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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월생 May 16. 2023

먹는 것에 진심인 경제학자의 레시피

오늘 읽은 책은 [장하준의 경제학 레시피]

어렵고 길어서 피하고 있다가, 시간이 더 없어질 것 같아서 오늘 읽기로 결심했다.

백수인데 왜 이렇게 바쁜 건지 정말 알 수가 없다.


이 책은 한국인은 마늘이다라는 주제의 머리말로 시작된다.

거기부터 내가 예상한 내용과는 조금 달랐다.

레시피라는 말이 그냥 책 제목에 들어간 게 아니었다.

이건 정말 '먹을 것'에 대한 이야기도 다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었다. 저자의 표현을 빌리자면 '음식 이야기를 타고 경제학에 도착하는 과정'이 주 내용이다.

각 식재료들이 경제학이라는 분야에 아주 자연스럽게 녹아있어 읽다 보면 경제학이고 또 읽다 보면 다시 레시피 아니 식재료가 나오는 독특한 구성이다.

덕분에 얕아 보이지만 그 속은 매우 깊었던 경제학 책이니 시간을 많이 가지고 읽기를 추천한다.


경제학은 개념을 만들어 낸다.
경제학 이론은 서로 다른 특징을 인간성의 본질로 추정한다. 따라서 그 시대에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치는 경제학 이론은 동시대인들이 무엇을 가장 중요한 '인간의 본질'로 생각하는지에 영향을 준다.

이 부분을 읽고 뭐랄까 내 삶이 내가 전혀 모르는 것들에 의해 조종(?)까지는 아니지만 매우 지대한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니 놀라웠다.

인간이 이기적 존재라고 추정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주류인 세상이었기에, 우리는 '나만 아니면 돼'같은 말을 유행 삼으며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을 정상인 것처럼 받아들이게 된 것이라고 한다는 말은 좀 충격이었다.

사회를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동기 중 특정한 것을 장려할 수 있다는 말이 뭔가 경제학이 꼭 세상을 사람들을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다시 말해 경제학은 사람들이 무엇을 정상으로 보는지, 서로를 어떤 식으로 보는지, 그런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에 영향을 준다.
경제학은 또 경제가 발달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며, 그에 따라 우리가 생활하고 일하는 방식에 영향을 주고, 그 결과 우리 정체성을 형성하는 데 영향을 준다.

머리말에서 마늘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이런 엄청난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내 삶이 내가 생각지도 않은 어떤 분야에 의해 휩쓸려간다고 생각하니, 그래왔다는 게 분했고 그럴 것이라는 사실이 아찔했다.

책에서는 이런 사실들이 '이해할 수 없는 경제학 이론이 난데없이 나타나 우리가 몸담은 세상 전체를 뒤집어엎고 주물럭거리는 것'이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경제학은 사회의 성격에, 더 나아가 개인의 규칙등에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그저 바라만 보며 무력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조금은 공부하라고 말한다.

우리 자신의 이익을 방어하기 위해서, 더 나아가 우리와 우리 후손들이 더 나은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말이다.

모르는 건 약이 될 수 없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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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에 대한 시각 역시 흥미로웠다.

말레이시아와 두바이가 이슬람 문화가 경제 발전과 양립할 수 있는 좋은 예라고, 악의적 의도를 갖고 낯선 문화의 부정적인 부분만을 골라내 해당 문화권의 사회경제적 문화를 결론짓지 말라는 말을 데이터와 같이 설명하셨다.

마찬가지로 동아시아의 유교 문화에서도 강조하고 싶은 면만을 강조할 수 있지만, 그걸 그대로 믿는 건 정말 바보 같은 일이라는 것도.

국가의 경제적 성과나 개인의 경제적 행동에 문화가 미치는 영향은 정책에 비하면 그 영향력이 훨씬 약하다는 점은 기억해야 할 부분인 것 같다.

정책이 아닌 문화를 탓하는 모습을 우리는 너무 자주 볼 수 있으니 말이다.


이와 별개로 현재 한국의 GDP 대비 가계 저축률 5%라는 수치는 좀 충격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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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다루는 식재료들을 읽고 있으면, 나의 식문화가 생각보다 몹시 협소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된다.

엔초비 파스타를 먹으면서도, 멸치에 관한 생각을 저자만큼이나 깊게 한 적은 없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무튼 나도 생각보다 음식에 훨씬 보수적인 사람이라는 걸, 문득 알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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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나라의 생산 능력은 변화할 수 있지만 그 변화는 저절로 일어나지 않는다.

일본이 철강이나 자동차 같은 수입을 막고 195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관련 분야의 생산 능력을 끌어올렸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1988년까지 외제 자동차의 수입을 전면 금지하는 정책으로 자동차 제조업체의 성장을 지지했다.

미국 해밀턴의 '유치산업론'을 그대로 적용시킨 것이다. 어쩜 이런 생각을 하셨을지, 괜히 10달러에 들어가는 주인공이 아니구나 싶었다.

자유 무역 체제에서는 이런 변화가 생길 수 없음을 인정하고, 지치고 힘든 시간을 감수하면서 투자해야 할 부분에 필요한 만큼의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으로 정책의 뜻을 모았다는 것은 분명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이 말은 해당 나라의 국민들이 소비자로서 품질이 떨어지는 상품을 사용하는 것으로 그 기간을 견뎌냈음을 의미한다.

어쩌면 지금의 우리에게도 큰 흐름에 의해 제한된 선택지 안에서 소비해야만 하는 무언가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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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허에 대한 시각 역시 신선했다.

나는 단순히 보호의 개념만을 떠올리게 되었는데, 특허 보호기간으로 인해 지식이 공공 영역으로 나오는 시기가 늦춰져 지식 발전 측면에서 경제적으로 좋은 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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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화로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은 자본주의 체제에 늘, 적어도 지난 2세기 반 동안은 항상 존재해 왔던 현상이다. 그리고 [파이낸셜타임스] 같은 지면에 글을 기고하는 저널리스트, 경제학자, 경영 전문가 등은 줄곧 블루칼라 노동자들이 노동력을 절약하는 기술 도입에 저항하는 것은 경제 발전을 방해하는 짓이라 꾸짖어 왔다. 그랬던 기자들과 논평가들이 왜 이제 와서 갑자기 일자리 자동화의 영향에 대해 걱정을 늘어놓는 걸까? 
계급적 위선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 오지 않는가? 전문가 계급에 속한 이들은 자기네 일이 자동화의 물결에서 안전하다고 확신할 때는 새 기술의 도입에 거부감을 보이는 블루칼라 노동자들을 ‘러다이트 Luddite’라 쉽게 비난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제 자동화가 그들과 그들의 친구들(의사, 법조인, 회계사, 금융인, 교사, 심지어 저널리스트까지)이 속한 화이트칼라 일자리를 위협하기 시작하자 기술 발전으로 인한 실업, 심지어 로봇이 자기네 분야 전체를 완전히 대체해 버릴 수도 있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뒤늦게 맛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전문가 계층에서 퍼지고 있는 자동화에 대한 새로운 패닉 심리에 휩쓸려서는 안 된다.
자동화로 인해 생산에 들어가는 생산량 단위당 필요한 노동력이 줄어들지 모르지만, 제품 가격이 낮아지고 그에 따라 수요가 늘어나면 더 많은 노동자가 필요해질 수도 있다. 제임스 베슨에 따르면 19세기 미국 섬유 산업 자동화로 인해 옷감 1야드를 생산하는 데 필요한 직조 노동력의 98퍼센트가 사라졌지만, 면직물 가격이 낮아지자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실제 방적 노동자의 숫자는 4배로 늘어났다.


이 책을 읽다 보면 모르는 게 너무 많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모르고 살았는데, 살아진 게 신기할 정도였다.

살아지기야 하니 앞으로도 이것들을 모르고 살아도 괜찮을지도 모른다. 그건 각자가 선택하기 나름일 것 같다.

다만, 이런 이야기들을 알고 살지 모르고 살지를 결정하기에 앞서 이 책을 읽어보는 것이 선택에 유의미한 도움이 될 것은 확신한다.

그렇기에 경제학에 관심이 있거나 혹은 없는 이들에게 이 책을 추천하며, 오늘의 독후감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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