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아 배낭여행_6
내가 예상했던 슬리핑 버스는, 버스를 타고 한숨 자고 일어나면 이내 다른 도시에서 아침에 일어나게 되는,
숙박비와 시간 모두를 아낄 수 있는 고효율 교통편이었다.
주저 없이 라오스 팍세에서 수도인 비엔티안까지 가는 슬리핑 버스를 선택한 것도 이런 생각에서였다.
그 안에서 내가 어떤 것을 참아내야 하는지 그때는 전혀 알지 못했다.
팍세에서 비엔티안으로 가는 표는 어렵지 않게 구할 수 있었다.
팍세의 거의 모든 가게에서, 심지어 마사지를 한다고 적어놓은 곳에서도 표를 살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수수료를 받고 직접 가서 대신 끊어주는 게 아닐까 싶다.
직접 터미널에 가면 290000낍이라지만, 나는 혹시나 표가 매진될까 봐 숙소와 가까운 곳에서 수수료를 내고 330000낍에 발권했다.
우리나라 돈으로 약 3000원의 팁을 주고도 12시간이 넘는 버스를 25000원에 탈 수 있음에, 표를 구매하는 시점에서는 무척 만족했다.
터미널에서 내가 타게 되는 버스는 그 이름도 웅장한 '킹 오브 버스'였다.
탈 때부터 정신없이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역시나 버스는 만석이었다.
나는 2층 맨 뒤에 끝자리가 당첨(?)되었고 그 번호가 45번이었으니, 이 버스엔 총 45명이 누워서 갈 수 있는 게 아닐까 짐작했다.
슬리핑 버스의 로얄석은 1층이라는 말도 있는데, 내가 보기엔 이 버스에 로얄석 같은 건 없다.
VIP버스라는 이름도 이 버스에겐 좀 많이 과분하다.
정말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2층이 나을 것 같다.
1층은 뭔가 더 혼란스러워 보였고 화장실 냄새가 잘 퍼져나갈 것 같이 생겼기 때문이다.
버스 입구에서 비닐을 주기에 눈치껏 신발을 담고 내 자리를 찾아갔다.
손가락으로 위, 뒤를 가리키기에 대충 내가 꼬리칸임을 눈치챌 수 있었다.
자리를 보고는 열악하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믿을 수 없게도, 1인당 허락된 자리는 약 40cm 정도. 그리고 옆사람과의 거리는 0cm였다.
그 어떤 칸막이도 없었다.
타인의 얼굴이, 그것도 높은 확률로 외국인의 얼굴이 자칫 코 앞에 있을 수가 있어지는 것이다.
다행히 키가 작은 나는, 내 옆사람들과 높낮이를 달리 하는 것으로 불편한 아이컨택을 피하는 전략을 선택했다.
자리마다 담요가 준비되어 있지만, 쓰기엔 너무 찝찝해 가져간 수건과 모자로 나를 칭칭 감고 안대를 쓰고 잠을 청했다.
하지만, 슬리핑버스라는 이름과 다르게 그곳에서 슬립 하는 건 쉽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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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멀미가 걱정이라면, 걱정 말라는 말을 자신 있게 건넬 수 있다.
덜컹거릴 때마다 최소 5cm씩 튀어 오르는데, 이렇다 보니 멀미도 안 났다.
차를 탄다는 느낌이 아니라 차가 나를 튕겨내는 느낌이다.
덕분에 속이 울렁거릴 틈은 없었다. 겉이, 그러니까 몸 자체가 덜컹거리긴 했지만 말이다.
덜컹거릴 때마다 내 몸이 40cm의 공간을 벗어나 옆사람을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 몸에 힘을 주고 버텨야 했다.
그런 도로가 계속되었다.
자면서도 옆으로 튕겨가지 않도록 힘을 주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아무리 잘 버텨도 옆에 분이 튕겨오는 것을 막을 수 없으니, 자다가 화들짝 놀라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처음엔 옆사람들과 쏘리가 오고 갔지만, 튕김이 계속 반복되자 그냥 서로서로 그 정도는 사과 없이 넘어가는 것으로 암묵적 합의를 봤다.
멀미가 없는 두 번째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휴식(?)이었다.
차에서 한숨소리가 나는 건 처음이었다. 차가 '아휴~~' 하고 뚝 서버리는 것을 경험해 보기는 말이다.
저 커다란 버스가 맥없이 퓨~~ 하고 뚝 서버린다.
그럼 너무 당연하게도 버스기사를 포함한 2명이 내려서 차를 고친다.
그리고 또 1시간 가고, 멈추고 고치기를 반복한다.
멈추는 곳마다 주변에 불빛하나, 지다나니는 차 한 대가 없었다.
당연하게도 어떤 건물도 없었다.
이 버스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발견되는 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겠다는 생각에 여행자 보험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버스가 4번째쯤 멈췄을 때 옆에 외국인이 용감하게도 본인이 바깥에 나가 상황을 보고 오겠다고 했다.
이쯤 되니 버스 양옆 사람들과는 약간의 동지애 같은 게 생겨있었다.
각각 영국과 프랑스 출신이었는데, 다 같이 우리가 무사히 비엔티안에 도착할 수 있을까를 진지하게 걱정했다.
나갔다 온 외국인이 말하기로는 3명의 사람이 차 뒤쪽을 수리하고 있다고 했다.
"놀라지 마, 그들은 고작 망치 두 개뿐이야."라고 말했을 땐 이 상황이 시트콤이나 콩트 같이 느껴졌다.
남의 일처럼 웃겼기 때문이다.
'차가 퍼졌다'라는 표현을 들어만 봤지 경험해 보긴 처음이었다.
다른 대안이 없는지 계속 가다가 고치고, 가다가 고치길 반복했다.
그래서 도착까지 무려 14시간이 걸렸지 싶다.
이것도 사실문제가 되는 건 아니었다.
내가 정말 눈앞이 파래졌던 순간은 마지막 2시간.
구글 지도를 보며 희망을 가져보기도, 절망하기도 하며 제발 부디 빨리 도착하기를 바라야 했던 순간은 그때였다.
그 이유는 예상했겠지만 화장실이었다.
멈췄다 출발하는 차도, 튕김도 5시간 정도가 지나니 익숙했다. 문제는 화장실이었다.
이럴까 봐 오후부터는 물 한 모금도 마시지 않았는데, 계속된 튕김이 나의 무언가를 자극했던 걸까...?
나는 화장실을 가야 했다.
그런데, 버스 아래 1층 화장실은 도저히 갈 수 없었다.
튕기는 버스의 푸세식 화장실에서 사람들이 어떤 시간을 보냈을지는 굳이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당연하게도 누구도 버스가 도착할 때까지 화장실을 치우지 않으니, 도착이 가까워진 그맘때의 화장실 상태는 더욱이 용납 범위 밖이었으리라고 생각되었다.
그리고 만약 내가 버스 안 화장실을 간다면, 가는 길에 나는 옆 사람들의 40cm 공간을 두 번이나 어쩌면 세 번이나 침범해야 했다.
화장실에 가겠다고 겨우 잠이든 동지(?)들을 깨우는 일을 할 만큼 나는 무자비한 사람은 못되었다.
인내의 시간을 버티고, 이 정도 참으면 병이 오겠다는 생각이 들 때쯤 터미널에 도착했다.
그 와중에도 혹여나 훔쳐갈까 모든 짐을 들고 배낭에서 휴지까지 챙겨 화장실을 갔던 것을 생각해 보면 누군가를 덜 급해서 그럴지도 모른다고 하겠지만, 아무튼 나는 그렇게 할거 다 하고 화장실을 갔다.
다시 생각해도 아찔하고 아득해지는 순간이다.
그날 이후 내 인생에 슬리핑 버스는 없다고 생각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또 슬리핑 버스를 탈 수밖에 없는 일이 생겼다.
사는 건 정말이지 예측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위 사진 속 슬리핑 버스에 보이는 한 칸은 2인용이다.
모르는 사람과 어떤 경계선도 없는 곳에서 함께 가야 하는 그런 자리...
5만 원을 내고 두 좌석을 끊으면, 저 자리를 다 차지하고 갈 수 있을까? 문득 궁금하다.
아무튼 굳이 슬리핑버스를 타고 싶다면, 은박침낭을 준비하길 추천.
어떤 외국인이 그걸 들고 와서는 착착 깔고 그 안에 쏙 들어가서 자는데 제일 편해 보였다.
그리고 부디 튼튼한 여행자 보험을 가입하고 가기를 권한다.
하지만 가장 추천하는 건 그냥 다른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것이다.
이동하는데 슬리핑버스보다 더 안전한 방법은 아주 많을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