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에서 시한부 부자로 살다 온 이야기

#동남아 배낭여행_3

by 이월생

물가가 저렴한 나라에 가면 돈개념이 없어질 때가 있다.

정확히는 돈 개념을 가질 필요가 없어지는 순간이.

캄보디아 씨엠립은 내가 다녀온 그 어떤 나라보다 해당 기분을 원 없이 느끼게 해 주었다.

나흘간 머물며 시한부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어떤 일이 생겨도 그걸 감수할, 혹은 극복할 돈이 있다는 안정감은 머무는 내내 나를 여유로운 사람으로 만들었다.

이렇게 적고 보니 오해를 부를 수도 있을 것 같아 적어두자면, 대단한 액수를 들고 갔던 건 아니었다.

그 당시 내가 가진 돈은 1000달러.

이건 씨엠립만을 위한 경비가 아니라 17일간의 여행을 위한 현금이었지만, 캄보디아 씨엠립이 첫 여행지이다 보니 1000달러 전부가 항상 내 가방에 있었다.


1000달러는 캄보디아에서 정말 많은 것들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금액이다.

캄보디아의 월 최저 임금이 200달러, 약 25만 원이라고 생각해 보면 계산이 쉽다.

아무 곳에 들어가서 아무거나 먹을 수 있는 느낌을 한국에서는 가져본 적이 없었는데, 여기선 추천받은 식당을 사전정보 없이 가고, 추천받은 메뉴를 고르고, 권해주신 마사지를 받았다.




씨엠립에 도착하자마자, 공항에서 호텔까지 아래의 차를 타고 이동했다.

차에 타자마자 시원한 물과 얼려둔 손수건을 내어주셨는데, 불과 몇 시간 전 '가성비 돈므앙 호텔'로 알려진 곳에서 머물다 와서인지 이런 대접이 얼떨떨했다.



체크인을 마치고 곧바로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무슨 음식을 원하냐기에 그냥 로컬푸드면 아무거나 괜찮다고 했더니, 로컬 사람들은 찾아볼 수 없는 식당을 추천해 주셨다.



숲으로 된 통로를 지나니 유니폼을 입은 사람 3분이 나를 아주 크게 환영해 주시던 곳이었다.

2층으로 안내받은 식당은 바깥과는 너무 다르게 시원했고, 조용한 클래식이 나오고 있었다.

문득 내 옷을 보고 이런 꼴(?)을 하고 이런 곳에 와도 되는 걸까 싶어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는데, 전부 외국인이었고 다들 약속이나 한 듯이 배낭여행객의 비주얼이었기에 안도했다.

데이비드 베컴도 다녀갔다는 인증샷이 있던 씨엠립의 어느 식당에서 엄청난 대접을 받으며 내가 내고 온 가격은 30달러 정도.

3만 원이 넘는 가격이니 저렴한 건 아니었지만 그곳 식당의 분위기, 나만을 위한 서비스 등을 고려하면 적게 내고 온 느낌이었다.



호텔로 돌아와서도 마찬가지였다.

음료를 고를 때 신중할 필요가 없었다.

몇 번이고 또 선택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작 먹는 것에 선택권이 많아졌음에 이만큼의 자유로움을 느끼게 되는데, 삶의 다른 영역에서도 언제든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해도 괜찮은 삶은 얼마나 멋질까 생각하니 문득 부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다음 날부터 그 나라가 조금씩 익숙해져 감에 따라 누릴 수 있는 영역이 음식에서 조금 확장되었다.

걷다가 지치면 택시를 타거나 아무 가게에 들어가서 수시로 생맥주를 들이켰다.

놀랍게도 생맥주의 가격은 1달러.

심지어 오전에는 1+1 행사를 하는 곳이 대부분이었다.

관광도시의 가장 번화한 장소의 가격이 이렇다니, 이쯤 되니 도대체 이 나라 사람들이 진짜 먹는 로컬 가게들은 얼마일지 궁금해졌다.


많이 걸었다 싶으면 호객행위에 못 이기는 척 마사지 가게에 들어섰다.

씨엠립 펍스트리트의 마사지 가격은 담합이 끝난 가격이라는 말을 어디선가 보았다. 그리고 그 가격은 발마사지 기준 1시간에 2달러라는 이야기를.

가보기 전에는 설마 그럴까 싶었는데, 정말이었다.

어느 곳에서나 2달러면 편히 누워 1시간 동안 발마사지를 받을 수 있었다.

나를 포함한 손님으로 온 거의 모든 사람들은 가격만큼의 팁을 주는 듯했다.

캄보디아는 팁 문화가 존재하는 곳이라, 팁을 주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져서 줄 때 부담이 없다.

팁문화가 없는 곳에선 돈을 더 주고 싶어도 (물론 이런 마음을 먹을 때가 매우 드물지만), 더 주기 조금 애매한 감이 있기 때문이다.

마사지를 받다가 손힘이 맘에 드는 분을 만나면 발마사지에 이어서 바로 다른 마사지를 추가하는, 시간도 돈도 상관없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행동도 두어 번 했다.

고려할 게 없는 상태에서의 선택이 나를 자유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하며.


내가 정말로 자유로워지려면 시간과 돈이 많이 필요하겠구나. 를 알고 나니 마사지를 받다가 순간적으로 여행 후가 조금 막막하게 느껴졌던 기억이 난다.

적어갔던 일기 속 다짐. '잘 쉬고 오자. 그냥 여행에만 집중하며 있다 오자. 몇 년을 일했는데, 20일은 생각 없이 놀아도 괜찮지 않겠니.'를 떠올렸다.

이렇게 써놓은 글만 보면 대단히 열심히 사는 사람 같지만, 고백하자면 그렇지는 않다.

지난 6년도 놀 거 다 놀면서 일했고, 20일로 정해뒀지만 한국에 와서도 여독을 핑계로 며칠 더 쉬었다.

그냥 스스로에 대한 걱정과 질책을 자주 하고 그보다 더 자주 자기 합리화를 하는 사람이다.



투어를 구매하는 일에도 여유로웠다.

계획이 없어 여행사를 가보려 한다는 말을 들은 택시 기사님이 자신 있게 추천해 주신 여행사의 투어 비용은 내가 한국에서 알아본 것보다 몇 달러씩 비싼 가격이었다.

번듯한 여행사 건물 앞에 차를 세우고, 자부심 있는 표정으로 나와 함께 들어와 물을 마시는 기사님을 보며 잠시 '물을 드시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커미션 같은 게 있는 걸까?' 생각했지만, 이내 아무렴 어떤가 싶었다.

몇 달러 비싸게 낸 투어가 싼값에 진행되는 투어에 비해 뭐라도 좋겠지. 생각하며 그곳의 투어를 예약했다.

결론적으로 씨엠립에서 타본 차 중 가장 튼튼한 벤을 타고 투어를 했다. 만족도가 높았다.



이런 선택들로 채워가는 씨엡립에서의 하루하루는 자유로웠고 행복했다.

사람들이 다정하고 좋아서, 거리가 깨끗하고 아름다워서, 하늘이 푸르고 나무가 높아서 행복하기도 했지만,

그곳에서의 내가 너무 자유로워서, 거리낌도 주저함도 없었어서 더 좋은 기억으로 남았지 싶다.

메뉴판을 보고 머릿속으로 재빠르게 돈 계산을 해야 하거나, 금액 때문에 할까 말까를 망설이거나, 가성비를 따져가며 선택을 제한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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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가격을 고려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끔 그런 순간을 살기도 하겠지만, 그게 매일이 되기에 한국은 비싼 건 아주 많이 비싸기 때문이다.


가성비를 고려하는 일에 지쳤다면, 다음 여행지로 캄보디아의 씨엠립을 추천한다.

특히나 아끼는 게 당연했던, 돈 쓰는 재미를 모르고 사신 우리 윗 세대분들에게는 더더욱 추천하고 싶다.

씨엠립에서는 비교적 마음껏, 원 없이 플렉스 할 수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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