 특유의 신비로움에 매료되어 가파른 계단도 오르고, 나비만큼 커다란 벌레도 이겨내고, 원숭이와 박쥐를 만났음에도 용감하게 관광을 끝마쳤다.
원숭이를 마주쳤을 때는 원숭이보다 큰 원숭이 소리를 냈던 것도 같다.
뒤에서 뭐가 툭 치기에 사람인가 했는데 원숭이였다.
무슨 냄새가 나서 뭐냐고 여쭤보니 위를 보라고, 저기 있는 박쥐들이 싼 똥이라고 하셨다.
박쥐를 그렇게나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개나 닭은 너무 흔해서 적어보자면 끝이 없다.
자연의 일부였던 앙코르와트의 불청객이 나고, 주인이 그들인걸 생각하면 내가 놀라는 것 자체가 그들 입장에서 아주 어이가 없는 일일 테지만, 이걸 알고 있었어도 터져 나오는 소리를 참기는 어려웠다.
놀라 자빠질뻔했다는 말 그대로 몇 번을 자빠질뻔했다.
이렇게 오전 투어 끝.
오후에는 앙코르와트 4배의 면적이라는 앙코르톰을 방문하게 되는데, 역시나 많이 걷고 걷는 도중에 많은 닭과 개, 박쥐와 원숭이를 마주한다.
믿을 수 없이 멋진 모양의 나무들과, 너무 웅장해서 한참을 바라만 보게 되는 사원들까지.
폭우의 앙코르와트는 오히려 좋았다.
누군가가 '비 오는데 앙코르와트 가도 될까~?'를 물어보면 무조건 권할 만큼. 단, 안전이 보장되는 방법으로.
비 내리지 않는 날보다는 덜 더워서 조금 더 오래 돌아다닐 수 있고,
무엇보다 천둥번개가 내리치는 '번쩍' 하는 순간에 보는 앙코르와트는 정말 대단하기에 추천한다.
이런 잊을 수가 없는 찰나가 내 기억에 한 장면 더 추가되어서, 그 장소가 앙코르와트여서 영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